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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오류에 대한 변론
게시물ID : religion_50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열린눈
추천 : 2
조회수 : 538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1/11/08 00:01:15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성경은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읽고, 순종함이 합당합니다.

성경이 ‘정확무오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람들의 말입니다.

성경의 성경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15-17

잘 보십시오. ‘더 많은 이윤’ ‘최선의 선택’ ‘가장 좋은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보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분명 이 세상에서 “오류가 없는 것”이라고 표현되는 사람의 기준과 차이가 큽니다.

성경을 읽는 이유에 대한 성경의 표현을 보시겠습니까?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2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는 “믿음”을 성경이 분명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오류’라고 말하는 ‘사건 기록’ ‘사건 설명’의 합하지 않는 부분들은 성경이 제시하는 진리의 중점 사항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엔 오류가 많습니다. 복음서에도 서로 안 맞는 부분이 많고, 구약에도 서로 부합되지 않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집중해야 할 것은 ‘사건을 기록한 이들의 기억력 확인 작업’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목적과 다릅니다. 비즈니스, 물질적 이윤을 창출하기 위하여서 내는 사고과정과 계산 방식이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서 내는 사고과정과 계산 방식과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최종 목적이 차이가 있습니다.
‘썩을 면류관’ - ‘썩지 않을 면류관’

과정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되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귀 기울이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자신의 최선의 의지와 노력을 신뢰하고 정당한 댓가를 바라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복음의 신비엔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선택구원’ - ‘인간의 자유의지’
‘하나님의 은혜’ - ‘인간의 순종’
‘믿음’ - ‘행위’
‘용서, 회개’ - ‘열매, 공의’
‘긍휼, 사랑’ - ‘심판, 정죄’

이것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지켜 행할 수도 없겠지요.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방식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오류라고 볼 수 있는 부분들은 사실은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성경 전체가 담고 있는 의에 대한 계시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해할 수 없는 우둔케 된 악인들은 ‘기록이 담고 있는 오류’로 말미암아 더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서 고침 받을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강퍅하게 할 자를 강퍅하게 하심’ -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 베푸심’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기를 원하심’ -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
‘버려두심’ - ‘분복을 누리게 하심’
‘복음을 듣게 하심과 회개’ - ‘복음을 듣게 하심과 완고케 됨’

세상에서 통용되는 ‘관계, 사업, 타결’의 기준과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다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 전도자들이 사업이나 경영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신뢰할만하고 지켜 행할만한 것인데, 사역자의 권리에 관하여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고린도전서 9:7-15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능력입니까?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라오가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저는 성경의 ‘하늘 상급, 하늘 보화’에 대한 기록에 대하여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천국엔 경제 활동이 없을텐데,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란 표현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지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의 업무중점 사항과 비영리 사회 사업자의 업무중점 사항은 다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서 일하는 사람과 자기 자신이나 가족이나 국가나 세상을 위하여서 일하는 사람의 ‘계산 방법’이 같겠습니까?

내가 생각건대, 하늘의 상급에 관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계시된 것들이 틀림없이 성취되되 우리가 이 땅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하늘의 계산 방법을 통하여서 보상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생각건대, 이 땅에서도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차면 ‘내가 남보다 더 갖는 것’ 자체를 기뻐하기보다 ‘남이 잘되고 좋은 것을 얻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영광스럽고 영원한 세계인 천국에서 누리는 기쁨이라는 것의 질과, 그 차원의 높이, 그리고 그 기쁨에 대비되는 상급의 수여 방법과 기준은 이 땅에서 다 이해하려 하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일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쓰고 보니 ‘비영리 봉사’에 대한 옹호와 ‘범종교적 하나님 추구’에 대한 변론은 되었지만 예수그리스도 중심의 복음에 대한 옹호는 빈약하게 되었네요.

그래서 이 문장을 적어 넣고 마치려 합니다.
이 글의 주제를 단 한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일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한복음 7:17

제가 성경을 워낙 모르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 성경을 배웁니다.
그런데, 제가 고민하던 것들도 글을 쓰면서 해결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슬기로운 자는 아니군요.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
잠언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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