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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 오늘은 8월 15일, 오늘은 67주년 광복절
게시물ID : humorbest_5128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머!저건?
추천 : 123
조회수 : 6894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8/15 01:52:03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8/15 01:26:49







광복 후 서울 남산에 계양되는 태극기 







광복 당일 환호하는 국민들


대한 독립 만세!!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나님이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라 대답할 것이다.


다음 소원을 물으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라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해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내가 죽어서 한국이 독립된다면 기꺼이 죽으리라."


 

 

"우리 가운데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이 인물이 될 공부를 하지 않는가.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자가 되어라."



-도산 안창호-







“왜법이 불공평하여 나의 생명을 빼앗기는 하나 나의 충혼은 빼앗지 못할 것이다.”


1910년 9월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어 순국. 

순국 직전에 하신 말씀


"나는 죽어 수십만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기어이 일본을 망하게 하고 말겠다!"



-이재명 의사-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 열사-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


.

.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도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매헌 윤봉길-







조선조 500년간 정승을 10명이나 배출한 삼한갑족 출신으로서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오성 이항복'의 8대손인 이회영 육형제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 이것이 대한 사람의 본분이요,

왜적과 피흘리며 싸운 이항복 공의 후손된 도리다."


이말을 남기며 그당시 600억이 넘는 재산을 전부 털어 독립운동에 모든것을 바쳤습니다..

 

여섯형제의 부친은 고종때 이조판서를 지냈던 이유승,

조선말 최고의 갑부이자 영의정까지 지낸 이유원은 이들 육형제의 당숙이자

둘째 이석영의 양부(그당시 최고의 부자라고 칭송받았음) 하지만 이유원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모두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는 등 독립운동을 하는데 투입되었고 참고로 신흥무관학교는 1930년 폐교될때까지 독립군 3500명을 양산하였습니다..

여섯형제 뿐만이 아니라 이회영의 아들인 이규학, 이석영의 아들인 이규준 등 대를 이어 독립운동에 헌신고..

넷째 이회영은 일본 관동군 사령관을 사살하기 위해 상해에서 만주로 갔다가
미리 첩보를 받은 일본군에 의해 체포, 뤼순 감옥에서 나흘만에 옥사

셋째 이철영은 신흥무관학교 교장으로 일하다가 병을 얻어 육형제 가운데 가장 먼저 사망.

막내 이호영은 북만주 지역에서 의열 활동을 벌이다가 일가족이 모두 함께 몰살 당함.

둘째 이석영은 상해에서 홀로 굶어 죽었으며 아직까지 그 유해를 찾지 못했다.
(망명당시 이석영 일가가 처분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한 재신은 현 시가 최소 600억 수준)

첫째 이건영은 선산관리차 국내로 다시 들어왔다가 해방을 보지 못하고 사망.

이들 육형제 가운데 살아서 독립을 맞이한 사람은 임정 국무령 출신인 다섯째 이시영 선생 뿐이다.

 




-이회영 6형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민국 만세



모든 애국 선열께 감사합니다.

내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셔서.

역사를 잊지 않겠습니다.



가져온 곳 : 
카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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