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의 HAL 9000 (이하 할)은 그야말로 컴퓨터 중에서는 먼치킨이라고 할 수 있었죠.

디스커버리 호의 오류를 감지하고,

 승무원과 체스게임도 두며, 대화도 나누고, 전면 카메라로 보먼이 그린 그림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생각이 가능한 컴퓨터' 라는 간단한 얘기가 나오게 되겠죠.

할은 자신을 소개하는 도중에 이런 말을 합니다.

"9000 시리즈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컴퓨터들 중 가장 믿을만 한 컴퓨터입니다. 9000 컴퓨터 중 실수나 곡해를 저지른 컴퓨터는 한 대도 없습니다. 저희 모두는, 어떠한 단어의 실질적인 정의에서도, 잘못될 수가 없으며 에러를 일으길 수도 없습니다."

자존심이 상당히 센 이런 언행은 어느정도 애니 내에서의 먼치킨 시스템, 체임버의 고압적인 태도와 맞물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상당히 차가운 목소리에, 고압적입니다. 물론 군용 로봇에 장착된 시스템이라 이런 고압적 자세를 취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에 드러나는 자존심은 할을 연상케합니다.

그렇다면 체임버의 시스템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2001] 에서의 할은 목성을 향해 가게되는 도중에 원인 모를 고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뭐 이유야 나중에 다 알게되지만...

바로 윗장면인데, 이 전 장면에서 할은 "잠깐만요. 지금 AE-35 안테나 부품에서 결함을 발견했습니다" 라는 말을 했죠. 

두 명의 승무원은 부품을 빼서 검사를 한 뒤 부품을 고치지만, 또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할이 알려옵니다.

데이비드와 프랭크는 할에게 고장이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들리지 않게 몰래 '할을 정지시키자' 는데에 합의합니다.

근데 할은 입모양을 읽은 뒤에 그걸 간파해버리죠. 

결국 할은 프랭크의 우주복을 자기 맘대로 통제한 뒤에 산소 공급을 중단시키고, 그를 우주 밖으로 내던져버립니다.

곧 이어서 디스커버리 호 안에서 인공 동면을 취하고 있던 다른 네 명의 승무원까지 다 죽여버리죠.

혼자 남은 데이비드는 프랭크의 시신(?)을 들고 우주선까지 이동하려 하지만, 할은 입구를 열어주지 않습니다. 때문에 그는 포드(Pod)를 타고 우주선의 후방 해치까지 겨우 이동하고, (이 과정에서 데이비드는 결국 프랭크를 '놓아줍'니다.) 우주선 안에 있는 할의 중앙 통제실로 진입한 다음,

  빡쳐서 할의 논리 모듈을 전부 뽑아버린 다음 정지시켜버립니다. 장비를 정지합니다

바로 이 장면이죠.

할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요? 간단히 말해서 '탐사 목적과 비밀 지령 간의 괴리' 죠.

 "HAL이 오작동을 일으킨 것은 본래의 탐사 임무 명령과 백악관에서 내린 비밀 지령이 서로 충돌하여 논리적 모순을 일으켰기 때문임이 밝혀진다. 원래 할은 디스커버리 호의 컴퓨터로써 모든 정보를 탐사 대원들에게 알려줘야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모노리스와 관련한 비밀 지령은 어느 순간까지 탐사 대원들에게 숨겨야 한다. 결국 이 두 가지 사실이 서로 충돌 및 모순을 일으켜 할은 혼란을 거듭한 끝에 "다 죽여버리면 되겠군."이라는 실로 명쾌한 결말을 내고 만 것."  

- 엔하위키 미러, 'HAL 9000' 항목에서.

저는 이런 [비극]이 취성의 가르간티아에서도 재현 가능할거라고 봅니다.

각본가의 전작이 어떤 식으로 흘러갔느냐의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이 애니에서 살짝살짝 조짐이 보이는 거죠.

2화로 넘어간 뒤의 장면을 보면...

여기서 엿보이는 체임버의 목적은 '우리의 본래 목적지인 우주 이주구 (은하 인류 동맹)로 돌아가는 것' 이고, 레드 역시 현재까지는 그 점에 동의합니다. 

근데 이야기의 흐름 상 레드가 선단 가르간티아의 구성원들과 조금씩 마음을 나누게 되면서 협력 관계로 들어갈 공산이 큽니다. 그런 면에서는 위에서 보다시피 체임버와 레드 사이의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 같구요. 

더군다나 아직까지 이야기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만큼, 체임버가 할처럼 '비밀 지령' 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임버는 할이 그랬던 것 처럼 - 이야기 자체는 무미건조하지 않겠지만 - 폭주할 수도 있을 거라고 '조심시릅게' 추측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