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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게시물ID : phil_54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타자기사
추천 : 3
조회수 : 46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4/23 21:45:12

유대 신비주의 전통에서 유래한 골렘은 괴물에 관한 우화다.

 

원래 인간이 창조한 인간의 친절한 동료였던 골렘은 기독교 전통과의 마찰 속에서 악마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창조 권한을 신에게만 허용했던 기독교는 인간이 만든 피조물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골렘 우화에는 세 가지 버전이 존재하고 문학과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괴물 이야기 중 다수에 이것이 변주되어 섞여있다.

 

첫 번째 버전에서 랍비가 흙을 빚어 만든 골렘은 집안의 허드렛일을 전담하는 가사 도우미에 불과하다.

 

그는 센스 있고 성실한 살림꾼이지만 몸이 점점 비대해진다.

 

랍비는 일주일에 한 번 분해-재조립함으로써 골렘의 사이즈를 일상의 적정 수준으로 유지시켜야 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몇 주간 방치된 골렘의 몸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고 성급히 분해를 시도한 랍비는 해체된 골렘의 잔해물에 깔려 죽는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어떤 대상을 자신의 목적에 철저히 종속시켜 수단화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파국을 경고하는 근대 테크놀로지 문명 비판과 일정 부분 유사성을 보인다.

 

두 번째 버전에서 골렘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수호신이다.

 

선재 공격한 적을 분쇄하는 전쟁 기계인 골렘은 빈번히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했고 랍비는 고민에 빠졌다.

 

 ‘골렘을 출동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적에 의해 파괴될 것이다. 그러나 골렘의 등장은 동시에 우리 모두를 치명적 위험에 빠뜨릴지 모른다.’

 

이는 전쟁의 맹목성에 관한 딜레마를 담고 있다.

 

방어 전쟁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근대의 국가 간 전쟁 협약에서조차 방어를 위한 군사 무기 확장의 위험이 경고되고 있다.

 

발달한 전쟁 기계는 그 존재만으로도 전멸의 가능성에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버전에서는 감정 능력이 풍부한 괴물이 등장한다.

 

섬세한 감정을 지닌 골렘은 인간의 동료가 되길 원하지만 매번 거절당한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지닐 수 없는 시각 장애인 소녀와 친구가 된 골렘은 결국 소녀의 가족들로부터 버림받는다.

 

섬세한 감정의 상처받은 괴물과 편견에 사로잡힌 병든 감정의 평범한 인간들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이 세 번째 버전은 숱한 변주를 낳았다.

 

애니메이션 ‘슈렉’의 주인공인 괴물 슈렉은 영민하고 섬세한 감정을 지닌 캐릭터다.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로부터 여전히 거절당하지만 슈렉은 그의 선배 괴물들과 달리 상처받지 않고 되려 자족적 삶을 쿨하게 영위한다.

 

선배들의 전철을 교훈삼아 거절당하기 전에 먼저 거절을 선취해버리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편견이 극복되고 마음의 눈으로 진실한 사랑을 실현하는 동화 같은 해피엔딩 따위에 헛된 희망을 품다 상처받느니 외모에 대한 편견이 옳던 그르던 그것을 현실로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조건에서 최선의 삶을 꾸려나가려는 듯 보인다.

 

그런데 슈렉은 섬세한 감정 탓에 여전히 마음 깊숙한 곳엔 외로움을 품고 있으나 눈치가 빠르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

 

심지어 그에게 다소 우호적으로 다가온 이들조차 (괴물답지 않은 방식으로) 내쫓으려 하고 고립된 삶의 장점을 일갈한다.

 

현재의 고립된 삶을 마치 스스로 선택한 것인 양 위장하여 거절의 여지를 사전에 봉쇄한다.

 

결국에 거절당한다면 그 거절을 먼저 선택하는 경우의 심리적 충격이 더 작기 때문이다.

 

그런데 쿨해 보이는 슈렉에겐 분명 열등감이 있다. 추한 외모나 고립된 삶 자체가 열등감의 근원인지 아닌지는 결정할 수 없다.

 

더 나은 외모 혹은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열망이 강렬할 경우 추한 외모나 고립된 삶은 주체를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열등감은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이고 이는 어떻게든 해결되어야 한다. 더 나은 외모를 갖거나 함께할 사람을 만나면 열등감 상황은 종료된다.

 

그러나 이런 식의 해결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경우 좀 더 손쉬운 두 번째 해결책이 선호된다.

 

추한 외모 그 자체는 더 나은 외모를 열망하지 않았다면 열등감의 근원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열망을 제거하면 열등감의 고통도 사라진다.

 

슈렉이 고립된 삶을 마치 자신이 선택한 것인 양 꾸며댈 때 그는 자신의 선배 괴물들과는 달리 이 두 번째 해결책에서 도피처를 마련한 셈이다.

 

추한 외모를 극복할 수 없어 고립감을 해소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프랑켄슈타인류의 선배 괴물들은 애정을 갈구했고 결국 상처받았다.

 

슈렉은 상처받지 않았으나 거절을 선취해야 했고 일정 정도 자신을 기만해야 했다.

 

슈렉 정도의 섬세한 감정 능력을 지닌 자가 고립을 선호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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