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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후임.
게시물ID : military_202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eio
추천 : 106
조회수 : 971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04/24 03:24:14


군대란 곳이 워낙에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일을 하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된다. 

그 중엔 지금까지도 연락을 할 정도로 친한 사람도 있고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릴 정도로 싫어하던 사람도 있다. 

평범한 사람도 많고 개성있고 특이한 사람도 많은데 내 기억에 가장 남았던 사람은 나와는 1년 차이가 나는 후임이었다. 


어느 날 부대에 신병이 도착했다. 보통 신병이 오면 가장 먼저 하는일이 빨래와 샤워였다. 훈련소에선 씻을 시간도 

부족하고 빨래 역시 손으로 대충 빨아 입는 일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보통 신병이 오면 신병 특유의 꾀죄죄한 냄새가

나기 마련이었다. 그녀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짐을 풀기 위해 침상위로 올라오는 순간 코가 뻥 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녀석의 발냄새였다. 똥을 발로 싸는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강력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고 그 냄새는 이내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내무실 구석에서 잠을 청하던 말년병장의 잠을 깨우기에 이르렀다. 북괴의 화생방 공격이 시작됐다며 

패닉에 빠진 고참을 진정시키고 내 코가 제대로 붙어있는지 확인한 후 난 크리닝이다 난 크리닝이다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그녀석에게 다가갔다. 본인은 이미 면역이 되있는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더이상의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녀석을 샤워장으로 직행시킨 후 빨래를 돌렸다. 녀석과의 만남은 그렇게 처음부터 강렬했다. 평소에 다한증이 있어 손발에 

땀이 자주 찬다던 녀석은 그 후로도 심심치 않게 냄새를 풍겨댔고 우린 그때마다 치약미싱을 해야했다. 


다음으로 놀랐던건 녀석의 잠버릇 이었다. 코골기는 기본이고 이빨을 갈고 잠꼬대에 밤새 뒤척거리는 모습까지 가히 잠버릇의

결정체 같은 모습이었다. 나도 잠버릇이 심해서 이등병때 고생을 많이 했지만 녀석에 비하면 나는 애교 수준이었다. 

군대의 신기한 점 중 하나가 바로 안되는게 없다는 점이다. 수십년간 안고 살아온 습관들이 짦은 기간안에 고쳐지는 곳이 바로 

군대였다. 나 역시 평생 고치지 못할거라 생각했던 잠버릇이 한달만에 고쳐졌고 녀석도 곧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고참들이 아무리 갈구고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해 봤지만 녀석의 잠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열받은 고참들이 

방독면을 씌우고 자게 만들었지만 녀석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은 숙면에 빠져드는듯 했다. 덕분에 괴로워진 것은 

나였다. 옆자리에 누워있던 나는 쉭쉭거리는 방독면 소리에 밤새 다스베이더와 함께 군생활을 하는 악몽에 시달려야했다. 

결국은 우리 모두 두손 두발 다들고 포기해야했다. 녀석의 잠버릇은 한참이 지난후에야 조금 잠잠해졌다. 그래도 다른사람들에

비해 충분히 요란스러웠지만 오히려 녀석의 잠버릇에 우리가 적응하고 말았다. 


불침번을 서던 어느날이었다. 내무실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 내무실로 들어갔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보니 녀석이 누워있는 

자리였다. 그렇게 잠꼬대를 하는 녀석을 보며 또 시작이구나 라는 생각에 고개라도 돌려주면 좀 나아질까 싶어 후레쉬를 켜 

얼굴을 비췄다. 녀석은 두 눈을 부릅뜬 채 내 쪽을 보고 있었다. 간혹 눈뜨고 자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눈은 부릅뜨고 자는 사람은 처음봤다. 고개를 돌리려 녀석의 얼굴쪽으로 다가간 순간 갑자기 녀석은 빨간약을 처먹은 

키아누리브스 마냥 우어워어엌! 하는 소리와 함께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엉겹결에 뒤로 자빠진 나는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두근대 멈출까봐 놀랐다. 놀란 마음을 추스리고 일어나 녀석에게 다가가보니 녀석은 그렇게 앉은채로 

잠을 자고 있었다. 황당함에 녀석을 깨워 물어보니 정작 본인은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군생활에 애로사항이 꽃필만한 단점들을 두루 가지고 있던 녀석이었지만 의외로 군생활에 잘 적응해갔다. 잠버릇과 냄새

빼곤 눈치도 빠른데다 넉살도 좋아 시간이 흐르면서 단점보단 장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일병을 달고 군생활을 

하던 녀석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그에겐 여자친구가 있었다. 처음에 녀석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는 우리 모두 깜짝 놀랄수 밖에 없었다.

사진속의 여자는 엄청난 미인이었다. 연예인 사진을 가지고 와서 거짓말을 하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미모를 가진 

녀석의 여자친구는 금새 부대내에 화제가 되었다. 어느 날 전화를 하고 온 녀석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무슨일인지 

물어보니 주말에 여자친구가 면회를 온다는 것이었다. 미인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내 여자친구도 아닌데 덩달아 나까지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 주 주말 위병조장을 서던 나는 사진속 주인공의 실물을 직접 보게 되었고 그 날 이후 나는 우주인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사진 속 인물과 실물의 차이는 나에게로 하여금 현대 과학 기술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미지의 촬영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게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면회가 끝나고 상쾌한 얼굴로 사진과 똑같지 않냐고 묻는 녀석의 말에 나는 

그.. 그렇네 라고 답할수 밖에 없었다. 콩깍지가 씌워도 단단히 씌운게 아니라면 여자친구의 사륜안이 개안한게 분명했다. 


그렇게 환술에 빠진것 처럼 여자친구에게 빠져있던 녀석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여자친구가 바람이 난 것이다. 

군대에서의 이별이야 흔한 일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거라 생각했지만 매일 밤 모포를 눈물로 적시는 녀석을 보자 덩달아

나까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대로 뒀다간 덜컥 탈영이라도 하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의에 빠진 녀석을 회복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에 소속분대 분대장이었기에 행여나 나쁜선택이라도 하면 나에게 미칠 불이익을 고려했던

부분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처음엔 별다른 효과가 없었지만 역시 빅팜앞에선 장사가 없었다. px에 꼬박 한달치 월급을 때려 박은 

후에야 녀석의 상태는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콩깍지를 벗겨내고 몇 달 후 외도남에게 까인 전 여자친구에게서 온 

장문의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 발긴 후에야 녀석은 완전히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렇게 인연이 계속되어 제대 후에도 연락을 계속하다 얼마 전 외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소식을 듣게되었다.   

녀석의 발냄새와 암내를 담아두기엔 우리나라는 너무 작은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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