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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내 인생...(스압이예요...약간)
게시물ID : humorbest_5178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얼굴뒤집긔
추천 : 126
조회수 : 20734회
댓글수 : 8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8/25 00:59:01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8/25 00:28:55

안녕하세요 오유 언니 오빠들

비도 오고 옛날 생각도 나서 그냥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써 보려고 해요.

제 친구들한테 얘기 했을 땐 왜 그런걸 입밖으로 꺼내냐며 타박을 먹었지만

요즘 여러 이야기들이 올라 오는걸 보니 오유 언니 오빠 들이라면 왠지 잘 들어줄거 같아서요

예전에도 여기서 위로 받고 가기도 했고...한번 털어 놔 볼게요

 

저는 16살 여자예요.어리디 어린 나이죠

어디서 부터 꼬였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옛날,아주 옛날 기억은 좋은 기억들 밖에 없는데

3~4살 때 까진 좋은 기억 밖에 없어요.

할머니 손잡고 공원 산책 나가고 노래 부르고 할머니랑 자고ㅋㅋㅋ지금도 할머니 너무 좋아요

5살때?그 때쯤 부터 겠네요,꼬인게.제가 처음으로 얻어 맞았을 때가 그때로 생생히 기억하니까

동생이 제가 4살때 태어났어요 남동생.아주 어릴땐 별 상관 없었는데 걔가 커가면서 전 정말 이유 없이 맞은거 같아요

동생이 울었다고 맞은 적도 있고,동생이 우유를 흘릴동안 넌 뭐했냐며 얻어 맞았고.이런 일은 제가 6학년 될떄까지 계속 됬어요

그리고 전 6살이 됬고 유치원에 갔어요.

애들이 참 많았어요.엔젤 유치원,이름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거기 가서 처음으로 애들과 함께 어울려 놀면서 처음 들은 소리가 이거였어요.

"너 못생겼어,저리가 너랑 놀기 싫어"

저한테 이런 말을 했던 아이는 참 예쁘장 하게 생긴 애였어요

전 그 후로 어떤 짓을 해서라도 유치원에 안 갔어요.아마 출석 도장판의 반 이상이 텅텅 빈 사람은 저 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유치원 졸업을 하고 초등학교에 들어 갔어요.이때 부터의 기억이 제일 많네요.

1학년 떄 체육 대횟날 올챙이와 개구리 노래에 맞춰 춤을 췄어요.

엄마도 보이고 아빠도 보이고 동생도 보였어요.정말 열심히 춤 췄어요.그 짧은 팔다리로

끝나고 다 같이 차 타고 어디론가 가는데 아빠가 물어 봤어요 너 왜 그렇게 성의 없게 춤췄냐고

아니야 아빠 나 열심히 췄어.라고 했지만 아빤 믿지 않았어요.언성이 높아졌고 모두들 차에서 내렸어요

나만 차에 혼자 앉아 있었어요 몇 시간동안이나.나중에 가서야 나올 수 있었어요

초딩들 학원의 대명사 라고 할 수 있는 태권도 학원에 다녔었어요.

쌍절곤을 배웠었어요.아빠가 한반 중에 11시가 넘어서 갑자기 음악을 틀고 쌍절곤 돌리는걸 하라고 했어요

싫다고 하니까 아빤 밤새 앉았다 일어났다,엎드려 뻗쳐,손들고 서 있기를 시키고 12시가 넘은 새벽에

혼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다녀오게 했어요.혼자 쓰레기 수거장 까지 걸어가는 길은 너무 무서웠어요.

바다에 가족들이랑 다 같이 놀러 같어요 아빠는 수영을 가르친답시고 억지로 바닷물을 먹였어요

제가 뱉어 내고 하지 말라고 하자 바다에서 저를 밟았어요 그때 탔던 바나나 보트는 기억 안나지만 이건 기억이 나요

2학년 때였어요

동생이랑 싸웠어요.동생이 자꾸 제 스케이트 보드를 내놓으라고 꼬장을 부렸거든요.

싫다 그러니까 내 옆구리를 꺠물고는 아픈건 전데 지가 징징 쳐 울어댔어요.

아빠가 와서 저희를 혼냈어요.화해 하라고 하며 껴 안으라 했어요.가슴을 밀착 시키라 그러면서

키스도 하라고 했어요.억지로했어요.지금도 저는 누군가 키스하거나 하는 장면을 보면 역겨워요.

 

3학년이 됬어요.이때까지는 전 제가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이때 담임 선생님은 남자 분이셨어요.그리고 여자애들을 좋아했어요.

걔네는 벌도 안 섰고 일도 안했고 잔심부름도 안하고 그냥 담임선생님이랑 쉬는 시간마다 노가리 까는게 전부였어요

]하지만 저는 예쁜 여자애가 아니였기 떄문에 남자애들이랑 똑같이 우유나르고 책상 들어 나르고 교과서 옮겼어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단지 저 애들이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특권을 누린다는 자체가 억울했지만

아무 말도 못했어요.남자애들은 대 놓고 저를 괴물이라 불렀어요.여자애들은 절 끼워주지 않았죠.

어느날은 저도 맨날 입는 청바지에 후줄근한 남여공용 셔츠 말고 분홍색 원피스가 입고 싶었어요

하지만 엄마가 사준건 검정색 끈이 달린 흰색 통원피스였어요.그냥 포대자루 씌워 놓은거 같은 그런 원피스

분홍색 원피스 하나 사달라는게 겉멋만든 못된 년인가요.평생 안입을거예요

 

4학년 때,다른 여자 애들 처럼 가슴이 약간 씩 부풀기 시작했어요

이 때 아빠가 한 말이 기억에 나요 너무 생생하게.

"나중에 가슴 다 크면 아빠 콘푸르스트 먹을 때 우유는 니가 짜줘야 한다,아빠 여기 우유 드세요하고 왼쪽 가슴에서 우유 쭉 짜내고 오른쪽 가슴에서 우유 쭉 짜내고"

"딸이 아빠가 배고프다면 젖 물려서 우유 줄 수도 있는거지"

웃으면서 얘기했어요 아빠는

아빠가 그 떄 비유를 든게 젖을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물린 딸이 그려져 있는 명화작품이였어요.

예전 부터 아빠는 검사라는 명목으로 하반신을 손으로 훑는 걸 자주 했어요

왜 그때 하지 말라고 하지 못했을까요 전

이때 이미 심한 불쾌감을 느꼈지만 왜 저는 중학교에 올라와서 성교육을 받으면서야 아빠한테 하지 말라고

하거나 엄마한테 말해야 한단걸 몰랐을까요.병신같이

 

전 억지로 영어 원서를 외워야 했고 아빠랑 연극을 해야 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

시발 키스 장면 까지 무조건 재현해야 했고 연기가 리얼하지 않다며 몇 번이고 다시해야 했어요 시발

 

5학년 때,생리했어요.여자가 된거다.라고 학교에서 배웠지만 저는 그냥 후줄근하고 못생겨서

여자는 커녕 남자로 봐도 아무 지장 없었어요.여자가 됬다는게 싫었어요.여자는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데 난 아니니까

6학년 되고 나서.여름 방학때 강원도 문경으로 놀러 갔어요.재밌게 놀았는데 아빠가 갑자기 그러시더라고요

애들은 악하게 태어나니까 폭력으로서 두려움을 가르쳐서 교화 시켜야 한다고.

아무 생각 없이 들었는데 휴가가 끝나고 집에 와서 엄마가 라면을 끓였어요.저는 안성탕면 아빠는 짜파게티.

아빠가 바꾸자고 했어요.싫다고 했어요

그날,저는 처음으로 친구량 밖에서 놀기로 한 약속을 못지켰어요.들고 있던 숟가락이 제 눈으로 날아왔고.

반찬 통이 제 얼굴을 때렸어요.단지 거절했을 뿐인데.머리채 잡혀서 질질 끌려다니고 벽에 던져지고 발로 밟히고

개년 쓸모 없는 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년...아빠가 저 보기 싫으니까 나간다고.내가 들어왔을떄 자살해서 뒤져있으라고 했어요

엄마는 아빠가 나가고 나자 저한테 라면을 줬어요 다 토했어요

아빠한테 장문의 편지를 보내라 했어요.제가 죽일년이고 제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악마같은 년이고

하늘에서 제일 자애로우신 아버지께 제가 모든걸 잘못했다고 썼어요

아빠한테 몇 대 더 쳐 맞고 욕도 더 듣고 자려는데 아빠가 와서는 이게 다 제 미래에 도움 되는 일이라고,너는 나한테 감사하게 될거라 했어요

시발 병신같은 개지랄 하고 있네.저는 겉으로는 아빠 사랑해여 라면서 질질 짰지만 속으로는 이랬어요

커터 칼로 손등이랑 팔을 그었어요.누가 내가 이런단걸 봐줬음 했어요.아무도 안 봐줬어요

당시 꽃보다 남자가랑 선덕 여왕이 엄청 유행이였는데 저는 하나도 못 봤어요.못보게 했거든요.

학교에서 딱 두마디 했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발을 다쳐서 물이 닿으면 안되는 상황이여서 저는 발에 비닐을 감고 샤워를 했어요

아빠는 제가 어떻게 씻는지 본답시고 화장실문을 열었어요.

 

중학교 올라갔어요

1학기 때,저는 공부를 못했어요.아니 할 필요를 못느꼈죠.학교 가는 일 자체가 저는 노동이였으니까

아빤 새벽 5시에 저를 깨워서 무조건 문제집을 풀게 했어요 틀리면 그 때마다

저능아,무뇌아,밥벌레 소리를 들으며 문제집으로 머리를 맞았어요.

결국 성적은 올랐지만 저는 아직도 아빠가 옆에 있음 일부러 답안지를 베껴요.

 

1학년 교실에 가니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그런데 한 친구가 다가와 줬어요 그 애 이름은 강남이예요

공부도 잘 하는 애였어요.걔덕에 다른 애들도 많이 사귀었어요 그런데 2달이 지나니까 모두 변했어요.

제 친구였던 애들이 모두 저를 비웃었어요.주걱턱에 개방 교합 역겹다고 얼굴 가리고 다니라 하고

그얼굴로 사느니 그냥 죽는게 어때?라는 권유를 수백번 들었어요.

저는 미술을 좋아했고 나름 재주도 있었는데 포스터를 수성 싸인펜으로 그리고 수채화 물감을 쓰고는

번진다며 징징 그리는 강남이와는 참 다른 솜씨였어요.

하지만 강남이는 제가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이 탄성을 지르면 제 머리를 툭툭 치면서

"어머 미술같은건 나라 발전에 쓸모도 없고,미술하는 여자들은 다 레즈야ㅋㅋㅋ더러워 너도 여자 좋아하지?미술하잖아"

"원래 음미체 하는 사람들은 나라에서 없애야돼,걔네 때문에 우리 같은 애들이 피해 보잖아"

"진짜 못그린다.미술 과외 받는건 어때?아,너네 집 거지지?"

이런 소리를 하는 건 물론이고 제가 개인적으로 연습하던 크로키 북과 연습장을 가져가 애들한테 돌렸어요

크로키 모델이 대부분 여자 였다는 것과 누드크로키가 몇 점 섞여 있었단 이유로 저는 변태년이 됬어요

강남이는 항상 명품만 들고 다녔어요.심지어 볼펜 하나 마저도 일제  하이테크가 아니면 더럽다며 안 쓰는 애였어요

저랑 걔랑 1년 내내 짝이 됬는데 한번은 빨간 색연필좀 빌려달라 저는 걔한테 제 평생 중 딱 한번만 할 수 있을 법한

정중한 부탁을 했어요.걔는 철로 된 자로 제 손을 때렸어요

더러운 년이 어딜 건드냐면서.

저는 걔들 친구가 아니였지만 그 애들과 억지로 함께해야 했어요.

그 애들 말로는 저는 그 애들과 참 좋은 친구였으니까요.

집에 와선 울기만 했어요 몇 번 씩이니 꼭대기 층에 올라가 서 있었어요

엄마 아빠 한테 도움을 청했지만

엄만  제가 멍청하게 구니까 당연히 그렇게 당하는 거라 했고

아빤 멍청하게 당하고 있게 안 키웠는데 왜 창피하게 당하고 있냐며 다 제 잘 못이라 했어요

 

2학년이 됬어요

몇몇 아이들은 저를 동정해 줬어요.강남이와 저는 같은 반이 되었어요

하지만 강남이는 일말의 반성도 없이 자기는 친구도 없이 불쌍히 홀로 있던 저를 구해줬는데 오히려 구해 줬더니 자기를 왕따 시킨다며

열심히 언플을 했어요.코어 엔터테이먼트 김광수 사장이 물러 나면 아마 강남이가 사장 자리를 꿰찰거 같았어요.

당시 저는 예고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무조건 인문계에 가라 햇고 이 이야기는 강남이도 들었어요

맨날 자기는 국제고에 진학을 해서 서울대정치경제학과에 진학을 하고 졸업후 공무원 시험을 통해 여자 외교관이 될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애가 저랑 같은 인문계에 가서 자신을 극악무도한 년으로 만든 저를 자살시켜 버리겠다고 했어요

저는 2학년때 전교권에서 놀 정도로 성적이 올랐어요.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제가 처음으로 전교 6등이라는 결과를 얻은 날

장반이는 제게 밥을 먹자고 하며 같이 점심을 따로 사 먹었고.밥 먹는 동안 내내 저와 샤넬 가방이 생겼다,이번에

성적이 떨어져서 엄마가 자기 루이비통 가방을 버릴거 같다며 지 혼자 떠들었어요

아쉽게도 강남이의 말은 신빙성이 있었어요 엄마가 외교통상부에서 일하시고 아빠가 삼성에서 일하시고

걔는 책가방도 명품이였거든요.그러다 보니 걔 옆엔 친구가 아직도 참 많아요.

제 친구들의 대부분은 강남이를 참 착하고 친절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라고 평가해요.

그런 애가 저한테 이런 대접을 했었단걸  알면 믿지 않을테죠.

전 처벌을 원했지만 아빠가 그러시더라구요.

니가 강남이 싫어 한것도 강남이랑 똑같이 너도 강남이 왕따 시킨거니까 저도 가해자라네요

한번은 아빠가 이상한 약을 가져왔어요 영양제라는데 조금 있다가 먹겠다니까 버러지라고,남에 돈 빨아 먹고 사는 버러지라고

돈도 못 벌어 오는게 어디서 지랄이냐며 기생충 같은게 할머니 옆에 말 조금 하고 돈 타 먹는다고 쳐 맞았어요

 

저 지금 중학교 3학년 이예요.

제 옷장은 초등 학교 때 입던 옷들로만 가득하네요

저도 다른 애들 처럼 얘쁜 모습해보고 싶었지만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고 아무리 단정하게 다녀도

못생긴건 어떻게 안되네요.이빨은 맞는게 하나 없어 남들 국수 끊어 먹는거 하나 못하고

입은 안 벌어져요.말 좀 할라 하고 밥 한 숟가락만 씹어도 턱에서 딱딱 거리는 소리 나고요

수술?꿈도 못 꿔요.아파서 항상 진통제를 먹어요.저에게 먹는 다는 건 고문이랑 똑같아요

차라리 굶어 죽어버리고 싶어요.빼빼 마른 기아가 되서 말이죠

이 빌어 쳐먹을게 침을 맞는다 해도 고쳐 질게 아닌데

엄만 침 맞으란 소리 밖에 하지 않아요.아, 하나 더 있다.이 모든게 제 자업 자득이란 말.왜 인진 모르겠지만

자기도 이렇게 평생을 살았으니 저도 이렇게 살라네요.그래요 남들처럼 발음 안 새게 말하고 웃고 떠들며

예쁘게 차려입고 거리를 걷는건 제가 평생 누릴 수 없는 사치겠죠.

며칠 전에 제 생일이였어요

생일날 비와서 그냥 자고 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제 등을 깔고 앉으셨어요 놀라서 발버둥 쳐서 아빠가 몇 대 맞으셨나봐요

제 발길질에 감정이 담겼다면서 그냥 손으로 패더라고요 그냥 맞았어요

스위트 식스틴인가 뭔가.항상 저는 저한테 모든건 사치라는 걸 까먹는거 같아요

아직도 아빠는 저를 향해 입을 내밀어요 키스하란 의미에요

피하면 꼬장을 부려요.제가 가족을 사랑하지 않고 돈만 바란다고.

난 더이상 3살 짜리 애새끼가 아닌데

유일하게 그림 그릴 때만 아무 생각이 안나니까 살거 같아요

다른 땐 솔직히 말해 의욕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아요

차라리 아빠가 계속 그냥 난폭했음 좋겠어요

어쩔땐 너무 멀쩡한 모습에 화를 낼 수가 없어요

 

저도 좀 멀쩡하게 예쁘게 태어 났음 이런일 안 겪어도 될거 같은데

참 저는 왜 이러는 걸까요

장미빛,분홍 빛 인생은 절대 안올거 같아요 저 한텐...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그린 그림 몇 점 올릴게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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