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 사이 보았던 드라마들 중 가장 감동적인 한편이 작년 8월 15일에 방영된 드라마 '절정'입니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의 인생을 묘사한 이 드라마는 광복의 의미와 독립의 의의를 되새기지 못하는 우리 세대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애국'이라는 단어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 조차 숭고한 뜻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친, 백마를 탄 초인 이육사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이육사가 말한 진짜 '강한 나라'의 뜻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구요.
아직까지도 한국과 일본은 독도 문제를 두고 대립하고 있고 한국 국민들에게 반일 감정이 모두 사라진 것도 아니지만 일제강점기는 점점 더 머나먼 역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으니 조금만 더 세월이 흐르면 일제강점기는 대한민국의 근대사로 역사 교과서에 한줄 실리는 사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어째서 일본에게 나라를 강제로 빼앗겼으며 어떤 사람들이 광복을 위해 피흘리고 죽어갔는지 기억하는 사람들도 줄어들겠지요.
'절정'의 등장인물인 이육사과 윤세주 그리고 강문석이 활동했던 비밀단체가 바로 '의열단'입니다. 1919년에 조직된 항일 무력독립운동단체였던 의열단은 '5파괴'와 '7가살'을 행동목표로 삼아 활동했습니다. 항일무력투쟁이라는 면에서 백범 김구의 '한인애국단'과 목표가 같았던 셈입니다. '절정'에서 의열단 단원 강문석 역할을 했던 박성웅이 '각시탈'에서는 동진결사대의 단장인 동진 선생 역을 맡고 있더군요.
'각시탈'에 등장한 양백과 동진의 모델은 김구와 여운형이다.
눈썰미 좋은 시청자분들이라면 다 알고 있듯 이 동진 선생의 모델이 된 인물이 바로 몽양 여운형입니다. 그리고 극중 양백 선생의 모델은 백범 김구입니다. 두 사람은 항일독립운동의 양대 산맥으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을 거론하자면 빼놓을 수가 없는 위인들입니다. 최근에 방문한 보림재님의 블로그에서 각시탈의 작가 유현미가 양백과 동진이란 이름을 어떤 과정으로 작명했는지 그 사연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포스트 내용을 요약해서 인용하자면 백범 김구를 모델로 한 '양백'이란 등장인물의 이름은 유현미 작가가 작명한 것인데 '백범 김구'와 '백산 안희제' 선생의 호에서 각각 '백'자를 따서 '백'이 둘이라 '양백(兩白)'이라 지었답니다. 그러나 몽양 여운형을 극중 인물로 탄생시키기엔 적당한 이름이 없어 고민하던 중 몽양 여운형 선생이 한때 강원도 최초의 근대식 사립학교인 '동진학교'에 영어교사로 재직했고 백범 김구 선생도 그곳에서 강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동진'이라 작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관련 포스트 :‘양백·동진 선생’, 어떻게 생겨난 이름일까?).
강원도 강릉의 동진학교는 190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지금이 2012년이니 백년도 더 된 예전의 일입니다. 또 그 만큼이나 백범 김구 선생이나 몽양 여운형 선생 모두 과거의 인물들이며 그들의 기록을 통해 과거를 재조명해본다 쳐도 그때의 일을 모두 재평가할 수도 없고 정확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혹자는 일부 극우주의자들의 논리처럼 두 사람의 항일무력투쟁이 테러라며 폄하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자는 진정한 민족주의자들이라 평가할 것입니다.
각시탈을 쓰고 일제를 응징하는 이강토(주원)에게 손수 찐 감자를 까먹이는 양백(김명곤) 선생의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습니다. 양백 선생은 그 감자를 어머니가 주셨다고 했습니다. 생일상을 차려주겠다는 김구와 그 동료들에게 돈을 받아 그 돈으로 총을 사왔다는 김구 선생의 어머니가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감자를 까주는 양백 선생의 손이 왜 그리 떨렸는지 그 이유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에 반짝이는 눈매를 가졌던 백범 김구 선생은 자신의 떨리는 글씨체를 '총알체'라 말하며 웃곤 했다고 합니다. 드라마에서 설명한 것처럼 중국 장사에서 이운환의 총격을 받아 왼쪽 심장 아래에 박힌 총탄이 수전증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3개월 동안 다리가 퉁퉁 붓도록 연습한 글씨가 떨리고 떨려도 '단결'이라는 의연한 글자처럼 그 뜻을 꺾을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모종의 거사를 도모하기 위해, 동진 선생을 만나러 조선에 돌아왔습니다.
예전에 읽은 자료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광복 이전까지는 몽양 여운형, 백범 김구 선생은 협력 관계에 있었던 듯합니다. '조선중앙일보'라는 신문을 내며 국내 활약하던 몽양과 백범 김구의 관계는 그렇게까지 친밀하지는 않았으나 적대적이지도 않았다는 평입니다. 드라마 속에서는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두 사람이 경성에서 만나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당시 백범 김구 선생은 현상금 60만원이 걸려 있어 국내 방문이 힘든 상황이었죠.
극중에서는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한 선수가 퍼레이드 중 일장기를 떼어내고 시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환영하며 동진선생이 운영하던 '조선중앙일보'가 그 사진을 신문에 싣는 것 설정했지만 아시다시피 이 사건은 손기정 선수와 여운형 선생의 일화를 드라마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2001년에 출간된 여연구(여운형의 둘째딸)의 '나의 아버지 여운형(김영사)'에는 손기정 선수와 여운형 선수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1936년 어느날 '조선중앙일보' 사장 여운형을 찾아와 일장기를 달고 출전하라 강요받는 자신의 처지를 상의하자 여운형은 '나가서 이겨서 조선 민족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보여주라'며 격려합니다.
손기정 선수는 여운형의 아들 여홍구와 동기 동창이었다고 합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승하자 조선중앙일보는 손기정 선수의 등판에 붙은 일장기를 지우고 특집기사를 발표합니다. 그 사진의 동판을 '동아일보'에 넘겨 동아일보도 일장기가 지워진 그 사진을 게재합니다. 그 사건으로 '조선중앙일보'는 영원히 폐간되고 '동아일보'는 무기 정간되고 맙니다. 드라마 속 상황은 그 상황을 묘사한 것입니다.
몽양 여운형과 백범 김구. 두 사람은 항일무력투쟁의 두 선봉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독립운동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는 점에서도 유사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광복 이후 각각 남한과 북한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까지도 동일합니다. 두 사람 모두 정치적 목적을 가진 동족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그들이 민족의 희망으로 추앙받고 목숨걸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것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비참하고 허탈한 최후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100년 전에 태어난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는 '각시탈'이라는 수퍼히어로를 장식하는 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그토록 되찾고자한 나라는 이제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얻었지만 백범 김구나 몽양 여운형의 이름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한때 담사리(전노민)에 목에 씌워진 것과 똑같은 지푸라기 용수를 쓰고 사형을 당할 뻔했던 백범과 광복 후 12번 이상의 테러를 당한 여운형의 삶은 어쩐지 가슴이 아픕니다.
극중에서처럼 몽양과 백범이 함께하려고 한 적이 있는지 두 사람이 같은 일을 도모한 적이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 시대 역사에 정통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고 사료가 적어서일 수도 있으나 '단결'이라는 글자의 뜻처럼 두 사람이 함께 할 수만 있었더라면 외세에 휘둘리지 않고 그대로 손을 잡고 광복을 맞을 수 있었더라면 현재 한국의 상황은 아주 많이 달라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 많은 독립운동가들 중에 왜 하필 두 사람이어야하는지 그 부분도 곱씹어 생각해보게 됩니다.
모종의 거사를 위해 양백과 동진 모두를 만난 각시탈, 지난주 각시탈(주원)은 기무라 슌지(박기웅)에게 자신의 정체를 발각당했습니다. 우리의 수퍼 히어로가 고통받고 눈물짓는 백성들 모두를 구해줄 수는 없겠지만 그 모습이 마치 독립투사들의 힘겨운 삶을 대변하는 듯해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몽양과 백범의 삶을 이렇게라도 되돌아볼 수 있다는게 반갑기도 한 드라마. 비록 '애국'이라는 말의 의미는 흐려졌어도 그들이 눈에 밟히는 건 어쩔 수 없는 같은 땅의 같은 민족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다음view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