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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윙윙, 벌레
게시물ID : panic_514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30
조회수 : 2680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06/28 21:04:58
  모기.jpg
     
 < 윙윙, 벌레 >
 
 
 
 지난밤은 뜨거웠다.
 실로, 젊음의 혈기라는 말이 어울리는 밤이었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우리들은 텐트를 치고, 저녁밥이 끓어오르기 전부터 술잔을 기울였다. 서툰 솜씨로 끓여낸 찌개가 준비되자 설익은 밥을 한그릇 퍼담아 모여 앉았다. 그때부터 밥을 안주삼아 본격적인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얼큰한 찌개 국물이 알콜에 시달린 속을 달래주었다. 해는 떨어졌으나 공기는 후덥지근했고, 텐트 옆으론 계곡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몽롱한 눈으로 본 산의 풍경은 지상낙원이나 무릉도원만큼 고즈넉한 경치를 뽐내고 있었다. 경치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우리는 몇명인지 모를 술을 바닥까지 털어서 마셔댔다. 덕분에 자정무렵이 되자 제정신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영하자!"
 "술 먹고 무슨 수영이냐."
 "허리까지 밖에 안 와."
 
 나는 손을 저으면서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술이 약한건 아니었지만 포만감 때문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친구들은 손전등을 챙겨서 계곡으로 가는 듯했다. 나는 머리를 대자마자 금세 잠들어버렸다. 그러나 얼마 못가 일어나야만 했다. 모기들이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던 것이다. 가방을 뒤져서 산에 올라오는 길에 구입한 분사형 모기약을 뿌려댔다. 술에 취해 제대로된 사고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한통을 다 쓸때까지 뿌렸던 것 같다. 나는 독한 약냄새에 기침을 쿨룩쿨룩하면서도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몸을 웅크렸다. 그리곤 다시 잠이 들었다.
 
 그것이 어젯밤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무도 없었다. 텐트는 두개나 쳐놓았지만 그 안에서 밤을 보낸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했다.
 여섯명이나 되는 사내놈들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리는 없었다. 나는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와서 일대를 수색했다.
 
 "어딜 간거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땀으로 흥건한 이마를 쓸어 올렸다. 눈치없는 뱃속은 숙취를 호소하며 속을 달랠 음식을 내려보내달라고 성화였다.
 어젯밤 계곡에 간다고 했던 놈들의 말이 불안함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만약, 물에 빠졌다고 해도 신발 한짝 조차 남아있지 않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한두명도 아니고 무려 여섯명이었다. 사고가 일어났다고 해도 어떤 흔적이라도 남아 있어야 했다. 
 나는 다시 텐트로 돌아왔다. 핸드폰을 찾았지만 전원이 나가 있었다. 배터리가 다 되어 꺼져 있었다.
 
 그때 붉은 흔적이 눈길을 잡아 끌었다. 통통한 배를 내밀고 텐트 벽에 달라붙어 있었던 모기의 흔적이었다. 모기를 때려잡은 내 손에도 그 흔적이 옮아 있을 터였다. 모기약에 희생된 수십마리의 모기가 텐트 주변에 검은 깨처럼 떨어져 있었다. 보기에 역겨웠다. 슬리퍼로 모기 시체들을 한쪽으로 밀어버린 다음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내 가방을 챙겼다.
 
 119에 도움을 요청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정확한 사정도 모른 상태로 대대적인 수색을 벌일 수는 없었다. 평소에 장난 치길 좋아하는 놈들이니까, 먼저 곯아 떨어진 나를 놀리려고 일부러 숨어있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우연히 여자들이라도 만나서 자리를 옮겼는지도 몰랐다. 친구들은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다. 그런 놈들 여섯명 전부가 실종될 리는 없으니까. 우선 산 아래에 있는 주유소에 가서 전화를 해볼 생각이었다. 안일한 생각인듯 싶기도 했지만 이런 결정을 내린데에는 산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도 한몫했다.  
 
 '별 일이야 있겠어?'
 
 주유소까지는 몇 키로미터 정도 걸어야 했다. 기억이 맞다면 3,4 km 쯤 될 것이다.
 산 바로 아래에 집이 몇채 있는 걸 보았으니까 그쪽으로 가서 도움을 청하는 것도 괜찮겠지.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산을 거의 내려왔을 즈음 마을에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 있었다.
 그래봤자 근처에 사는 사람이 적어서 십수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마침 지나가는 중년 여자의 길을 가로막았다.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였다.  
 
 "저쪽에 무슨 일이에요?"
 "어제 저쪽 집하고 저쪽 집에 살던 사람들이 개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지 뭐야. 택배 기사인지 우체국 직원인지가 발견했다는데, 난리가 났어. 총각은 어디서 내려오는 거야? 산에서? 혼자 온거야?"
 "친구들하고 같이 왔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제 또래 남자들 못 보셨어요?"
 "못 봤지. 나는 저기 다리 건너에 살아. 이쪽에 큰 일 났다고 해서 와본거지. 총각도 친구들 찾아서 얼른 내려가. 독극물일 수도 있다니까."
 "독극물이요?"
 "입에 거품을 한가득 물고 죽었다잖아. 독이 아니면 뭐겠어?"
 
 아주머니는 바쁜 걸음으로 나를 스쳐 지나갔다. 핸드폰을 빌리려고 그녀를 다시 부르려다가, 양 손이 비어있는 걸 보고 그만두었다.
 어차피 핸드폰을 충전하려면 주유소까지 가야 했으니까 말이다.
 
 주유소 사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와 있었다. 그도 마을에서 있었던 사고를 들은 듯 보였다.
 
 "핸드폰 충전 되나요?"
 
 그가 심드렁하게 나를 보더니 안쪽을 가리켰다. 주유소 직원이 나한테서 핸드폰을 받아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이 어딘가요?"
 "건물 뒤쪽에 있어요."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날벌레가 얼굴로 날아들었다. 소변기 세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평범한 화장실의 풍경이었다. 급하면 못 들어갈 것도 없지만, 선뜻 들어가기는 꺼려지는. 코를 찌르는 지린내 때문이겠지. 나는 안으로 들어가서 소변기 앞에 섰다. 모기 한마리가 벽에 달라붙어 있었다. 누구의 피를 빨아먹었는지 아주 통통했다.
 
 그때, 문이 삐걱 열리더니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주유소 직원이었다. 그가 어색하게 눈인사를 건넸다. 직원과 나는 나란히 섰다. 세개의 소변기 중에 가운데는 비어 있었지만 공간이 협소한 탓에 거의 붙어있는거나 마찬가지였다. 어색해진 나는 모기의 통통한 배를 보다가 문득 말했다.
 
 "모기가 많네요."
 "여름이면 다 그렇죠."
 
 빨리 끝낸 그가 바지를 추스르고 세면대로 걸어갔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도 바지를 정리했다.
 그 순간 괜한 심술을 부려본다. 검지 손가락이 무방비한 모기의 몸을 꾹 찍어 눌렀다. 곧 새빨간 피가 검지에 옮겨 붙는다.
 
 그리고 그 순간,
 
 푸왁!
 
 기묘한 소음이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등 뒤에서 들린 소리였다. 세면대 쪽에서. 뒤를 돌아본 나는 공포로 얼어붙었다.
 
 주유소 직원의 몸이 세면대에 고꾸라져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상체가, 머리가 터져나간 목이 세면대에 처박혀 있었다.
 거대한 힘이 그의 머리에 압력을 가한 것처럼 머리는 산산히 분해되어 있었다. 아니, 터져버렸다. 두개골 안쪽에 폭탄이 설치돼있던 것처럼.
 머리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으, 으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화장실에서 뛰쳐 나갔다.
 
 주유소 사장과 경찰 두명, 그리고 주유소를 이용하기 위해 찾아온 손님 세명이 그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손은 직원의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경찰들의 표정이 사납게 변했다. 그들이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왔다. 나를 붙잡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보였지만 자극하진 않겠다는 듯이 차분한 걸음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저, 저기 사람이....!"
 
 콰직.
 
 발 아래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발을 치웠다.
 
 콰직. 콰직.
 
 무언가가 발 밑에서 연이어 터져 나갔다.
 벌레였다.
 곤충에 관심없는 나로서는 그 종류를 알 수 없는,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검고 통통한 몸을 가진 벌레였다.
 벌레 세마리가 순식간에 터져버린 것이다.
 
 놀라운 일은 그때 벌어졌다.
 
 푸왁!!
 
 경찰들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화장실에서 목격한 그것과 동일한 현상이었다.
 이미 주유소 사장의 몸은 바닥에 고꾸라져 있었다.
 
 손님 세명이 이 광경을 목격하곤 주저 앉아버렸다. 그들의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나를 향해 있었다.
 내가 괴물이라도 되는 듯이.
 나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내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자, 잠깐만요! 이건 내가 그런게 아니에요, 사람이 어떻게 그러겠어요. 네?! 어디가요!"
 
 그들은 혼비백산하며 차로 달려갔다.
 그때, 나는 가려움을 느끼고 무의식중에 손바닥으로 뺨을 툭 쳤다.
 피로 범벅된 뺨 위로 모기가 달라붙어 있었다. 터져나간 모기의 피가 내 손바닥에 덧그려졌다.
 
 "아....이런...!"
 
 후회는 늦었다.
 손님 세명 중 한명의 머리가 터져나간 뒤였으니까.
 
 남은 두명은 "으아악!"비명을 지르면서 차를 출발시켰다. 어찌나 급했는지 문도 닫지 않고 일단 속도부터 내었다.
 그들이 떠나고 나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았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나오는 여러구의 시체들 사이에 홀로 서있는 기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때 지난밤의 일이 머리를 스친다.
 
 갑자기 사라진 친구들. 거품을 물고 죽은 채로 발견된 주민들.
 텐트 주위에 새까맣게 죽어있던 모기들의 시체.
 내가 뿌린 모기약. 빈통이 되도록 뿌려댔던 독한 살충제.
 내 손에 의해 터져나간 벌레들.
 피, 붉은 피,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
 
 어지럽다.
 제대로 서있을 수 없을 정도로.  
 
 윙,,,
 
 벌레 한마리가 눈앞을 어지럽게 하며 날아든다.
 모기보다 작은 그것은 용감하게도 내 눈꺼풀에 앉았다가, 이내 그 안의 흰자위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꼼짝도 못하고 서서 벌레가 눈알 위를 기어다니는 느낌을 맛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끄집어 내서 납작하게 터뜨려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는 나밖에 없었다.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살아있는 사람은 오직 나 혼자.
 
 손가락이 꿈틀거린다.
 겁없는 벌레는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는 놈의 터져나가는 몸뚱아리를 상상했다.
 그와 동시에 터져나가는 내 머리 역시.
 
 놈의 다리가 눈 깊은 곳까지 파고들자,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강하게 눈꺼풀을 짓눌렀다. 
 예측한 통증은 느껴지지 않는다. 온몸의 감각이 사라진 것처럼.
 
 들리는 거라곤 무언가가 콰직, 터져나가는 소리 뿐이었다.
    
 
 
 
 
 
 
 
 
 
 
 
 
 
 
/
 머리가 복잡하면 공포글을 쓰면서
 해소를 해요. 두통 때문에 죽겠습니다..
 
 쓰면서 베오베의 브금이나,
 공게 작가분의 브금을 들으면서 쓰는데
 올리고나면 제 글엔 정적만 흐르네요.,ㅜㅜ
 배경음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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