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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그여자, 그리고 그 남자
게시물ID : readers_51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람노래
추천 : 2
조회수 : 19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2 23:57:54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그가 눈을 맞으며 서 있었다. 그녀는 한 일가족이 오열하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시간 다 돼간다. 슬슬 가야지.”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가.”


그녀의 말을 들은 그가 고개를 두어번 가로저으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셔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틱, 틱. 오래된 지포라이터를 몇 번 당기더니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들이마셨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마른 담뱃잎이 타들어갔다.


“슬퍼 보이지?”


“우리 둘이 헤어졌을때 만큼.”


돌아보지 않고 꺼내는 그녀의 질문에 맞춰 자연스레 대답하는 그 남자. 그녀는 계속해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됐지? 우리 헤어진지.”


“한 삼년 됐나. 그러고 보니 꽤 오래됐네.”


고요. 잠시 동안 정적이 남자와 여자를 감쌌다. 오열하는 가족들을 억지로 밀어내며 구급대원들이 조심스레 이동식 침대로 한 사람을 구급차에 태우고 있었다. 약간은 슬픈 듯 한 표정을 짓는 여자. 어느새 담배를 다 태웠는지 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또다시 담배 한 대를 꺼내 문 남자에게 그 여자가 다시 말을 건넸다.


“여전하네, 담배 많이 피우는 건.”


“뭐, 이제 와서야…. 상관없지.”


“하긴….”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을 스쳐지나가는 씁쓸함. 날카롭게 칼을 간 겨울바람이 세차게 그들을 위협했다.


“…지난 3년 동안, 잊을 수 없었어.”


“…나도 마찬가지였어. 힘들어 하는 네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너무 힘들었어.”


희뿌연 연기가 허공에서 발버둥치며 흩어졌다. 여자가 드디어 몸을 돌려 남자를 마주봤다.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서로의 슬픈 눈망울을 바라봐서였을까. 먼저 입을 연 건 여자였다.


“…어떻게 지냈어?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어?”


“한심했지.”


키득키득. 울음 섞인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한심하고, 답답하고, 바보 같아 보이고.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앞에 나타나서 그만 좀 잊으라고, 나 잊고 잘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멍청해보였지.”


“한번만이라도, 단 한번만이라도 널 다시 만나고 싶었어. 혹시라도 이렇게 힘들어하면, 오빨 잊지 못하면 오빠가 내 앞에 나타나서 미안하다고, 떠나서 잘못했다고 말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정신을 놓고 살았어.”


“알아. 그런 것도 다 봤어.”


“알면서 왜 이제야 나타난건데!”


찢어지는 듯 한 그녀의 목소리. 울음소리가 섞여 절규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겨울바람이 조심스레 그에게 실어 날랐다.


“그럴 수 없다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었잖아.”


그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절반이나 남은 담배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랬어. 나 같은 놈 잊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들만 먹고, 좋은 것들만 듣고.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길 바랬지.”


“위선이야….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지난 3년이 용서가 될 것 같아?”


하염없이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目)물인지 눈(雪)물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두 가닥의 물줄기가 그녀의 하얀 뺨을 타고 바닥에 떨어졌다. 남자의 뒤로 구급차가 빠른 속도로 사이렌을 반짝이며 스쳐 지나갔다. 남자의 옷이 구급차가 일으킨 바람에 휘청거렸다.


“…그래도 용서할게. 이렇게 기다려줬으니까.”


“시간이 됐어.”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엉뚱한 대답을 하는 그 남자. 당황한 표정을 짓는 여자에게 다가가 큼지막한 손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이제 돌아가야지.”


“도, 돌아가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만났는데!”


“방금 말한 것들 기억해줘. 좋은 것들만 보고 먹고 듣고 경험하고, 좋은 사람 만나고. 나중에 아주 나중에 쭈그렁 할머니가 됐을 때 나한테 와서 이야기 해줘. 언제까지나 기다릴게.”


서서히 그녀의 몸이 눈이 되기 시작했다.


“안 돼! 싫어! 이제 헤어지지 않을 거야!”


그녀의 외침에 그 남자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영원히 눈을 감는 날, 내가 데리러 갈게. 그동안 행복해야해.”


-사르르륵


눈이 그쳤다. 남자는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다시 담배를 빼물었다.


“행복하게 살아.”





-삑, 삑, 삑….


“맥박도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큰 고비는 넘긴 것 같고, 이제 환자 본인의 의지가 얼마나 세냐에 따라 의식을 차리는 날이 결정 될 것 같습니다.”


“아이고 의사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차분한 남자 목소리와, 울먹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여자의 귓가에 맴돌았다. 천천히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하얀 천장이 보였다. 왈칵, 눈물을 쏟아내는 그녀.


“가, 가연아. 정신이 드니?”


주름살이 가득한, 회백발의 파마를 한 여자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었다.


“응….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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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쓰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부담 백배

미숙한 솜씨지만 조심스레 과거응시 해봅니다.


생각해놓은건 꽤 긴데 2장으로 압축하려니 너무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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