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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차단했구나. 너한테 편지를 썼는데 또 보내질 못하네.
게시물ID : gomin_6639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Ibiza
추천 : 2
조회수 : 618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4/18 03:03:14

네가 생각이 나서 편지를 두 통 썼는데

날 차단해 놓았구나. 몰랐었어. 하하

내가 오유 하는 건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내 주변 사람들 중에 오유 하는 사람도 없어서 이 글이 네 눈에 네 맘에 들어갈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보내지 못하는 편지 여기다 쓴다.




가끔 가다가 네가 사무치게 생각나는 날이 있어. 페이스 북에서 풋내 나는 연인들의 대화를 읽거나, 우리가 했던 것들을 하고 있는 다른 이들의 사진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첫사랑 관련 글을 읽을 때면 그 시절의 나와 네가 그리고 그 때 느끼던 감정들이 함께 떠올라.

그 때 우리는 싸우는 게 주요 일과였지. 하루만 지나도 왜 싸웠는지 기억도 못하면서 그 때는 참으로 많이도 싸웠어. 왜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지, 그러면서도 왜 매일같이 만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가 걸을 대 발을 땅에 끄는 것으로도 싸우고, 네가 밥 나왔는데 계속 폰 만진다고도 싸우고, 내가 하품할 때 입 안 가린다고도 싸웠지. 정말 만날 때 마다 싸웠어. 지쳐가던 난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했고, 친구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에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고 그래서 싸우는 게 아니냐 하곤 되물었었지.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그 때는 싸우더라도 니 얼굴을 보는 것이 무척 좋았어. 싸우는 동안에는 너무 밉지만 절대 집으로 먼저 돌아가거나 널 돌려보내지는 않았어. 같이 있고 싶었으니까. 화가 난 얼굴이라도 계속 보고 싶었으니까.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우리의 일상이었던, 싸웠던 일들은 기억이 잘 나질 않아. 하지만 우리가 만날 때도 잊고 있던 우리의 첫 여행의 기억, 너와 나의 첫 크리스마스, 통영에서의 두 번째 크리스마스, 어느 날 무작정 찾아간 동물원, 싱그러운 봄내음에 취해 찾아갔던 허브 힐즈, 백사장이 너무 아름다웠던 경포 바다 등의 기억들은 아직도 생생해. 아마 10, 2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일 듯해. 눈 감을 때 까지 가지고 갈 추억들이야. 사실은 이런 추억들뿐만 아니라 네가 늘 먹던 커피가 무엇인지, 네가 늘 타는 지하철 칸이 어디인지, 비가 오는 날이면 p가 뭘 하는지도 기억이 나. 시간이 꽤 지났기에 널 생각하는 일도 이제는 잘 없는데 가끔씩 이유 없이 네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날이 있고 그럴 때면 너의 모든 것들이 새록새록 기억나. 시간이 지난 만큼 흐려지긴 했지만 말이야.

네 생각이 나서 너의 사진을 새로이 꺼내 봤지만, 슬프게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아. 네 미소를 바라볼 대 느껴지던 감정도, 우리가 헤어지고 난 뒤 찢어지게 아프던 감정도,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어. 그리움도 아마 널 향한 것이 아니라 그 때의 나를 향한 것 인가봐. 너를 보면 애처럼 마냥 좋아하던,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던 그 때의 내가 그리운 건가봐.

20살에 사랑을 시작했던 우리가 벌써 25살이 되었어. 시간도 참 빠르고 나이 먹는 것도 참 빠른 것 같아. 변한 것도 별로 없는데, 이루어 둔 것도 별로 없는데 이렇게 나이만 먹어가네. 이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우린 서로에게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남겠지. 그런데 그것도 꽤나 괜찮은 것 같아.

우리 서로 파이팅 하자. 20살의 그 대가 더 이상 그리워지지 않도록.




두번 째 편지



갑자기 jk김동욱의 가시를 삼키다라는 노래가 듣고 싶어서 찾다가 보니까 그 사람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가 있더라고. 이등병의 편지 내가 참 좋아해서 입대 전에 자주 부르던 노래였잖아. 별 생각 없이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나온다. 나도 모르겠어. 이 사람이 되게 잘 불러서인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눈물이 나고 있어. 노래를 집중해서 듣다보니, 내가 오락실 노래방에서 이 노래 부르면서 나도 울고 너도 울던 그 장면이 생각나서 인가봐. 어린 나이에 군대라는 곳은 막연한 두려움의 본산이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 있던 시절이 제일 행복했지만 입대 전에는 그걸 알 리가 있나.

우리 헤어진 지 벌써 일 년 하고도 반년이 더 지났어. 시간 참 빠르다 그지? 네가 유학을 끝내고 나도 곧 유학을 끝내는구나.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간다. 너와 헤어지고 새롭게 만난 사람들이 너를 알기 전 만난 사람들만큼이나 많아. 전 세계 친구들도 사귀었고 상해 토박이라 불릴 만큼 많이도 돌아다녔어. 이렇게 시간은 잘 지나가는데, 오늘처럼 별 생각 없이 듣던 노래가 자꾸 널 생각하게 해. 내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닌데 너와 관련된 거는 아직도 까먹지 않고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 시간이 많이도 지났는데 말이야.

사실 우리 헤어지고 나서 내가 널 괴롭게 했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싫고 부끄럽네. 하지 않았어야 할 말들과 행동들 때문에 넌 나를 완전히 지워냈을 수 있겠다. 그런데 시간이 또 지나니까 네가 밉고 싫었던 행동과 말들, 내가 저질렀던 이기적인 행동들 모두 기억에서 지워지고, 그냥 우리가 좋았던 시간만 생각이 나. 기실 그 좋았던 시간들도 자주 생각나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생각 없이 걷던 중 발견한 벚꽃 잎에서, 나도 모르게 내 귓속으로 흘러들어온 네가 좋아하던 노래에서, 우리 반 친구 중 볼이 통통한 여자애 모습에서 그냥 네가 가끔 생각이 날 뿐이야.

시간이 지나면서, 널 많이도 괴롭히면서, 그리고 내 스스로를 너무나 못살게 만들면서 깨달았어. 과거는 돌이킬 수 있는 게 아니구나 하고 말이야.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도 널 잊지 못해 힘들어서가 아닌, 네가 있었기에 참 행복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서 고마워서야. 고마워. 똑같은 벚꽃이 피더라도 난 더 깊은 감정으로 그 꽃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릴 줄도 알게 되었어. 이런 내가 좋고 이런 나를 만들어 준 네가 고마워.

요즘은 네 소식이 들리지 않아 네가 잘 지내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네가 많이도 미웠고 네가 내게 느낀 만큼 나도 배신감을 느꼈기에 네가 행복하지 않길 바랬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내게 주어진 것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건 모두 네 덕분이니까. 내가 이만큼 성숙해 질 수 있었던 만큼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요즘 많은 사람들이 연애 문제로 힘들어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어 하더라. 친구가 많지 않은 너이고,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해결하려던 너이기에 지금 네 옆의 그 사람이 좋은 친구, 오빠, 아빠 같은 사람이 돼서 네 힘이 되 줬으면 좋겠다.

지금 이등병의 편지 한 번 더 듣는데 아 죽겠네. 하하

네게 다시 오지 않을 201325살의 여름을 잘 즐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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