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슬프다.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다.
게시물ID : gomin_5107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X-LS7
추천 : 6
조회수 : 41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20 00:13:27


지금 심장이 터질것 같고, 내 존재가 없어지는것 같아 두서없이 막 써본다.
난 29살 광주사람이다. 어릴적부터 전남대와 조선대 운동권 학생들로 인해 심심하면 최루탄 공기를 맡으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들을 보면 전경에게 맞아 머리가 터지고 피투성이가 되어 옷이 찢겨나가고 닭장차에 개끌려가듯이 가는걸 많이 봤다. 그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뭔지는 모르지만 막연히 데모가 싫고 그들이 무서웠다.
나에게 5.18은 가깝지만 먼 이야기일뿐이다. 부모님, 그리고 주위의 어른들은 그 이야기를 꺼내기 싫어하셨다. 역시 이해를 못했다.
대학 때 학생회 선배가 민주주의가 뭔지 알려줬다. 남총련이 하는 집회에 가서 도청앞에서 전경들과 대치도 해보았다.
그런데도 난 이해를 못했다. 왜냐고 민주주의가 뭔지 모르지만 난 돈을 많이 벌어야 하니까, 민주주의 그런건 남들이 다 알아서 하니까.
솔직히 대학도 난 돈을 보고 갔다. 해양대를 나와서 배를 타면 돈을 많이 번다고 하니까 민주주의 21세기에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안갔다. 

대학은 1학기에 백만원만 내면 국가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가르켜줬다. 국가의 은공을 난 제대로 받았다.

하지만 졸업은 못하고 군대로 도망가듯이 입대하면서 내 생각은 달라졌다.

난 해군 2함대에서 근무했다. 2002년 제 2연평해전(서해교전)때 참수리 357이 북괴의 공격에 격침당했다. 그로인해 2함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을 싫어했다. 나 역시도 그랬다. 고3때 동아일보를 보는데 신문 1면은 월드컵이 나왔고 마지막면 조각기사로 교전이 나왔으니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을 싫어했었다. 그당시엔 노벨평화상이 김대중 대통령의 로비로 탔다는 말이 인터넷을 지배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 더 거기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경상도 사람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해군에서 전라도 출신인 나는 까이기 일수였다.

왜 전라도를 싫어하고 미워하는가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까이는것은 똑같았다. 어느정도 짬이 차니 사람들 인식도 많이

변화했지만 여전히 전라도 출신이라 미워하는것은 똑같았다. 이유없는 기합에 갈굼에 난 어느순간 경상도 사투리를 전라도 사투리보다

더 자연스럽게 쓰고 있었다. 슬펐다. 내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뻥친다고 한다. 괜시리 씁쓸하다.

그래도 8년동안 군대에 있으면서 지역주의 편승하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모르겠다. 내가 그들의 언어로 날 위장해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그러면서 5.18과 4.19를 퇴근해서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억압으로 인해서인지 민주화 란 것에 대해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난 정치색을 드러낼수 없는 군인신분일 뿐이라 속으로 삭힐뿐이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사건이 하나 터졌다. 천안함 피격사건이다.

내가 아는 많은 전우들이 세상을 떠났다. 훈련소에서 같이 고생한 동기도, 직별후임이라 나에게 괜시리 많이 까인 후배도 젤 슬픈건

참수리 357에서 생존한 故박경수 상사가 세상을 떠난것이다. 경수형은 내가 첫 발령을 받아 배를 탔을때 고참하사였는데  같은 달에 전입했다고 전입동기라며 나를 이쁘게 봐주고 많은걸 베풀어준 형이었다. 영외근무를 했을때 집을 못구했을때도 자신의 관사를 나에게 내어줬던 내가 잊지 못할 사람중에 한명인데 그는 시신조차 남기지 않고 산화해버렸다. 

슬펐다. 그리고 분노했다. 이 상황에 이명박 정권은 아무것도 한게 없다. 단지 선거를 위해 산화한 전우들을 감성팔이 노리개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선거에서 많은 군인들은 한나라당을 찍어줬다. 하지만 난 그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국방개혁을 위한 노력을 말할수 없었다.

왜냐고 많은 군인들은 10일에 월급 20일에 수당에 만족하는 생활에 길들여졌기에 그들은 천안함 전우들에게 돌아가는 보상비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내가 군생활 중에 가장 감격에 눈물을 흘렸을때는 2008년 관함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승함한 세종대왕함에 8미터의 태극기와 봉황기가 마스트에 걸렸을 때였는데, 많은 군인들은 이명박 정권이  잘 했다고만 한다. 노무현 대통령때는 월급이 인상이 안되었으니까...

웃긴것은 내가 하사월급 받던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식비가 중사월급 받던 이명박 대통령때보다 훨씬 지니계수가 낮았다.

내가 일주일이 넘게 울었던 것은 천안함 전우들을 보낼때였다. 정말 눈물이 마르지가 않았다. 속에서 뭉클뭉클한게 쏫아 올랐다.

열혈단신으로 북에 던져놓으면 김정일의 심장에 대검을 박아놓고 싶었다.


난 내가 보수라고 생각한다. 국방에 대해서는 북,일,중,러 심지어 미 까지도 우리에게 한치의 침략이라도 있으면 목숨걸고 지켜내야된다고 생각한다. 대북관계 우리가 지원해줘야된다 그래야 자본주의의 맛에 길들여진 그들의 중국에 흡수되지 않고 스스로 무너져 우리에게 흡수될테니까.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복지를 제공해야 하며, 어느누구도 낙오되지 않게 보살펴줘야 하며 법이 그 어느 무엇보다도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그들에게 이야기하면 나보고 빨갱이라고 한다. 웃기다.


그래서 난 오늘 문제인 대선후보를 찍었다.  그리고 씁쓸한 결과를 맛보는 중이다.

국개론이 맞구나. 경제를 살리겠다고 이명박을 찍었던 내가 그 뼈아픈 과거를 잊기위해 문제인 후보를 찍었는데.. 씁쓸하다..


국가에 받은 은혜를 난 갚고 싶었는데 국가가 날 부정하는 기분이다.

군생활중 연평도와 NLL에서  짠바람 맞고, 파도와 싸우면서도 조국의 안보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군생활을 접을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해경을 준비했다. 항상 뉴스에 중국어선과 대치하는 해경이 나오는것을 보면 난 피가 끓었다.

1년동안 자격증을 취득하고 연말부터 본격적으로 해경공부만 하려했는데..

 난 지금 동생이 가있는 호주로 이민갈 생각과 아니면 상선을 탈 생각을 하고 있다.

난 뭐지 하는 생각만 든다.  한시간동안 썼는데 지금은 다카키 마사오 따님이 18대 대통령이 되셨겠지...


생각없이 두서없이 쓴 긴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냥 제가 속이 답답해서 떠들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가를 한번 더 사랑하겠습니다. 개똥밭인 이승이 저승보단 낫다고 와신상담의 마음으로 5년 견뎌내겠습니다.

이민 생각하시는 분들 우리 한번 만 더 참고 이겨냅시다. 그때쯤이면 의료비가 비싸서 골골하신 수구꼴통분들 많이 가시겠지요.

신천지당의 텃밭도 사라질테니 다시 한번 더 참고 기다립시다.  힘 냅시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