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찌질이양아치가 사람되는 이야기
게시물ID : lovestory_540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Vegimil
추천 : 5
조회수 : 68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4/26 14:21:40
자소서를 쓰는 요즘입니다.어린나이에 겪은일들이 많아서 술자리에서 인생얘기를 하면 듣는사란들은 항상좋은반응을 보입니다.진짜 연륜있으신분들이 읽으시면 같잖으시겠지만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읽고 동기부여나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난 초6말에 2년동안 누나와 둘이 유학을 다녀와 중2때 1학년 낮춰 복학을 했음 
호주였는데 적응을 잘 못했음 사립학교였는데 인종차별이 좀 쩔었음 
막 내 책을 숨기고 귓속말로 "내가 니책 숨김ㅋ"하고 도망가는 스리랑카애도 있었음ㅋ 대다수 한국유학생들이 거기서 내새울수있는건 축구와 수학인데 난 그것마저 걔한테 밀렸었음
그날 수업시간에 선생이 왜 책이없냐고 물어보자 "쟤가 숨겼어요(히 스틸드 잇이라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고 했더니 선생은 "쟤는 공부도 열심히하고 착한 아이야"라고함.경멸스러운 눈빛은 내게 보냄ㅋㅋ; 물론 그놈은 울것같은 표정을 지음
암튼 그땐 영어도 잘 못해서 더이상 말을할수가 없었음  책상 배열이 걔내분단 우리분단이 마주보도록 돼잇었는데 얖친구랑 나를보고 손짓을하며 존나비웃음ㅋㅋㅋㅋ 그때난 굉장한 다혈질이였고 외로움에 상당히 우울했었음 그날 그 분노와 수치심은 어린내게 너무 벅찬것이였음

그날의 내 모습은 롤에서 쓰리억제기 밀린상황에서 혼자 리스폰한 카직스의 모습이였다고 함
정말 그 깜디를 패죽이기 위해 열심히 달림. 학교전체를 다 돌음.한국형누나들은 내가 내 또래와 술래잡기를 하는걸 보고 드디어 내가 친구가 생겼구나 하다가 내 표정과 흩날리는 눈물을 보고 유학생 카운셀러 선생님을 찾아갔다고 함
축구할땐 그놈이 빠르고 체력도 좋았는데 아까도 말햇다시피 난 분노로 초인적임 힘을 발휘함
잡았음
잡아서 울면서 때렸음 맞는놈보다 때리는놈이 더 서글프게 움
그리고 바로옆의 문이 벌컥 열리고..
교장이나옴. 그 간사한놈이 도망쳐서잡힌곳이 교장실앞이였음
그순간 바로 멱살을 잡히고 끌려들어감. 영어도 잘못하는 상황에서 펑펑 울고만 있었음. 그리고 카운셀러 선생님이 달려오심. 그날 정학먹음
정학기간이끝나고 학교에 다시갔을땐 난...벌레?뭐랄까 좀크고 징그러워서 잡기무서운 벌레같은 취급이엿음 다들 날 피함. 차라리 그게 나았음. 전엔 내 한국이름을 중국이름처럼 부르며 놀리고 내가 뭐말 하려면 애기한테 타이르듯이 노우~노우노우~하며 깔짝대던놈들임.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게 다시 시작됨. 이번엔 백인놈이였는데 그놈은 알아주는 인종차별자임ㅋㅋ 치밀한 조사와 계획으로 날 괴롭힘. 한국인들은 벌레(번대기)와 개를 먹는다...일본한테 나라를 뺏기고 황후(퀸이라고 표현)를 포함한 모든 여자가 창녀가 됐다...그래서 하직도 호주에 한국여자들이 몸을팔러온다...쓰래기 거지나라다...나도 부모가 범죄를저지르고 도망쳐온 부모의 자식이다...우리엄마도 창녀다...이런 말을 함. 친절하게도 내가.알아들을수 있는 단어들만 사용해줌. 주변에 다른애들의 리액션도 과관이였음. 정말 대단히 개새끼였음. 그리고 또 폭력을 휘두름.하지만 난 이날을 생각하며 후회한적이 한번도 없음. 결국 퇴학당함.
다른학교에 갔는데 거기서도 비슷했음.근데 거기선 애를 때리거나 한적은 없었음. 그런데 마지막에 또 부잣집 백인이 한국욕부모욕하며 지는돈많아서 변호사고용할수있다며 어깨를 툭툭치며 때려보라함ㅋ참아왔던 화가 폭발하며 때렸음 (아 근데 나 싸움 잘한다고 자랑하는거같은데 나 싸움 잘하지않음.호주놈들이 싸움경험이없어서 때릴수있었던거임) 그런데 그학교에선 주변애들이 그걸 가만두지않음. 날 벽으로 밀쳐서 목을조름;;;:근데 그게 중국인이민2세ㅋㅋ;
결국 난 집단폭행이란것을 타국에서 경험함 그렇게 당하고 정학먹음ㅋㅋ..몸과목에잇는멍과상처들의 사진을찍어교장에게 보여줬지만 통하지않음 내가 먼저 때렸으니 어쩔수 없음.
정학이끝나고 찌그러져사는데 교장실에서 날 찾음. 동영상을.보여주며 라커룸(사물함들있는곳)에서 내가 땅에 떨어진 좌물쇠를 줍고 어디론가 갔다며 좌물쇠를 왜 훔쳤냐며 무섭게 얘기함. 근데 난 그 좌물쇠 담임쌤한테주려다 대체이놈의학교는 교무실이어딘지모르겠다 하며 다시 그자리에 돌려놨었음 좌물쇠를 건들지 않았으면 됬지만 선생님에게 잘보이고싶었음...그래도 착한아이였나봄.그래서 교장한태 뒤로조금만 더 넘겨보라하고 그장면을 보여줌. 교장은 의심한것에 사과도없이 나가보라함.
그일을 계기로 또 상처를받은 난 한국에 돌아옴.
법적으로 사립학교에만 갈수있는 상황이라 타지에서 하숙을 했음 
지방인데 우리지역엔 사립중학교가 없었음 
중학교땐 복학생이라도 그냥 다같이 친구로 지냈음 
꼴에 자존심은 있고 해서 거기서도 싸움질을 많이했음 역시 한국 중학교에선 싸움을해야 왕따와 무시를 안당한다고 생각한 멍청이였음 한국오고 얼마안돼서 소위말하는 '노는애들'과 어울림
그러다가 같이다니는 무리에서 팅겼음
난 다시 아웃사이더가 됨 
중3이 돼서 담임선생님은 날 취급자체도 안함. 인사는커녕 눈도안마주침. 중학교 성적표엔 학부모께 따로 몇마디 적어보내잖슴? 1학기 중간고사때 우리반에 나만 그거 아무것도 안적혀있었음.자존심이 굉장히 상하며 선생님에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름. 그런데 집에가서 이불차다보니 나 자신이 굉장히 부끄러움. 잘나지도 않았으면서 자존심세우고 어깨에 힘주면서 허세나부리고 은따당하고...진짜병신중의병신이였음.
공부를 시작함. 내인생에서 그때 가장 열심히 공부함. 새벽세시까지공부하고 각종음료와약품으로 버프시전해가며 공부함. 기말고사를 치고, 430명중에 37등함. 가정통신문에 네글자가 적힘.日就月將일취월장 이라는 말이 있잖슴? 그대신一 就 越 將일취월장이라고 적혀있었음. 뜻을몰라 해석하는데 개고생하다가 결국 한문쌤한테가서 해석좀해달라고함. 한문쌤은 굉장히 무서운 선도부장선생님이라 큰 결심끝에 갔음. 선생님은 그 성적표를보고 기특해하며 다달이 발전하다는 뜻 대신 한번에 큰 발전을 했다는 의미로 쓰인거리고 해주심. 울었음. 기쁨의 눈물은 분노의 눈물과 확연히 달랐음. 그.벅찬기분을 지금와서 생각해도 생생함. 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였음. 
그렇게 난 공부를 시작하고 선생님들도 날 무시안함.친구들도 새로 사귀게 됨.

휴 많이도적었네요. 반응보고 더 적어보겠습니다ㅠ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