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관료 출신·신자유주의 보수파 의원 45명이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한미FTA가 발효된 뒤에 즉시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유지 여부에 대한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약속을 받아오면, 비준안 통과를 저지하지 않겠다"는 절충안을 마련해, 이에 동조하는 의원들의 서명·동의을 받은 뒤 당 지도부에 한나라당과 타협할 것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국회 외통위 민주당 간사인 김동철 의원과 김성곤·강봉균·최인기 의원 등이 이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곤 의원은 8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김진표 원내대표가 이런 절충안을 갖고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김 원내대표의 협상안에 대한 지지표명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최고위원회가 김 원내대표의 협상안에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당내 절충안 협상파들이 김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나섰다는 것이다.
<문화일보>는 9일자 기사에서 "ISD 절충안을 만든 45명의 실체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강봉균·김동철·김성곤·김영환·박병석·신낙균·우윤근·이성남·장병완·조영택·최인기 의원 등이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45명 중 일부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를 필두로 한 민주당 한미FTA 절충안파 의원들은 겉으로만 '절충파·협상파'로 포장했을 뿐, 이들이 한미FTA와 관련해 보여 온 일련의 행보들을 보면 야권의 대표적인 '한미FTA 찬성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 진영과 야권의 한미FTA 전문가들은 절충파 의원들을 향해 "한미FTA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이 이명박 대통령·한나라당과 똑같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평가할 정도다.
특히 김성곤 의원은 한미FTA 절충안 서명 운동을 주도하고, 한미FTA 당론 변경을 위해 의원총회 무기명 비밀투표를 요구하는 등 끊임없이 당 지도부 방침에 반기를 들었다. 그의 발언과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청와대나 한나라당에서 파견 나온 사람처럼 보여 네티즌들 비난의 표적이 됐다.
그는 "ISD를 폐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폐기보다는 ISD의 문제점을 개정하는 정도로 가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정부와 한나라당의 입장과 똑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는 당 안팎의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줄기차게 한미FTA 비준안 합의 통과를 외쳤다. 10일에는 민주당 박상천·신낙균·강봉균 의원과 한나라당 홍정욱·황영철·주광덕·현기환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한미FTA 강행처리와 야당의 물리적 저지 반대"를 촉구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한미FTA 비준안을 비공개 날치기 한 다음 날에도 김 의원은 "한나라당 협상파 의원들은 불출마하지 말고 총선에 출마하는 것이 옳다"며 한나라당 의원들을 따뜻하게 격려했다. 그러나 최루탄까지 투척하며 날치기를 막아보려 했던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에게는 "잘못된 것으로 진짜 지나쳤다"고 비난했다.
김동철 의원은 10월 30일 '한미FTA 여·야·정 끝장토론'이 무산된 배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누가 그랬어요? 정동영 민노당 의원이요?"라고 반문하며, 당내 한미FTA 반대 선봉장인 정 의원을 민노당 의원에 빗대 비아냥거렸다. 이에 한나라당 소속 남경필 외통위원장은 민주당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토론회장에 들어선 김 의원을 향해 "갑자기 예수님 나타나셨다"면서 반가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김 의원은 한미FTA TV토론에 민주당 몫으로 나갈 때마다 한미FTA 찬성 발언을 서슴없이 해 반대 토론자나 야권 시청자들로부터 "김 의원 때문에 3:1로 토론한다"는 힐난을 받기도 했다.
강봉균 의원은 김진표 원내대표와 더불어 대표적인 관료 출신 신자유주의 보수파 의원으로 한미FTA 찬성 입장을 견지하고, 부자증세 등 진보적인 정책에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노영민 의원은 민주당 원내 수석부대표로 김진표 원내대표의 행동대장 격이다. 노 의원은 김 원내대표와 함께 한나라당과 KBS 수신료 인상안 합의, 한미FTA 비준 절충안 합의, 국회 등원(임시국회 소집) 합의 파동의 주역이었다. 그는 12월 9일 민주당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도 정동영 최고위원이 독단적으로 국회 등원 합의문에 서명한 원내대표단을 강하게 질타하자 이에 맞서 "정 최고, 당신이 당을 망치고 있다"며 김 원내대표를 엄호했다.
김진표 절충안‥ISD 폐기 없이 미국과 '눈속임 쇼' 하겠다는 것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미FTA 날치기 국면에서 민주당 한미FTA 찬성·절충안파의 중심 인물이었다. 누리꾼들은 지금도 김 원내대표를 "민주당 한미FTA 반란·역적의 두목"이라며 퇴출 1순위로 지목하고 있다. 트위터 등에서는 김 원내대표의 퇴출을 요구하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김 원내대표가 보수언론을 통해 "한미FTA 반대파는 쇼 하자는 것"이라며 극언을 퍼부으면서 민주당은 한미FTA 찬성파와 반대파의 극명한 노선 갈등으로 내전을 방불케 했다.
김 원내대표는 11월 10일 보도된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신자유주의 보수파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정동영 최고위원·손학규 대표 등 당내 한미FTA 강경 반대파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낸 것이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당내 강경파의 주장은 한미FTA의 내용도 잘 모르고 무조건 반대하는 게 선(善)이라고 생각하는 강경한 당 지지자들에게 '쇼' 한 번 보여주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당에 짓밟히는 쇼 한 번 하고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원내대표라고 믿기 어려운 망언에 가까웠다. 그는 "협상파들은 강경파들의 그런 주장에 반대하는 것이고, 협상파의 중심에 원내대표가 있다"며 자신이 절충안을 주도하고 있음을 실토하기도 했다.
그는 또 "ISD를 폐기하라는 건 FTA를 파기하겠다는 것과 같다"며 정부·한나라당과 똑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러면서 "미국으로부터 재협의를 위한 확약을 받으면 비준동의안의 정상 처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ISD 재협상에 응하는 시늉만이라도 해주면, ISD를 폐기하지 않더라도 한미FTA 비준안 통과를 막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한마디로 한미FTA 국회 통과를 위해 미국과 '눈속임 쇼' 한 번 하자는 것이었다. 이로써 민주당 절충파들의 진짜 속마음은 ISD 폐기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게 확인된 것이다.
민주당 한미FTA 반대파 의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종걸 의원은 같은 날 성명을 내고 "김진표 원내대표의 한미FTA 반대 투쟁에 대한 인식에 절망을 느낀다"며 "한미FTA 반대 투쟁에 온몸을 던져가며 앞장 선 개혁진보진영과 한미FTA로 피해를 입게 될 모든 이들의 면전에 인분을 투척한 것과 같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한미FTA 비준 반대가 쇼라면, 김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2중대, 한나라당의 트로이 목마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그러면서 이번 발언에 책임지고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민주당 보수파의 '반란'에 환영의 뜻을 표명하며 민주당의 당론 결정을 지켜보고 다음 행보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도 9일 YTN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절충안에 대해 "그거 듣기 반가운 이야기"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 "한미FTA 비준 연기는 배부른 소리"라고 일침을 가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적전분열(敵前分裂)이 야권 공조 전반을 흔들 수 있다는 희망섞인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네티즌 "민주당 배신자 명단 공개하라"‥총선서 대대적 '낙선운동' 조짐
이 같은 소식들이 알려진 11월 9일부터 누리꾼들의 민주당 한미FTA 절충안 동조 의원들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야5당과 사민사회의 한미FTA 비준 저지 운동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전분열을 일으킨 '반란'이란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또 비준안을 통과시킨 후 재협상하자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도 반발의 큰 이유였다.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고쳐야지 사인한 다음에는 아무 소용 없다', '만두에 독이 든 줄 알았으면 독을 빼고 먹어야지, 일단 독만두를 먹고 나중에 위 세척하자는 것', '일단 혼인신고부터 해놓고 혼인의 효력이 발효된 즉시 이혼 협상을 시작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는 등의 논리였다.
누리꾼들은 지금도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 한미FTA 관련 기사, 민주당 홈페이지 등에서 민주당 한미FTA 절충파 의원들을 향해 "한나라당 2중대", "본색을 드러낸 수구 한나라당 앞잡이", "매국 역적질에 동참한 45명 반드시 색출해 심판하겠다", "김진표 원내대표를 한나라당으로 추방시켜라"며 맹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누리꾼들은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된 '한미FTA 절충안 서명자 명단'을 트위터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퍼나르며, 내년 총선에서 대대적인 낙선운동을 펼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동자라고 알려진 의원의 경우 지역구와 의원실 전화번호까지 급속히 유포됐다.
민주당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민플'에도 11월 9일 하루에만 절충파 의원들을 비난하는 글이 무려 1000여 개가 넘게 올라왔다. 10일에는 김진표 원내대표의 출당·제명을 요구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누리꾼들은 "절충안이라니, 제정신이냐"며 "45명 의원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아이디 '민주주의'는 "민주당의 배신자들은 총선 공천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며 "설사 공천을 받는다 해도 낙선운동에 주력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절충안을 주도한 의원들의 사무실에는 9일 항의 전화가 쇄도해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김동철, 김성곤 의원의 홈페이지에는 이날 하루에만 200여 건의 비난 글이 올라왔다. 평소에 글 수가 10건 미만이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양이었다. 강봉균 의원 홈페이지에도 수십여 건의 비판 글이 게재됐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10일 채택한 결의문에서 "민주당 절충안은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매국협정을 강행하는 상황에서 '투항'을 의미한다"며 강력 성토했다.
일부에선 민주당 절충파 의원들의 역적 행보를 보면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한나라당과 공조한 잔류 민주당 의원들을 보는 것 같다"고 촌평하기도 했다. 야권 일각에선 차라리 잘됐다는 반응도 나왔다. 그러면서 "한미FTA 절충파 의원들은 야권통합 과정에서 반드시 걸러내야 할 인물들"이라고 꼬집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일부 절충파 의원들은 발을 빼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절충안과 관련된 한 의원 측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반발에 의원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며 "성명서를 공개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10일자 기사에서 "전날까지만 해도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절충안 동의를 받아 내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던 주동자들조차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며 SNS의 낙선 위협에 민주당 온건파가 숨어버렸다고 보도했다.
그런가 하면 한때 절충안 찬성파로 오해 받았던 의원들은 부랴부랴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원혜영 전 원내대표는 9일 "저는 한미FTA에서 ISD는 꼭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민주당 당론으로 결정하도록 했다. 지금도 이런 일관된 입장에 변함이 없으며, 더욱이 절충안에 찬성한 적이 없다.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민주당 당론으로 확실히 FTA를 막아달라"는 트위터리안의 요구에 "알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정범구 의원도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절충안 찬성자 명단이 트위터에 계속 올라오자 "뭔데 여기에 내 이름이 올라다닙니까? 어디서 나온 이야기입니까? 내 원 참. ISD와 같은 독소조항 폐기가 없는 한 난 FTA 결사반댈세"라고 답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절충안 찬성인지 반대인지 답해달라'는 한 트위터리안의 질문에 "반대!"라고 답글을 남겼다.
실효성 없는 절충안, 사실상 '한미FTA 비준안 처리 동의안'
논란이 확산되자 민주당 지도부는 11월 9일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이 절충안을 거부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최고위원들이 한목소리로 반대했다"고 말했다. 절충안이 ISD 폐기 등 '10+2 재재협상'이라는 당론에 어긋난다고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이 이날 "ISD 존폐를 놓고 재협상하라는 것은 우리 정부로서도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절충안은 더욱 설 땅을 잃고 말았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 등 최고위원회를 중심으로한 당 지도부는 '절충안 수용 불가'와 '선(先) ISD 폐기 재협상'이라는 기존 당론을 끝가지 고수했다.
당 지도부의 절대 다수가 거듭 확인한 한미FTA 당론은 "미국과 ISD, 역진불가 조항, 의약품 허가-특허허 연계 제도 등 독소조항 폐기를 위한 10+2 재재협상을 한 이후 그 재재협상 결과를 가지고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서 비준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지도부에서 김진표 원내대표만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한미FTA 비준안 발효 직후에 ISD 재협의를 시작하겠다는 약속만 받아오면, 비준안 통과를 막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당내 절충파 의원들이 그런 김 원내대표의 절충안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분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당 지도부는 절충파 의원들의 주장이 지난 10월 31일 김진표 원내대표가 당 지도부와 충분한 상의도 없이 한나라당 황우여 원대대표와 잠정 합의·서명했다가 최고위원회에서 거부된 안과 사실상 똑같은 것이라며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실제 10월 31일 새벽 김 원내대표는 황 원내대표와 "정부는 한미FTA 비준과 협정 발효 후 3개월 이내에 ISD 유지 여부에 관하여 한미 양국간 협의를 시작한다"는 내용의 <한미FTA 관련 여·야·정 합의문>에 서명했다가 당 안팎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산 바 있다. "실효성도 없고 국민을 우롱하는 안"이라는 게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결국 이 합의문은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의 최종 대안이 됐고, 비준안 날치기의 명분을 제공해준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야당의 원내대표가 여당에게 날치기 명분을 선물해준 격이 된 것이다.
민주당 한미FTA 찬성파들의 절충안은 31일 양당 원내대표가 합의한 '한미FTA 발효 후 3개월 이내'를, '발효 후 즉시'로 표현만 바꿨을 뿐 내용상으로는 똑같은 것이었다. 발효 후 3개월 이내나 발효 후 즉시나 시간상으로 별 차이도 없는 데다, 둘 다 한미FTA를 비준하고 발효한 뒤에나 미국과 ISD 재협의를 시작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준 후에도 ISD 폐기를 전혀 장담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미 양국의 비준이 다 끝난 마당에, 미국 정부가 한국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리도 만무하다. 협상을 차일피일 미루거나, 안 해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FTA 협정의 수정은 미 의회의 승인 사항이다. 한마디로 절충안은 실효성이 거의 없는 부도어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말이 절충안이지, 사실상 '한미FTA 비준안 처리 동의안'이었다.
무엇보다 청와대, 한나라당, 외교통상부가 ISD의 절차 부분에서 다소 개선은 몰라도 폐기는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이미 여러 차례 분명히 밝혔다. 설사 미국과 ISD 재협상을 하더라도 이명박 정권이 협상하는 한 ISD 폐기가 불가능하다는 건 불문가지다. 민주당 절충파도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그 바탕 위에서 실효성도 거의 없는 기만적인 절충안을 제시한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한미FTA 반대파, '선 ISD 독소조항 폐기' 당론 고수
이 때문에 민주당에서 한미FTA 반대 선봉에 서 있는 정동영 최고위원은 즉각 11월 9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절충안은 당론이 아니다"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재협상 관철하라! 10+2 독소조항 걷어내라!'는 것이 민주당의 변함없는 당론이다"며 "이를 훼손하는 것은 당의 FTA 저지 전선을 흩트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지금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협상할 때가 아니라 MB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협상해야 할 때"라고 일침을 가했다.
정 최고위원은 10일에도 <CBS 라디오>에 출연해 "절충안 서명운동으로 당에 분명한 피해가 왔다. 이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느껴야 한다"며 "기존 당론에 대해 개인으로서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이런 집단행동을 통해서 당에 피해를 준 데 대해서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10일 여의도 국회 앞 한미FTA 반대 촛불집회 연설에서도 "오늘 김진숙씨가 309일 만에 웃으면서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김진숙 앞에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됐기 때문에 살아내려 올 수 있었고, 박원순도 승리했듯이, 한미FTA도 이대로는 절대 비준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다짐"이라며 "제1야당의 당론은 '이른바 10+2라고 하는 독소조항을 걷어내라 그리고 재협상을 관철하라'라고 하는 당론에 한 획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씀 드린다"고 말해 청중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한나라당이 날치기 D-데이로 정했던 10월 28일, 10월 31일, 11월 3일, 11월 10일을 그대로 넘긴 것은 촛불의 힘이었다. 국민투표가 실시되는 그 날까지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며 가열찬 투쟁을 호소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절충파들의 끝없는 이적행위에 화가 난 정 최고위원은 11월 14일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에서는 작심한듯 "한미FTA를 찬성하는 사람들과는 통합정당을 함께 할 수 없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ISD가 별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한나라당 논리와 똑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한미FTA 당론 무기명 비밀투표에 대해서도 "철학과 소신을 걸고 해야지 비겁하게 뒤에 숨어서 투표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새롭게 창당하는 통합정당은 한미FTA 반대의 기치로 뭉쳐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야권이 김진숙 앞에서 하나됐고, 박원순 앞에서 하나됐다. 한미FTA 앞에서도 하나가 돼야 통합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게 빠진 통합은 또 하나의 열린우리당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 최고위원은 하루 전인 13일 문재인, 이해찬 등 혁신과통합 측 인사, 박원순 서울시장, 김두관 경남지사 등과 함께 한 '민주진보통합정당 출범을 위한 연석회의 준비모임'에서 "민주진보통합정당이 되면 한미FTA 저지 지도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 세력에 맞서는 '매국세력 대 애국세력'으로 전선이 형성되는 것"이라며 "한미FTA를 19대 총선으로 모아가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월 11일 민주당 확대간부회의. 이 자리에서 손학규 대표·정동영 최고위원을 비롯한 당 지도부의 대다수가 '한미FTA 절충안 반대-선 독조소항 폐기 당론 고수'를 확실하게 재천명했다.
손학규 대표는 "민주당 지도부의 뜻, 당론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말한다"며 "우리는 ISD 폐기와 함께 선 피해대책이 담긴 10+2 재재협상 원칙에 변함이 없다. 나는 당의 대표로서 의지가 확고하다"고 쐐기를 박았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한미FTA는 19대 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이 맞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손 대표는 민주당 절충파 의원들에게 당론에 따라달라고 요청했다.
정동영 최고위원도 "이 정부에 이완용 비슷한 사람이 너무 많은 거 같다. 주권 팔아넘기기에 이어서 역사 팔아넘기기에 나섰다"고 일침을 가한 뒤, "우리 법과 제도와 관행을 미국식으로 뜯어고치는 이 굴욕적인 주권침해 앞에서 이것을 지켜야 할 가치라고 말하는 한국 대통령의 인식에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다. 이 같은 대통령과 정권을 상대로 해서 우리가 할 일은 단일대오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절충파 의원들을 향해 "우리 당론은 바뀐 게 없다. ISD를 비롯 핵심 독소조항 10가지 이것 걷어내라는 게 당론이다. 이 당론이 바뀐 적이 있느냐. 이 당론은 여전히 오늘 현재 살아 있다. 명명백백하게 유일한 당론이다. 이걸 걷어내기 위해서 재협상하라는 것이다"고 쐐기를 박았다.
그러면서 "단일대오를 해치는 어떤 행동도 이것이 몰역사적이고,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고 하고, ISD를 지켜야 할 가치라고 망언하는 이런 정권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일"이라며 "지금 한나라당은 호시탐탐 강행처리의 틈을 보고 있는데 틈을 보여줘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이인영 최고위원도 "한미FTA와 관련해서 우리 당에 여러 가지 견해가 존재할 수 있지만, 당론은 하나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ISD를 핵심 조항으로 하는 한미FTA 재재협상이 없이는 민주당은 한미FTA를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없다는 점을 거듭 확인한다"며 거들었다.
조배숙 최고위원도 "국민들은 국회의 몸싸움을 싫어한다. 하지만 한미FTA 문제는 다르다. 여야 문제, 당리당략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전망이, 우리 모두의 운명이 달린 문제"라며 "청와대가 요구한다고 해서 동의한다는 것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결사적으로 막아야 한다. 우리 당이 애초에 정한 당론에 변함이 없다"고 거듭 투쟁을 다짐했다.
이에 대해 김진표 원내대표는 "어제 오늘 언론 보도를 보면서 착잡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특히 동아일보 보도로 인해 당에 누를 끼친 점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무엇이 진정 국익을 위한 길이고, 무엇이 민주당을 위한 길인지 이것을 찾아서 원내대표로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해 여전히 자신의 절충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에 우리의 경제주권과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인 ISD 폐기를 위한 미국과의 재협상 약속을 받아올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말했다.
밑질 것 없는 MB, '민주당 절충안' 수용‥날치기 명분 제공
11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한미FTA 비준·발효 후 3개월 내에 ISD 재협상'이라는 민주당 절충파의 초기 주장을 전격 수용하자, 다음 날 민주당은 "ISD 폐기·유보를 위한 재협상을 즉시 시작하겠다는 양국 장관급 이상의 서면합의서를 받아오라"며 궁색한 요구를 다시 제기했다.
그러나 국민들에겐 땡깡 부리기식 억지 주장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비준 전 ISD 폐기가 당론인 민주당이 정부가 재협상 서면합의서만 받아오면 비준안을 통과시켜줄 것인가라는 자기모순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는 애초부터 민주당 절충파 의원들이 한미FTA 비준안 통과를 염두에 두고 기만적인 절충안을 들고 나올 때부터 예견된 패착이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입장에선 민주당 절충파 입장을 수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절충안이라는 것이 미국과 ISD 재협의를 하는 모양새만 취해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 절충안은 야권의 한미FTA 비준 저지 명분만 혼란에 빠뜨리고, 투쟁 동력을 약화시키는 데 혁혁한 기여를 하게 된 것이다.
16일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 수용 여부를 놓고 5시간이 넘게 격론을 벌인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도 절충파인 김진표·강봉균·김동철·김성곤·노영민·박상천·송민순·송훈석·서종표·정장선·조영택·김학재·우제창 의원 등은 협상과 물리적 저지 반대 입장을 펼쳤고, 손학규·정동영·박주선·조배숙·김영록·김진애·장세환·정범구·추미애·이종걸·이춘석·이미경·유선호 의원 등은 ISD 폐기 재협상 후 비준과 물리적 저지라는 기존의 당론을 고수했다.
이처럼 절충파들의 이적행위로 한미FTA 저지 명분이 일그러지는 걸 보다 못한 정동영·천정배·조배숙 최고위원과 이종걸·정범구 의원 등 강경 반대파는 11월 16일 '당론 고수'에 대한 의원들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들은 "1.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방문으로 한·미 FTA 진행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2.기존 당론인 10+2 재재협상과 ISD 폐기 후 재협상이라는 당론을 지켜야 한다. 3.한·미 FTA 국회 강행처리는 용납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서명안을 가지고, 총 47명 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17일 김진표 원내대표에게 전달했다.
절충파 의원들의 역적질을 겨냥해 당론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운다는 의지를 원대대표단에게 분명히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한미FTA 도둑 날치기, 한나라당+민주당 절충파 합작품"
민주당 한미FTA 절충파들에 대한 불신은 민주당보다는 민주당 밖에서 더 거세지고 있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한나라당의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 계획을 사전에 알고서도 묵인·방조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날치기 당일인 11월 22일 오전 11시경 김 원내대표와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한미FTA 마지막 협상을 위해 회동했다는 사실이 그 근거다.
특히 황우여 원내대표가 날치기 다음 날인 23일 기자들과 만나 "어제는 단독 기습 강행처리가 아니다. 합의처리에 준한 것이다. 당일 오전 11시께 김진표 원내대표를 단독으로 만났을 때 김 원내대표에게 몇 시에 처리한다고만 안 했지 오늘 한다는 '암시'를 다 했다"며 "여야 의원들이 샤우팅(shouting·고함)이나 피케팅(picketing)은 허용키로 했었는데, 민주당이 몸싸움 없이 그 정도 범위에서 (반대)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주장하면서 의혹은 더욱 커져 갔다.
여기에다 소설가 공지영 씨가 23일 한 트위터리안의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의 날치기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22일 오전 11시 황우여 원내대표에게 최종협상 결렬 통보를 받았다"는 멘션을 리트윗하면서 사전인지설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민주당과 김 원내대표는 사실이 아니라고 펄쩍 뛰었지만, 누리꾼들은 김 원내대표가 당일 오전 황 원내대표와 회동에서 협상이 결렬돼 조만간 한나라당의 날치기 시도가 있을 것이란 것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음에도 소속 의원들에게 국회 본회의장 집결·대기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사실상 날치기를 묵인·방조한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또 한나라당이 한미FTA 날치기를 시도한 그 순간, 민주당의 대표적 절충파인 김성곤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민주당 의원 40여 명이 참석해 넋 놓고 있었던 것도 방조 의혹의 근거로 회자되고 있다. 김 의원 측은 "수일 전부터 예정된 출판기념회였다"고 해명했지만, 그에 대한 깊은 불신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많은 네티즌들은 지금도 한미FTA 비공개 날치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절충파 의원들의 합작품'이라는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처럼 민주당 절충파 의원들에 대한 의혹과 비난이 쏟아지고, 한미FTA 국회 비준으로 다 끝날 것 같았던 한미FTA 반대 열기가 예상과 달리 비준 무효화·폐기 촛불로 전국에 들불처럼 번지자 절충파 의원 대부분은 촛불집회를 외면하고 잠수를 탔다. 일부는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총선용 알리바이 확보에 나서는 기회주의적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절충안 2탄 '국회 등원론'으로 또 한미FTA 전선 무력화
그런 가운데 지난 12일 8일 김진표, 노영민 의원 등 한미FTA 절충파들이 중심이 된 민주당 원내대표단은 또다시 의도된 대형사고를 쳤다.
당 지도부와 충분한 상의도 없이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와 예산안·한미FTA 피해대책 관련법의 연내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 소집(국회 등원)'에 덥석 합의를 해준 것이다.
김진표 원내대표의 독단적인 밀실 합의 파동은 벌써 3번째다. 제멋대로 한나라당과 밀실 합의를 해놓고 당 안팎의 거센 반발이 일면 하루 만에 파기하는 패턴도 똑같다.
지난 6월 22일 KBS 수신료 인상안 처리를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와 전격 합의해줬다가 당 안팎의 거센 반발이 일자 하루 만에 파기하는 소동을 벌였다. 그리고 10월 31일 한미FTA 비준 문제로 또 당론과 어긋나는 절충안을 만들어 황우여 원내대표와의 합의문에 서명해줬다가 당 지도부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자 하루 만에 여·야·정 합의문을 파기했다. 그리고 12월 8일 한미FTA 비준 무효화 촛불이 들불처럼 타오르고, 야권과 시민사회의 '민주당 등원 반대' 경고가 잇따르고 있음에도 김 원내대표는 아랑곳 않고 또다시 독단적으로 황우여 원내대표와 임시국회 소집(국회 등원) 합의문에 서명을 해주면서 백기투항하고 말았다.
야당의 최대 책무는 여당에 대한 견제와 감시다. 그런데 야당의 역할은커녕 여당의 한미FTA 도둑 날치기에도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처참하게 당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야당이 한미FTA 무효화 촛불이 더욱 거세지고, 법원의 현직 판사들까지 나서 "한미FTA=매국"이라고 외치는 판에 되레 여당을 향해 백기투항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김 원내대표의 상습적인 이적행위에 분노한 누리꾼들은 트위터 등 SNS를 중심으로 "민주당, 도대체 뭐 하자는 당인가. X맨 김진표를 당장 출당시켜라"며 맹비난을 쏟아냈다.
정동영·이종걸 등 반대파‥눈물겨운 '한미FTA 폐기 당론' 사수
인내에 한계를 느낀 정동영 최고위원도 12월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 상태에서 국회 등원은 한미FTA 무효화 촛불집회마다 나부끼는 민주당 깃발에 대한 배신이다. 한미FTA에 대한 역사 인식의 결핍이 개탄스럽다. 한미FTA 반대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결정으로 의총을 통해서 마땅히 취소돼야 한다"면서 "이런 식으로 민주당이 허물어져선 안된다"며 김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했다.
민주당 한미FTA 무효화투쟁위원회(위원장 정동영 최고위원)도 이날 여성위원장, 청년위원장, 대학생위원장과 함께 등원합의 철회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당이 가야할 곳은 국회가 아니라 광장"이라며 "양당 원내대표의 등원 합의는 원천무효다. 우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투쟁의 선봉에 설 것이다. 이 길을 흔드는 어떠한 시도도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 안팎의 비난이 빗발치자 김 원내대표는 9일 사의를 표명하며 한발 물러서는 척하면서 또 다른 조건을 내걸어 사퇴 의사가 전혀 없음을 드러냈다. 14일 의원총회에서 의원 전원을 상대로 무기명 비밀투표를 실시해 그 결과에 따라 사퇴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김 원내대표와 한미FTA 절충파들은 민주당 현역의원 대다수가 한미FTA 무효화 투쟁보다 국회에 등원해 자기 지역구 예산 챙기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는 판단 하에 무기명 비밀투표를 통해 등원 당론을 확정짓고, 한미FTA 반대파의 등원 거부 주장을 제압하겠다는 의도였다.
실제 김진표 원내대표단은 의원총회를 앞두고 9일부터 등원 찬성을 유도하는 편파적인 설문지를 작성해 비공개로 의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단은 'FTA 날치기 처리에 대한 한나라당의 사과, 예산안 합의처리 약속, ISD 폐기·유보에 대한 즉각적 재협상 착수'라는 등원의 전제조건을 내걸었지만, 이에 대한 정부·여당의 확실한 답도 없이 등원 날짜를 못 박은 설문조사를 한 것이다. 그 결과 60여 명의 의원들이 '등원해야 한다'고 답했고, 등원 날짜로 12일, 19일을 꼽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김진표 원내대표단의 설문조사는 등원 명분을 쌓기 위한 '바람잡이용 꼼수'였던 것이다.
이에 이종걸·정범구·조배숙·김진애·문학진·유선호·신건·장세환·강창일 등 한미FTA 반대파 의원 9명은 12일 긴급 성명을 내고 "민주당이 11일 전당대회에서 만장일치로 한미FTA 무효화를 당론으로 결정하고 대외적으로 천명한 상황에서 국회 등원은 한미FTA의 투쟁전선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며 등원합의 파동으로 당에 큰 타격을 준 김진표 원내대표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또한 떳떳하지 못한 비공개 설문조사를 즉각 증단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은 12월 11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야권통합 결의를 위한 전당대회(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한미FTA 비준 무효화(폐기) 결의문'을 채택했다. 민주당은 이 결의문에서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이 날치기한 한미FTA 비준동의안은 원천 무효임을 선언하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이명박 정부의 매국적 행태를 국민과 함께 심판하고, 굴욕적인 한미FTA를 반드시 폐기할 것을 결의한다"고 천명했다.
결의문 제안자인 정동영 최고위원은 이날 제안 설명에서 "오늘 한미FTA 폐기 결의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과 한미FTA 폐기는 우리 민주당의 정체성"이라며 "우리가 야권 통합을 하는 목적은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고, 그 첫걸음은 굴욕적인 한미FTA 폐기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로써 민주당의 한미FTA 당론은 명실공히 "한미FTA 폐기"로 확고하게 굳어진 것이다. 민주당의 전 당원이 '민주당은 한미FTA 비준 무효화와 폐기를 위해 총력 투쟁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한미FTA 독소조항 폐기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진표 원내대표단과 절충파 의원들의 독단적인 국회 등원 시도는 한미FTA 무효화·폐기 투쟁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해당행위이자 당원에 대한 배신이라는 게 한미FTA 반대파와 일반 당원들의 생각이다.
이 때문에 이종걸 의원은 14일 의원총회 직전에도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성명을 내고 "오늘 등원을 논의하는 것은 최악의 전략이자 최하책"이라며 '현 단계 등원론이 부당한 10가지 이유'를 제시하며 등원 논의 중단을 간곡히 호소했다.
그는 특히 "지금 등원을 논의하는 것은 11일 전당대회에서 한미FTA 무효화 투쟁을 결의한 당원에 대한 배신이며, 당 최고의결기구의 결정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날이 갈수록 촛불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지금, 등원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한미FTA 무효화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고 등원파들을 비판했다.
이 의원은 또 "한미FTA 날치기 비준으로 18대 국회는 사실상 끝났다. 국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은 한나라당에 있다"며 "필요 예산이 있다면 19대 국회에 다수당이 돼서 추경으로 처리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에서 등원론이 나오면서 보수신문들이 민주당을 비웃고 있다. SNS 등의 여론이 싸늘해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궤멸과 우리의 통합 결정으로 당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등원 논의는 차려진 밥상을 스스로 걷어차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당원과 국민의 편에 서서 등원 논의 자체를 거부하자"며 "서울시장 선거를 만들었던 전략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쁜 등원론 착한 거부'다"고 호소했다.
김진표 일당 '등원 쿠데타' 성공‥민주당 현역의원들 본심 드러나
그러나 한미FTA 반대파의 눈물겨운 호소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미FTA 폐기 결의문 채택에도 불구하고, 12월 14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김진표 원내대표단의 예산안을 앞세운 '한미FTA 전선 무력화 쿠데타'는 명분도 실효성도 의문시되는 '조건부 등원'으로 결론이 나면서 성공적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날 의원총회에서 대다수 민주당 의원들은 원내외 병행 투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정했고, 김진표 원내대표에게 등원 시기와 조건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위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사퇴 의사를 밝혔던 김진표 원내대표도 재신임됐다.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총 71명의 의원이 참석해 24명이 발언에 나섰으나, 정동영·이종걸·조배숙·김진애·이미경·정범구·문학진 의원 등 7명만 등원 반대 입장과 김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했다. 역시나 김동철, 김성곤, 김성순 의원 등 한미FTA 절충파 의원들이 등원론을 강력히 주장했다. 전현희 의원은 의총 도중 "분위기가 처음에는 강경파로 흐르는 듯하다가 김동철, 김성곤, 김성순 의원 등 온건파 의원들이 발언을 이어가며 '등원 불가피성'을 주장하자 강경파쪽에서 온건파쪽으로 분위기가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로써 민주당 현역의원의 대다수는 야권 지지층의 반발과 총선에서 낙선운동이 두려워 당장은 한미FTA 무효화 투쟁을 말하고는 있지만, 실제 속마음은 한미FTA 투쟁 국면이 얼마나 불편하고 하루빨리 종결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지 지역구 예산 챙기기라는 이권 앞에서 그 속살이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12월 20일. 김진표 원내대표단은 '김정일 사망(12월 19일)'이라는 돌발 변수에 초당적 협력이라는 핑계로 전격 국회 등원을 결정했다. 국회 등원 날짜만 손꼽아 저울질하던 한미FTA 절충파들에게 김정일 사망은 백기투항할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그 결과 민주당 절충파들이 14일 의총에서 등원 조건으로 내걸었던 'ISD 폐기·유보를 위한 즉각적 재협상'은 20일 황우여 원내대표와 등원 합의를 하면서 또다시 'ISD 폐기·유보·수정을 위한 재협상 촉구 결의안 채택'으로 둔갑해버렸다. 폐기·유보에 '수정'을 추가해줌으로써 이명박 정부가 ISD를 폐기하지 않고 적당이 고치는 척만 해도 되는 것으로 백기투항해버린 것이다. 결국 민주당 절충안파들은 자신들이 관철하겠다고 한 약속마저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애초부터 ISD 등 독소조항 폐기 따위는 전혀 관심사항도 그럴 의지도 없었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 것이다.
하루 전인 12월 19일 민주통합당은 출범 후 첫 최고위원회에서 통합 전 민주당이 전당대회에서 당론으로 채택한 '한미FTA 무효화·폐기 결의안'을 민주통합당의 당론으로 승계한다고 의결했다. 또 날치기 FTA 무효화투쟁위원회(위원장 정동영 의원)도 그대로 승계해 투쟁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러나 민주당 절충파들의 기만적인 등원 합의는 이런 당론과 당원들의 염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나꼼수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징역 1년 실형, 10년 간 피선거권 박탈' 선고가 내려져 SNS가 분노의 용광로로 들끓었던 12월 22일. 그 시각 절충파 두목 김진표 원내대표는 청와대 회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국격이 있는데 무슨 ISD 재협상 촉구 결의안까지 하냐. 신중해 달라"는 핀잔을 듣고 있었다. 자업자득이었다.
"민주당 절충파·등원파는 매국노당의 세작들" 비난 빗발
이런 상황에서 야권 연대의 대상인 통합진보당과 한미FTA 무효화 운동에 나선 시민단체,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에서 민주당의 등원 결정에 비난이 빗발친 건 너무나 당연했다.
한미FTA 장외투쟁 2주 만에 국회 등원에 합의하며 백기투항한 민주당 절충파·등원파들의 이중적이고 기만적 행태에 대한 분노와 비난이 빗발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분노는 고작 2주짜리였나", "민주당의 X맨 김진표를 당장 출당시켜라"는 요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특히 엄동설한에 광장에서 한미FTA 폐기 운동에 나선 촛불 시민들 입장에선 민주당의 국회 등원은 한미FTA 무효화라는 국민적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한나라당의 한미FTA 도둑 날치기에 면죄부를 주는 역적질이나 다름없었다.
야권 일각에선 한미FTA 반대 열기가 식기는커녕 더욱 거세지자 당황한 민주당 절충파들이 한미FTA 반대 진영을 와해시키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예산안을 앞세워 전격적으로 한나라당과 국회 등원에 합의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등원 합의가 나온 12월 8일 자신의 트위터에 "민주당, 무슨 당이 이렇습니까? 못 믿겠습니다. 정말"이라며 극도의 배신감을 토로했다. 그는 또 14일 민주당이 조건부 등원과 김 원내대표의 재신임을 결정하자 "민주당이 지금 등원해 한나라당에 산소호흡기 대주면, 총선 야권연대 가능성을 없애는 겁니다. 말로만 명분 찾고 행동은 따로 하는 야권연대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라고 올려 사실상 야권연대 파기를 선언했다. 국회 등원한 22일에도 "민주통합당이 야권연대의 기초를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라며 여권연대를 재검토하겠다고 반발했다.
강기갑 통합진보당 원내대표도 14일 성명을 내고 "한나라당이 한미FTA 날치기를 감행한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민주당이 집단적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다"며 "민주당의 오늘 결정은 향후 야권연대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문부식 진보신당 대변인 역시 "민주당 의총은 김진표 원내대표 재신임과 임시국회 등원을 결정함으로써 다시 한 번 곡예정치의 현란한 기술을 펼쳐보였다"며 "한나라당이 한미FTA 비준안을 날치기 통과시킬 때 '믿는 구석'은 바로 민주당의 이러한 기회주의적 태도였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누리꾼들도 "민주당이 딴나라당 2중대임이 증명됐다", "민주당 등원파를 '한미FTA 야합파'로 규정짓겠다. 만약에 등원을 결정한다면 등원파 명단을 1일 1회씩 올려서 총선에서 뜨거운 맛을 보여줄 것!", "매국노당의 세작들이 가득한 민주당, 이제 민주당도 매국노당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리지겠군…." 등등 민주당 등원파들에 대한 격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미FTA를 도둑 날치기한 한나라당은 14일 논평을 통해 "조건을 달아가며 국회 등원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민주당의 모습은 의회민주주의에 반하는 무책임한 행태"라며 무조건적인 등원을 촉구하며 되레 큰소리를 쳤다.
재산을 강탈해간 강도는 반성은커녕 '나 잘했다'고 동네방네 큰소리 치고 다니는데, 피해자가 사과와 강탈당한 재산을 돌려받을 생각은 않고 '또 강도질 않겠다는 약속만 해달라'며 애걸복걸하고 있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소설가 공지영 씨가 "전두환 때 민한당 유치송 이후 이런 야당은 처음 본다"는 힐난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민주통합당 스스로가 입증해준 셈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김진표 원내대표 일당의 밀실 합의문 파동이 벌어질 때마다 민주당은 야권 지지층의 실망과 분노로 인해 당 지지율이 휘청거렸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가히 역적질을 넘어 한나라당에서 몰래 침투한 '트로이 목마'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러나 이들의 한미FTA 반란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들의 반란의 기저에는 민주통합당이 총선을 앞두고 야권 통합과 연대 과정에서 한미FTA 폐기·무효화가 최대 기준점으로 자리잡을 경우, 입지가 크게 줄어들 것을 우려한 관료 출신·신자유주의 보수파 의원들의 '스크럼 짜기'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반란을 제압하는 유일한 무기는 야권을 지지하는 유권자와 한미FTA 반대 촛불 시민들의 압력뿐이라는 게 한미FTA 반대 진영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나꼼수 "기억하라 그리고 응징하라"
최근 '나는 꼼수다'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정봉주 민주당 전 의원은 "한미FTA 전선에서 아군 등 뒤에서 총질한 민주당 한미FTA 절충안파 의원들을 낱낱이 공개하고, 반드시 응징하겠다"고 선언해 눈길을 끌었다.
정 전 의원은 11월 7일 공개된 나는 꼼수다 27회를 통해 "지금 제일 문제가 되는 건 민주당 내에서 한미FTA를 대충 고치는 척만 하면 그냥 넘어가자는 의원들이 87명 중 꽤 된다는 것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도 "국회의원들이 한미FTA를 통과시키면 '재선이 안된다'는 위협을 느껴야 하는데, 그 위협을 줄 사람은 유권자들밖에 없다"며 "이번에 한미FTA를 통과시키는 데 일조하거나 통과시키려고 했던 의원들의 이름을 각종 형식의 노래로 만들어 유권자들에게 다 기억시키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 전 의원은 11월 7일 경남대 강연에서도 "민주당 안에도 한미FTA에 대해 한나라당보다 더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의원들이 있다. 열린우리당 때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쳤을 때 152명 의원 가운데 52명만 동의했다. 민주당에 가야 그 지역에서 당선될 것 같으니까 정치성과 무관하게 정당에 가입한 것이다. 민주당 의원 80~90%는 물갈이를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또 11월 10일 여의도 국회 앞 촛불집회에서 민주당 한미FTA 절충파 의원들의 이름을 나꼼수에서 낱낱이 공개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는 "민주당이 지금 한나라당과 싸우고 있고 미국과 잘못된 협상을 막자고 하고 있는데, 이 전선에서 열심히 달려가는 정동영, 이종걸, 이정희, 강기갑 이런 의원들이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뒤에서 총을 쏴대는 사람들이 있다"며 "나꼼수에서 그 분들의 이름을 낱낱이 거명하고, 지역구도 샅샅이 거명하겠다. 아군 등 뒤에서 총을 쏴대고 아군에게 총질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낱낱이 공개하겠다"고 천명했다.
한나라당이 한미FTA 비준안을 날치기한 다음 날인 11월 23일. 정봉주 전 의원은 서울시청 앞 촛불집회에서 한미FTA 절충파 의원들을 향해 격한 분노를 쏟아내며 반드시 응징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정 전 의원은 집회 참가자들이 '민주당을 탈당하라'고 연호하자 "탈당하는 건 쉽다. 근데 우리 이정희 의원님, 권영길 의원님, 김선동 의원님, 조승수 의원님, 정동영 의원님이 앞에서 FTA 반대한다고 열심히 하는데, 뒤에서 절충안이라고 하는 총기를 들이대고 우리 동지들 뒤에서 칼을 쑤신 그 사람들(참가자들 "김진표" 이름을 외침)을 잡기 위해서도 나는 탈당하지 못하고 민주당을 뒤집어 놓을 때까지 악착같이 남아서 싸울 것"이라며 울분을 토해냈다.
그러면서 "정말 새롭게 건설하는 정당에서는 이런 모습 절대 보이지 않기 위해서, 우리 등 뒤에서 총질한 사람들 반드시 기억해서 그분들을 응징할 수 있는데 내가 기꺼이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나꼼수의 방식으로 다시 한미FTA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서 원점으로 돌리겠다"고 약속했다.
새로운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뒤로 되돌리려는 한미FTA 토로이 목마들에 대한 응징이 비단 나꼼수만의 시대적 소명은 아닐 것이다
찍는거는 뭐라안하겠지만 김진표가 어떤인간인지는 알아서 판단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