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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느라 힘드신분들.. 읽어보세요..힘이불끈..날껍니다.^^
게시물ID : humorstory_1050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반지의제왕★
추천 : 10
조회수 : 31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5/09/09 22:40:35
<어느 장애인의 수기>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지퍼가 고장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사전 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
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칠판을 지우고
물걸레 질을 하는 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 들고 이교실 저교실 바쁘게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머리에 하얗게 분필 가루를 뒤집어 쓴채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다니며,
가을에 입던 홑 잠바를 한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책 살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
그런데 몇걸음 뒤어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눈물을 참으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 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졸음을 깨려고 몇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 가며 밤세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 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은 불행히도 나와 같은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장애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려면
얼굴 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형은 엄마가 잘 아는 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카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나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뒤 시간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나는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날도 엄마는 좌판을 등지고 앉아
꾸역꾸역 찬밥을 드시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등 뒤에서
엄마의 지친 어깨를 힘껏 안아 드렸다.
'엄마...엄마..., 나 합격했어.....'
나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엄마도 드시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 골목에서 한참동안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그날 엄마는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에게 함지박 가득 담겨있는
생선들을 돈도 받지 않고 모두 내주셨다.
그리고 형은 자신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나를 태운 뒤.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내게 입혀 주고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나를 자랑하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때 나는 시퍼렇게 얼어있던 형의 얼굴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순대국밥
집에서 우리 가족 셋은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엄마는 지나간 모진 세월의 슬픔이
북받치셨는지 국밥 한그릇을 다 들지 못하셨다.
그저 색바랜 국방색 전대로 눈물만 찍으며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기뻐했을텐데......
너희들은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원래 심성은 고운 분이다.
그토록 모질게 엄마를 때릴만큼
독한 사람은 아니었어.
계속되는 사업 실패와 지겨운 가난 때문에
매일 술로 사셨던 거야. 그리고 할말은 아니지
만.....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몸이 성치 않은
자식을 둔 애비 심정이 오죽했겠냐?
내일은 아침일찍 아버지께 가 봐야겠다.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알려야지.'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는데,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들 앞에서 엄마를 때렸다.
그러다가 하루종일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서 한 장만 달랑 남긴채
끝내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나는 우등상을 받기위해
단상위로 올라가다가 중심이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계단 중간에서 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이지 못할만큼 온 몸이 아팠다.
그때 부리나케 달려오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얼른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잠시 뒤 나는 흙 묻은 교복을 털어
주시는 엄마를 힘껏 안았고 그 순간,
내 등 뒤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한번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들렀는데 여학생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절룩거리며 그들 앞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구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측은해 보일까봐,
그래서 혹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까봐 주머니 속의 동전만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열람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흰 연습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건 굽이굽이 고개 넘어
풀꽃과 함께 누워계신 내 아버지를 용서하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꽃등처럼 환히
나를 깨어 준 엄마와 형에게 사랑을 되갚는 일이다.
지금 형은 집안 일을 도우면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한시간씩 큰소리로 더듬더듬
책을 읽어 가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발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채.
오늘도 나는 온종일 형을 도와 과일
상자를 나르고 밤이 되서야 일을 마쳤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올렸다.
'오랬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다.
위의 글은 10 년전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고른 글이다.
그후 이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여 지금은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여
박사과정에 있으며 국내의 굴지
기업에서 전부 뒷바라지를 하고있으며 어머니와 형을
모두 미국으로 모시고 가서 같이
공부하면서 가족들을 보살핀다고 한다
이글은 한번만 읽기보다는 두서너번
읽을수록 가슴에 뜨거운 전류가 흐르면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울적에
올라가든 암벽에서 생명줄인 밧줄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주인공이 합격한날 세모자가 시장 모퉁이
순대국 집에서 모처럼 뜨거운 국물로 밥을
말아먹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누구에게 감사를 드렸겟으며 엄마는 도시락 하나
못싸주고 학원한번 못보내준 설음이 얼마나 북받쳤을까
말도 제대로 잘못하는 형은 사랑하는
동생을 리어카에 태워서 시장바닥을 돌며
얼마나 행복해 했을까...?
요즘 우리사람들은 사랑이나 행복.성공을
너무 쉽게 얻을려고하고 쉽게 노력도 아니
해보고 포기할려고 하며 지금도 장마비속에서
우리의 아버지.형.아들들은 세상을 원망하면서
서울역 지하도에서 주린배를 움켜쥐고
눅눅한 콘크리트 바닥에서 신문지 한장을 이불삼아
자면서도 내일의 꿈과 희망을 접지 않고
한순간을 이겨나가는 사람이 많다
누구를 원망하지 말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수 있다는것을
우리들은 이 글에서 배워야하리라..
공무원 공부하시는분들..그리고..수험생..재수생..
얼마남지 않았네요...모두 최선을 다합시다 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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