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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지구
게시물ID : panic_512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27
조회수 : 3216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3/06/25 20:30:31
 
< 지구 >
 
 
 
 
"저것을 보십시오! 실로 놀라운 광경입니다. 사람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자의 입에서 튄 침이 마이크에 송글송글 맺혔다.
 그러나 무대 앞에 모인 천여명의 관중들 중에 아무도 이를 지적하거나 눈살찌푸리지 않았다.
 다들 사회자가 가리키는 곳을 보느라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언이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역사에 남을 광경을 보고 계십니다! 시청자 여러분, 관중 여러분, 이 놀라운 순간을 기록하십시오!"
 
 어느 예언자가 있었다. 자칭 예언자라고 하는 이들이 그러하듯, 그는 자신의 말에는 한치의 거짓도 없으며 모두 현실로 이루어질 거라고 주장했다.
 다만 다른 것은 신의 계시가 아니라 지구에서 받은 계시라고 말하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고, 무시했으며 어느 tv쇼에서는 예언자를 패러디한 코미디 프로그램이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예언자를 연기한 연기자가 자기 역할을 너무도 훌륭히 소화한 탓에, 그의 무대만 보고 있어도 진짜 예언자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말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얼마 뒤에 예언자의 얼굴은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그가 길거리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이밀고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올렸으며, 그가 거주하는 집의 주소까지 알아내 괴롭히기 시작했다. 예언자는 가족도 친구도 없는 외톨이었기 때문에 그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tv쇼는 종영했지만 예언자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관심은 곧 전국적인 괴롭힘으로 발전했다.
 
 어느 시사 프로그램에서 시민들을 인터뷰했다.
 
 [이 사회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현상에 동참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장난인데요, 뭐. 게다가 그 사람도 무관심 보다는 관심을 받는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그런 사람, 관심종자잖아요?]
 
 예언자의 예언은 황당무계했다. 종말이 찾아온다느니 신이 강림한다느니 하는 말이었다면 사람들은 귀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예언한 것은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새처럼 날아오르리라"였다. 예언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사람이 하늘은 난 다고? 하하! 전부 방사능에 노출돼서 슈퍼맨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예언자가 예언한 날이 점점 다가왔다.
 생방송 무대가 준비되었고, 예언자를 연기했던 코미디언이 나타나 사회자역을 맡았다.
 대대적인 홍보 덕분에 예언의 시각에 다다르자 전국의 시민들은 tv앞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누가 최초로 떠올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동시다발적으로 전세계 곳곳에서 하늘에 떠있는 사람들이 발견되었다.
 하늘에 떠오른 사람들은 놀라기는 했지만 편안해 보였다. 아주 부드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 이곳에서도 시작되었습니다! 저 꼬마아이를 보십시오!"
 
 사회자가 엄마 손을 잡고 있는 소년을 지목했다. 소년의 발은 이미 지상에서 20cm가량 떠올라 있었다. 소년의 작은 몸은 어른들보다 더 빨리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머리카락이 정전기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삐쭉거리며 솟구쳤다. 그 다음은 그가 입은 옷과 신발이었다. 하늘 높은 곳에 거대한 자석이 있어서 인류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날아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엄마!!!"
 "어딜 가는 거니, 얘야!"
 
 아이의 엄마가 다급하게 외쳤다.
 
 "엄마를 데려가렴! 날 버리지마!"
 
 그녀의 비참한 절규는 카메라를 통해서 전국에 중계되었다. 하지만 그녀를 욕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한 절규는 전세계 어느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도대체 어디까지 날아갈 건가요?!"
 
 그때, 사회자의 머리카락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사회자의 마이크를 쥔 손이 위로 힘껏 들어올려졌다.
 
 "여러분! 드디어 저도 날아갑니다! 카메라팀, 어서 따라오세요! 이러다간 놓치고 말겁니다!"
 
 예언이 시작된지 한시간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반나절이 흘렀을 때, 지상에 발을 붙이고 있는 사람은 인류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밤이 되었다. 하늘엔 별 대신에 손전등을 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림자 덕분에 달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로 새까맣게 뒤덮인 지붕을 보면 마치 까마귀떼에게 습격당한 것 같았다.
 
 다시 하루가 지났을 때 사회자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아무래도 멈추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 계속 올라가다간 대기권을 뚫을지도 모르겠군요! 하하하!"
 
 그가 웃음을 터뜨리자, 근처에 떠있던 사람들이 배를 잡았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누가 이런 짓을 하는진 몰라도, 어차피 장난일테니 곧 그만두겠지요."
 
 하지만 다시 하루가 지났을때, 그의 말에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회자는 카메라를 보면서 여전히 우스갯소리를 해대고 있었지만 시청자들도, 관중들도, 사회자 본인도 아무도 웃지 않았다.
 
 점점 공기는 희박해졌고 기온은 낮아졌다. 너무 높이 올라온 탓에 발 밑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맨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배터리가 다 되었다는 의미였다.
 꿀꺽. 사회자는 침을 삼켰다.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멘트를 준비했다.
 
 "우주복을 입으십시오, 여러분!"
 
 이는 지상에 남아있는 자들을 위한 농담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방송이 나오는 채널엔 지직거리는 흑백화면만 잡힐 뿐이었다.
 결국 그의 마지막 멘트는 허공에 흩어지며 사라지고 말았다.
 
 지상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자기 몸에 무거운 돌과 쇳덩이를 묶어서 자기 몸이 떠오르지 않게 하였다.
 혹은 집의 창문과 문을 모두 걸어잠그고 천장에 붙은 채로 생활하였다.
 
 이 모든 일의 실마리는 한사람에게서 밖에 얻을 수 없을 거란 결론이 나왔다.
 
 학자들과 정부기관에서 예언자를 찾아 나섰지만,
 그들이 찾아낼 수 있던 것은 목에 줄이 묶인 채로 천장에 붙어서 달랑달랑 흔들리고 있는 그림자가 다였다.
 예언자는 자신의 예언이 시작되는 날짜로 바뀌기 직전,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였다.
 부패가 진행된 그의 몸에서 흐른 진물이 천장을 흠뻑 젖시고 있었다.  
 
 사람들을 위로 끌어당기는 힘은 점점 세졌고, 바윗덩어리로도 버틸 수가 없었다.
 방공호에 들어가서 숨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곤 모두 도축당하는 동물들처럼 질질 끌려갔다.
 
 그들을 잡아 당기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지구였다.
 
 우주 반대편에 존재하는 또다른 지구.
 
 질투심이 많은 이 행성은 자신과 똑같은 크기에, 똑같은 조건을 가진 쌍둥이 행성에 사는 종족을 부러워했다.
 때로는 자기들끼리 전쟁을 일으키고, 때로는 얼음을 녹이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들의 행성을 위해서 희생을 각오하고 투쟁하기도 하는 인간들은 멀리서 보기에도 너무나 재미있어 보였다.
 호시탐탐 그들을 빼앗아올 기회를 엿보던 질투심 많은 행성은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자기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해서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지구에는 너무나 많은 동물들과 식물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지구는 사람들을 붙잡을 힘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속절없이 하늘 높은 곳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구 역시 만만치 않았다.
 
 쌍둥이 행성이 질투심으로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려고 하고 있다는 계획을 알아차린 지구는 온힘을 다해 대응하기 시작했다.
 지구의 대응은 금세 효과를 보였다. 사람들은 더이상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하지만 내려오지도 못했다. 질투심 많은 행성이 계속 그들을 끌어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늘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또 내려가지도 못한 채로
 중간에서 멈춰버렸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늘에 떠있는 영문도 모른채
 이 기괴한 현상이 끝나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지구의 나이를 헤아려봤을때,
 이 싸움이 끝났을 때 과연 살아남은 사람이 존재할지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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