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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게시물ID : humorbest_5155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도참
추천 : 110
조회수 : 17532회
댓글수 : 1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8/20 13:56:14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8/20 05:23:12


약 20년 전, 여름즈음의 울산.
"오빠랑 재밌는거 하러 가자. 요앞이 오빠 집이야."
6살? 7살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는 처음보는 남자를 따라갔었다.
자세한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는 나를 자기 좋을대로 대하고는, 저쪽이 화장실이니 아래를 씻고 집으로 가라고 했다. 단 씻을때 화장실 문은 닫지 말라고 했고 나는 그리했다. 그는 내가 아래를 씻을 동안 한쪽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나를 관찰했다.
그 집 거실에는 종이로 접은 백조 두마리가 있었다.
평소보다 늦은시간에 온 내가 어디서 무얼하고 왔는지 들은 엄마는 나를 때리며 울었다. 아무에게도 오늘일을 말하지 말라고 했고, 나는 알았노라 했던 모양이다. 다음날 엄마와 병원에 갔었다. 여자 의사선생님이었다. 병원에서도 엄마는 울었다. 엄마 울지마 했지만 엄마는 그럴수록 더 울었다. 속상했다.
엄마는 그 뒤로 내머리를 항상 남자처럼 숏컷으로 잘라주었다.
동생의 양갈래로 땋아내린 긴 머리가 너무 부러워서 떼를 썼지만, 내 머리는 여전히 짧았다.
그시절 좋았던 일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도, 그집 거실의 빨간부리를 한 종이 백조 두마리는 또렷하게 기억이난다. 엉뚱하게도.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몇 번의 봄과 겨울이 지나가고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숏컷이었다. 그때는 동생의 긴 파마머리가 부럽지 않았다. 여름방학 숙제를 하려고 색도화지를 사러 나갔다. 어떤 아저씨가 길을 물어봤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어딨느냐 묻기에, 책에서 배운대로 길을 가르쳐 주었다. 아저씨는 잘 모르겠다며 같이 가자고 했고, 모르겠다고 같이 가자던 사람이 이쪽이 빠르다고 낯선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 아저씨는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 내 바지에 손을 넣어 더듬더듬댔다. 뭔진 모르겠지만 싫고 무서운 느낌에 아저씨를 밀치고 뛰쳐 나왔다. 아저씨는 바지를 추스르느라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왠지 울음이 나와서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나를 때리며 또 울었다. 엄마한테 처음으로 바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날 도널드덕 티셔츠에 하얀 반바지를 입고있었다.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았다. 엄마가 왜 울었는지 알게됐다.


학교에서 순결서약식?을 했다. 친구들은 그날 받은 딸기맛 사탕이 맛있다고 좋아했다. 나는 사탕을 좋아했지만 왠지 먹질못하고 집으로 가져와서 쓰레기통에 쳐넣었다. 나도 낄낄대며 사탕이나 먹는 무리 속에 끼고싶었다. 그날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20살, 대학생이 되었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다. 좋아하는 남자와 첫키스란걸 해 보았다. 썩 기분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애가 내 치마에 손을 넣었다. 그애를 밀치고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잠이오질 않았다. 이틀뒤 그애는 내게 메신저로 헤어지자고했다. 그리고 두달 뒤, 그애는 군대엘 갔다. 여자인 같은과 친한 친구 A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A의 남자친구 B도 나를 위로해 주었다.

21살, 내게 너무나 잘해주던 남자와 사귀었다. 그는 B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베프베프 하던 남자였다. 그애와도 키스를 했다. 두달 만에 잠자리를 요구했다. 나는 내 어릴적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더러워서 그런 일을 할수 없다고 했다. 그애는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날 우리는 둘이 엉엉 울었다. 그래도 며칠이 지나자, 그는 잠자리를 원했다. 도대체 그 빌어쳐먹을 것이 뭐길래 너도나도 못해서 안달인지가 궁금해 잠자리를 가졌다. 아프고 무섭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잠자리나 스킨쉽 때문에 그에게 자주 화를 내게 되었다.

22살 2월, 남자친구가 군대엘 갔다. 나는 비슷한 시기에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A와 둘이 놀았다. A는 소주 두병도 너끈히 마시는 여자였고, 그녀는 술자리를 좋아했다. 나는 소주 반병도 못마시니 나랑 둘이 마시는건 재미가 없었나보다. A는 낮에는 나랑 수업도 듣고 어울렸지만, 밤에는 내가 모르는 남자들과 술을 마시러 다녔다. 그이상의 일도 했다는걸 알고있다. 그녀는 내게 꼭 그일을 자랑했다. 남자친구 있는데 왜그래? 하니까 군대에 있으면 모르니까 괜찮다고했다. 나는 A가 미웠다. B는 내 친구이기도한데. 아무리 설득해도 A는 달라지지않았다. 그해 겨울 즈음에 그녀가 말한 남자는 열 손가락씩 두 번을 헤아려야할 정도였다. 나는 그녀를 설득하는걸 포기했다. 나이트도 클럽도 안가고 다른남자 안만나는 나를 바보라고하며 A는 내게 손가락질을 했다. 내 친구지만 그 때에는 그녀가 참 아둔해보였다.



23살 여름, 친구와 술한잔 하며 군대에 있는 내 남자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내 친구는 매우 망설이다가 연거푸 소주 몇잔을 들이키더니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2년전에 내 남자친구와 A가 잠자리를 했단다. 나랑 사귄 이후였다. 지금에야 말해줘서 너무 미안하다고 친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는 말했다, "지금이라도 말해줘서 고마워."
나는 A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뭐해~? 방학이라 뭐하는지 궁금해서 전화했어. 담에 만나서 밥한끼 먹자." 하고 끊었다. 


매일 10시경에 남자친구가 부대에서 전화를 했었다. 그날도 전화가 왔다. 내게 화내기는 커녕 언성한번 높인적이 없던 내 남자친구가 그런적 없다, 어디서 누가 그런말을 했냐며 자긴 할말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그럼 나도 할말 없다. 헤어지자.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몇통이고 왔다. 그제야 받으니 미안하다 그때 딱 한번 뿐이었다 모두 설명 할 수있다했다. 듣기 싫으니까 꺼지라고 했다. 


그 주 주말에 그애가 갑자기 휴가를 나왔다. 
우리집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남들 들을까 쪽팔리고 나도 열받아 추한꼴 보일것 같다고 해서 우리는 모텔방을 잡았다. 나는 침대에 비스듬하게 누워서 담배를 피웠고, 그애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내게 빌었다. 
나는 A에게 전화해서 그녀를 불러냈다. 삼십분 뒤에 A가 우리가 있는 모텔방에 도착했다. 가여운척 같이 무릎 꿇고 입다물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있는 꼴이 우습고 가증스러웠다. A와 남자친구의 말은 그럭저럭 비슷한 말이었다. 대충 조합해보면, 나와 싸운날 나와 가장친한 A에게 조언을 얻으러 갔다가 술한잔 하다 보니 A가 남자친구 물건 작다작다 놀려서 아니다 한번 해볼래? 해서 하게 됐다고. 울면서 하는 말이 삽입은 했지만 죄책감에 물건이 죽어버려서 사정은 안했다고. 
웃음이 나와서 막 웃어버렸다. 둘다 보면 뺨이라도 때리고 싶었는데 막상 보니 더러워서 손도 대기 싫으니 꺼지라했다. 



그 후에 나는 어찌어찌 남자친구를 용서했고, 그해 가을 A에게 비싼 술한잔 사라고 연락했다. 친한 친구니까 남자때문에 잃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A는 무척 고마워했고 우리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



24살 봄, 남자친구가 전역을 했다. 꽃신을 사준다고했다.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기뻤다. 남자친구의 전역이.
나는 그랬지만, 남자친구는 내가 질렸던 모양이다. 나와 있는 시간이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나와 데이트 하는 중에도 다른여자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오고, 나와 같이 있는 자리에서 그여자와 카톡을 하며 너무 즐거워했다. 나한텐 그렇게 웃어준 지가 되게 오래됐는데... 3년간 만나면서 질린 모양이었다. 어머니랑 밥먹게 늦어도 7시만 되면 집에 가야한다했다. 그리고는 게임에서 만난 그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5시간은 가야하는 곳은 잘 다녀왔다. 하루는 거기서 자고왔다. 이틀동안의 어머니 식사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리 오래지 않아 헤어지게되었다. 

그 뒤로는 어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소식도 모른다. 
내게는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싶다. 
누구에게든, 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문득 돌아보니 참 많은 일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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