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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지 같은 청춘 <34> 눈빛
게시물ID : lovestory_539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다오리
추천 : 1
조회수 : 65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4/23 00:44:29

며칠 전 주말 해거름 다섯 명의 초등학교 동창생과 술자리를 함께 했다. 모두 1952년에 태어난 동란동이들이다. 머리에 된서리가 내린 사람들. 등산과 낚시, 병원이 하루 일상인 사람들. 첫 번째 화제는 남북 대치의 현 시국과 전쟁 이야기였다. 당시 한 살 박이였던 사람들이 어찌 그리 6. 25 전쟁 이야기를 실감 있게 하는 지 어이가 없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화제는 두 번째로 옮겨 갔다. 화제의 두 번째는 자식 자랑이었다. 누구 아들은 유학 가서 MBA를 따 미국계 회사를 다니고, 누구 아들은 사시 합격해서 검사가 되고, 누구 딸은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레지던트 2년차라 했다. 잠시 공허한 시간이 흘러가고 술자리가 끝날 무렵 마지막 화제는 ‘요즘 애들’이었다.


“요즘 애들 왜 이래. 우리는 가난했지만 뭔가 해 보려는 눈빛이었어. 요즘 애들 눈빛 좀 봐. 다 죽어 있어. 노래는 그게 다 뭐야. 사내와 계집애를 구별할 수도 없어. 이래 가지고 전쟁이나 치르겠어. 다 안경잡이에다가 체력도 형편없고.”


남에게 듣고 스스로 지어낸 전쟁 이야기를 하다가 경쟁하듯 자식 자랑하다가, 경쟁하듯 청춘을 비난하는 것으로 술자리는 끝이 났다. 그 자리에서 난 왕따였다. 전쟁 이야기도 아는 것이 없어 침묵했고, 자식 자랑도 할 것이 없어 침묵하다 갑자기 청춘을 비난하는 동창생들을 마구 비난했으므로.


“저 새끼 아직 철이 덜 들었네. 옛날에도 그러더니, 저 자식 지금 교수지. 늦게까지 일할 수 있으니 좋긴 하겠다만….” 막 헤어진 후 내 등 뒤에 비수처럼 꽂힌 그들의 대화였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제작비 30만 원짜리 연극을 보았느냐. 돈도 아닌 돈을 가지고 만든 연극.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진지함과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한 시간 반 동안의 공연. 아마추어 연극쟁이 청춘들. 그들의 눈빛을 보았느냐.   


사랑하는 벗들이여. 대학의 대자보를 보았느냐. 이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번민으로 보냈을까. 시대의 아픔을 이토록 온몸으로 느끼고 그 작은 손으로 세상을 바꿔 보려는 청춘들. 그들의 눈빛을 보았느냐. 

        

사랑하는 벗들이여. 검게 그은 얼굴과 거친 손을 보았느냐. 힘없는 지구촌 사람들을 위해 오랫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해외봉사를 준비하던 나날들. 캄보디아 오지에서 씻지 못한 어린 아이를 덥석 품에 안고 활짝 웃는 청춘들. 그들의 눈빛을 보았느냐. 


사랑하는 벗들이여. 열람실 구석에서 쪽잠 자는 청춘을 보았느냐.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 없이 오직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야할 앞날. 뿌연 자신의 미래를 묵묵히 준비하는 청춘. 그들의 눈빛을 보았느냐.      


사랑하는 벗들이여. 해 뜨지 전 캄캄한 운동장을 돌고 있는 청춘을 보았느냐. 다들 곤히 잠든 시간 소총을 들고 새벽 훈련을 하고 있는, 아직 턱수염도 제대로 자라지 않은 앳된 청춘. 그들의 눈빛을 보았느냐.  


사랑하는 벗들이여. 내 자식 눈빛은 살아있고 남의 자식 눈빛은 죽어 있더냐. 그들도 너희 자식이다. 내 자식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하다. 청춘을 부리며 먹고 살고 청춘을 가르치며 먹고 살지 않았느냐. 우리 곁의 청춘들이 우리들 때문에 힘들어 하는 걸 아는가 모르는가. 청춘의 눈빛을 탓하지 말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빛을 봤으면 한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난 청춘의 눈빛에서 해와 달과 별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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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media.khu.ac.kr/20110411_view.asp?code1=1002006022824&code2=2011110910000007&kha_no=18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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