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그곳은 나의 첫 직장이었다. 최근 “라면에 계란을 넣어 먹은 것도 아니고, 끓여서 먹은 것도 아니다.”, ‘순수 유가족’ 등의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청와대 대변인이 앵커로 있던 뉴스 프로그램이었다. 부서의 꼬꼬마 막내였지만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자 증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회사의 상시 출입증을 소유한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들떠 있었다. 피자가 사무실까지 배달되지 않는 탓에 매번 1층까지 내려가 받아와야 하는 번거로움마저 즐거웠다.
2년 가까운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사회 초년생에게 방송국, 특히 보도국은 그야말로 다이나믹한 곳이었고, 활기찼다. “뭔가 해보자”는 분위기가 흘러 넘쳤다. 탐사보도팀이 생겼고, 남녀 2인 앵커 시스템을 도입한 뉴스가 시작했고, 1분30초짜리 리포트 대신 긴 분량의 아이템이 늘었다. 방송국뿐만 아니라 사회도 역동적이었다. 대통령 탄핵, 국회의원 선거, 행정수도 위헌판결 등의 큰 사건이 줄줄이 터졌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큐시트를 들고 뛰어다니면서도 힘들기는커녕 재미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야말로 KBS가 공영방송다운 역할을 했던 때다. 밖에서는 친정부 인사가 사장이라고 비난했지만 안에서 느낀 분위기는 좀 달랐다. 보도본부 기자들은 결코 참여정부에, 특히 노무현 대통령에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편파적인 느낌을 받을 정도로 비판적이었다. 참여정부가 보장해준 언론의 권리가 짐짓 당연하다는 분위기였고, 나는 그걸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사의 생리라고 생각했다.
특히 공영방송의 언론인이라면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이다. 그 생각이 꽤 큰 착각이었음을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절절이 깨달았다. 사실 지난 정부 때부터 보복 인사와 편파 보도 등으로 논란이 된 이름들 중에는 함께 일했던 분들이 꽤 있다. 내가 일하던 시기에는 결코 중책이라고 할 만한 직책을 맡고 있지 않았던 분들이었다.
그만두기를 잘 했다는 생각은 진작에 했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를 지켜보면서 그 실망은 절망에 가까운 확신이 되었다. 명색이 국가 재난방송 주관사라면서 오보를 반복하고, 보도국장은 세월호 사고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비교하는 망언을 했다. 분노한 유족들이 방송국 앞까지 찾아갔을 때에는 만나주지도 않더니 청와대로 가니까 그제서야 보도국장이 보직 사퇴하고 사장이 사과했다.
심지어 유족들이 죽은 자식들의 영정을 품고 찬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있던 날은 어버이날이었다.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은 “KBS 내에서 최대한 노력을 해주실 것을 부탁드린 결과 보도국장이 사의를 표시했다”는 발언으로 청와대의 개입을 시인했다. 게다가 김시곤 보도국장은 “권력의 눈치만 보며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며 길환영 사장을 비난하기도 했으니 갈수록 가관이다.
이 와중에 새누리당은 현재 월 2500원인 수신료를 4000원으로 올리는 ‘KBS수신료 인상안’을 단독으로 기습 상정했다. 하지만 KBS의 기자들마저 “KBS 잠바를 입는 것이 두렵고, 자신들은 ‘기레기 중 기레기’”라고 반성하고 있는데 수신료 인상에 동의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이미 수신료를 내지 않는 방법을 소개하는 글이 퍼지고 있으며, KBS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도 벌어질 태세다.
요임금이 벼슬을 주겠다고 하자 허유가 “더러운 소리,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다”며 귀를 씻었다는 ‘허유세이(許由洗耳)’ 고사를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어쩌다 KBS 뉴스를 보게 될 때마다 이 고사가 부쩍 생각나는 요즘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KBS가 ‘개병신’이란 비아냥에서 벗어나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길, 한때나마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