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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중 장례식 지원 간.ssul
게시물ID : military_203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롤개척운동가
추천 : 15
조회수 : 147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4/26 00:49:18

봄바람에 벚나무가 흔들리니 또 생각이 난다.

 

상병 말호봉 때 일이다.

여느 때와 같이 일과시작 전 티비를 보며 노닥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부소대장이 들어와

 

"3분대 파견이다. 일계장 일계화 환복하고 대기."

 

어디 훈련통제관이라도 가나?

수색대출신이라 통제관이나 기타 파견을 자주 가긴하지만

고참급도 아니고 분대단위로 그것도 A급 복장으로 파견이라니??

 

다른 인원들이 교육훈련 집합을하고 우리분대원 6명은 보급관을 따라 육공에 올랐다.

 

갑자기 파견이라니 귀찮기만 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도착한 곳은 벽제군병원 영안실? 앞 공터.

육공에서 내려서 보급관에게 임무를 전달받았다.

 

"X대대 애 하나가 자살했다. 니들은 여기서 장례병을 한다."

 

장례병? 그게뭐야? 우리는 어리둥절하며 무얼 어떻게 해야되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일단 보급관이 시키는 작업을 했다.

솥을 옮기고 식기와 정수기를 식당에서 가져왔다. 우리가 갔을 때 다른 부대아저씨들이 쳐 놓은, 몇인용인지도 모를 엄청나게 큰 텐트 안으로

테이블과 의자를 세팅했다.

솥에 물을 올리고 보급관이 가져온 육개장을 풀어 넣으며 우리는 뭔일인지도 모를 이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래지나지 않아 사단직할대 의무대원사가 한명와서 상황설명을 대충 해줬다.

 

내용인즉 특수지(철책) 경계부대 야간경계 중 일병 말호봉쯤 되는 사수와 갓 일병을 단 부사수가 초소 근무중이었는데

사수가 입에 총을 물고 당겼단다. 여친과의 이별이 원인이라고.

부사수는 거품을 물고 기절했고 총성을 듣고 도착한 밀조인지  5대기인지에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울하고 씁쓸한 이야기였다. 자살이야 어찌보면 흔하게 듣는 이야기였지만 보통은 자살미수로 그치는 일이 대부분인데다가 자살 방법은

손목을 긋는다던지 목을 메는 것이었는데 총을 물었다니...

 

우리는 상황 파악이 끝났다. 그래 3일동안 여기서 장례를 치러야 된다는 거지? 그것도 텐트에서 자면서? 우울해했다.

우리는 훈련 때 산에서 맨몸으로 자기 때문에 텐트를 치는 방법도 몰랐고, 타부대 아저씨들이 우리 텐트를 치는 동안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의무대 원사가

 

"아직 의무대인원이 안오네, 빨리 염해야되는데 니들 중에 두명만 들어와라. 야 미안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왕고는 안들어갈려고 했고 분대장과 함께 다음 짬이었던 내가 들어갔다.

전우의 시체를 보니 그냥 인형같이 느껴졌다. 생기가 없는 사람의 낯빛이란... 그리고 그 친구의 총이 k3였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눈썹위로 아무것도 없었다.

꽤나 충격적이어서 어찌 할 엄두를 못내고 있었고, 그렇게 5분을 멍하니 있었는데 마침 의무대아저씨들이 도착했다.

 

육개장을 끓이고 부식들을 준비하는데 가족들이 왔다. 엄마와 형이었던가? 그리고 외삼촌이란 사람과 몇몇.. 대여섯명 정도 왔던것 같다.

신기한 것은 아무도 울거나 슬픈기색이 없었다.

그리고 지인 열댓명 정도가 낮에 더 다녀가고. 간부들도 여러차례 왔다갔다 했다.

밤이 되자 친구들인것 같은 무리가 열명정도 왔고, 그 중 여친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밤새 훌쩍 거렸다.

둘쨋날은 일처리를 위한 간부들인지 뭔진 몰라도 군인들만 왔다갔다하고, 그 친구의 지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3일장을 치르는 동안 여러가지를 주워들었다.

종합해보면

 

그 친구는 이혼한 부모님 중 어머니 아래  살다가 10대에 집을 나온 것 같다.  그러고는 스무살이 되자마자 입대한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여친과 헤어졌고 자살을 했다.

 

통상적으로 사람이라면 받는 사랑이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았다.

오며가며 주워들은 가족이라는 사람들의 대화 내용은 보상금으로 일관 되어있었고 슬픔이나 분노와 같은,

가족의 상실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표현은 전혀 없었다.

설상가상 3일장이 끝났는데도 우리는 부대로 복귀하지 못했다. 

식장에 얼굴도 안비친 그 친구 아버지가 처음엔 매장동의서에 동의 하겠다고 했는데 말을 바꾸고 연락두절이란다.

이 또한 보상금때문이란다.....

그래서 간부들이 통영인지 거제인지까지 그 친구 아버지를 찾아가 사정하여 동의서에 서명을 받은 5일째 되던날 입관을 할 수 있었다.

 

5일째 아침 우리분대원들은 관을들고 장의차에 올리고 화장을 하고 임무를 마쳤다.

육체적 피로보다 정신적 피로가 몰려원 우리에게 의무대원사는

 

"그래도 저건 양반이다. 니들 선배한놈은 5년째 냉동고에 있다."

 

거참..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우울과 상실감에 말없이 부대에 복귀했다.

 

군대에서 자살?

자살하는 놈들이 자살 할 때는 이유가 한가지가 아니다. 삶이 총체적으로 엉망으로 꼬여있을때 더이상 정신을 유지 할 수 없는 일이 터졌을때

그런 선택을 한다는게 내 결론이다.

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죽는 애들은 이별이 절대적인 원인이 아니다. 다른 보이지 않는 원인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사랑 받을 수 없다고 느끼고  마음둘 곳이 없는 친구들은 그런 선택을 한다.

 

봄바람이 미친듯이 부는 밤에 술한잔에 알딸딸하니 생각이 난다.

 

보상금?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몇 십만원이었나 백 몇 십만원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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