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889일을 맞이하는 9월 20일 오늘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5반 이창현 학생, 2학년 7반 박인배 학생, 2학년 10반 김슬기 학생의 생일입니다.
이창현 학생입니다.
창현이는 마음이 어질고 따뜻한 아이였습니다. 사춘기를 호되게 겪어서 부모님께서 많이 걱정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알고보니 창현이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아니라 여러 고민을 안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보듬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모님은 창현이를 잃고 나서야 뒤늦게 알게 되셨습니다.
창현이 부모님은 진실규명을 위해서 국회와 광화문에서 농성도 하시고 일본 NHK 방송에도 출연하셨으며 지금은 세월호 가족분들과 안산지역에서 함께 하시는 분들의 치유모임인 416합창단에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함께 생일을 맞이한 7반 박인배 학생입니다.
인배는 네 살 터울 여동생이 있는 맏이입니다. 인배네 집은 아빠가 안 계셔서, 인배는 엄마한테는 든든한 맏아들이었고 여동생에게는 아빠 같은 오빠였습니다. 엄마 편찮으실 때는 인배가 밥을 해서 어머니랑 동생 식사도 챙기고 엄마 시장 가실 때 보디가드 겸 따라나섰습니다. 어머님께서 굉장히 많이 의지하셨던 믿음직한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인배는 게임을 좋아하고 컴퓨터를 잘 해서 한때는 프로 게이머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 단원고 2학년 7반 기억교실 인배 자리에는 그래서 키보드가 놓여 있었습니다.
인배는 그러다가 꿈을 바꾸어 경호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체육학과에 진학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인배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바로 다음날인 4월 19일에 대회에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생일을 맞이한 2학년 10반 김슬기 학생입니다.
슬기는 요리를 잘 해서 떡볶이도 만들고 미역국도 만들고 초콜렛도 직접 만들어서 친구와 가족들께 선물했습니다. 슬기 이모님께서는 꿈에 슬기가 떡볶이를 만들어주셔서 맛있게 먹었는데 그게 너무 현실 같아서 슬기가 너무 보고 싶고 살아 있을 때 더 잘 해 주지 못한 게 너무 속상하고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슬기는 동물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얻어오신 강아지에게 "온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무척 귀여워하며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슬기는 수의사가 될까 궁리했는데, 주사바늘이 무서워서 수의사가 될지말지 귀여운 고민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영원히 가볼 수 없게 된 단원고 기억교실 2학년 10반 슬기 책상입니다.
안산 합동분향소 전광판 #1111로 문자 보내 창현이, 인배, 슬기 생일을 축하해 주세요. 친구들을 언제나 감싸주고 격려해주었던 속 깊은 창현이, 경호원이 되고 싶었던 씩씩하고 믿음직한 인배, 동물을 좋아했던 귀여운 슬기를 잊지 말아 주세요.
제가 요즘에 너무 바빠서 오늘 생일글은 창현이 책상 사진도 못 찾겠고 내용도 부실하고 엉망진창입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