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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가 진보포털에 남긴 의외의 족적
게시물ID : sisa_5193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거긴앙돼형아
추천 : 1
조회수 : 166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5/30 02:56:01
서울 출신으로 1993년 2월 경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재수 후에 1994년 3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로 진학하였다. 한때 그는 경문고등학교의 전교조 윤리 교사 허아무개를 비판하는 칼럼을 기고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논객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인터넷에서 사회문제에 관한 글을 쓰다가 후에 1999년 대자보라는 인터넷신문의 창간에 참여하게 된다.[3] 대학 재학 중 군 복무를 마쳤으며, 2000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대학 재학 중 PC 통신에서 논객으로 활동하다 진보 인터넷 언론대자보, 친노무현 성향의 서프라이즈를 거쳐 우파 성향 빅뉴스등의 인터넷 언론매체 창간에 참여하였다. 1999년부터 2003년 9월까지 인터넷신문 대자보의 창간에 참여하여 필진으로 활동하고, 1999년에는 대자보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 또한 안티조선에도 잠시 참여하였다. 이후 조선일보 객원논설위원을 시작으로,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 한겨레신문 객원논설위원으로 수차례 기고를 했었다.
언론 활동 초반
언론, 논객 활동 초기

변희재는 1999년 1월 23일 인터넷 언론지 《대자보》 창간 참여, 강준만이 주도하는 정치평론지인 《인물과 사상》 수차례 기고 등 한 때 진보성향 평론가로 활동하였다. 이후 민경진과 함께 인터넷신문 《대자보》의 대표 논객으로 활동하였다.[4] 2000년에는 16개 인기 인터넷 사이트의 대표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해 11월 저서 '아이러브 인터넷'을 출간하였다.[5] 또한 강준만 등과 공저 '쾌락의 독재'를 집필하였다.[6] 2000년대부터는 인터넷 논객으로 활동, 노무현을 지지하는 평론가들의 인터넷 모임인 《서프라이즈》 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기간 중 그는 서프라이즈의 논객이자 친노무현 성향의 인터넷 논객으로 활약하였다. 2002년 10월 14일부터는 공희준 등과 함께 친노무현 성향의 포털사이트 서프라이즈의 고정필진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7]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인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하고, 김민석 의원의 탈당 등 노 후보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10월 17일 변희재, 장신기, 공희준 등 9명의 논객들이 의기투합해 노 후보에 대한 지원사격을 퍼부으며 노 후보 지지자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8] 이후 그는 서프라이즈에서 '취미 정치[4]'라는 코너를 맡기도 했다. 2003년 1월에는 서프라이즈 사이트의 운영을 맡아보기도 했다.[8]

2003년에는 조선일보의 안티 사이트인 안티조선의 필진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9]
논객, 사회 활동

2003년 서프라이즈의 운영자와 인터넷 논객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사회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2003년 2월 12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최민희 사무총장이 주최한 'KBS 신임사장 개혁과제 토론회'에 패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10] 2월 22일에는 오마이뉴스와 경인방송 공동 주최 국민대통령 시대는 오는가에 패널로 참여하였다.[11] 이후 2003년 KBS 방송국 시청자위원이 되었으며 청년창업가포럼 대표 등을 지내기도 했다.

2003년 3월에는 참여 정부의 교육부총리 인선이 늦어지자 그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전성은 교장 추천 서명운동을 주도했다.[12] 그러나 노무현은 윤덕홍을 낙점한다. 2003년 2월 21일부터 2004년 4월까지는 라디오 21에 참여하였다.[13] 이때 그는 홍석천, 노정렬 등과 함께 진행자의 한 사람으로 출연했다.[14] 3월에는 서프라이즈 대표로 위촉되었다.[15] 2003년 3월에는 신임 문화부 장관인 이창동의 언론 개혁론을 지지하였다.[15] 3월 23일 KBS 100인 토론에서 이창동 장관의 홍보 업무 운영 방안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15] 이때 그는 이창동 장관의 개혁안을 지지하며 다른 패널들과 논쟁하였다. 5월 22일 한겨레 신문에 '지면 특화전략 강화해야'라는 칼럼을 기고한다.[16] 이후 2004년 4월 17일까지 한겨레 신문의 논설위원의 한 사람이자 객원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2003년 5월 15일에는 같은 서프라이즈 논객 출신 장신기와 함께 시대소리뉴스(www.sidaesori.com)의 창간에 참여하였다.[17] 5월 19일에는 서프라이즈 대표직에서 물러났으며 서프라이즈는 서영석을 새 대표로 추대했다.[17] 시대소리 뉴스 창간 배경에 대해 변씨는 “정치개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서프라이즈와 뜻이 같지만, 전문 필자의 확보와 독자 참여의 강화 등을 통해 차별화를 꾀할 것”이라며 “이미 전문필진 20여명이 참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17] 시대소리뉴스의 논설위원이자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는 한편 서프라이즈에는 정치 담당 고정 필진으로 계속 참여했다. 5월 22일 서울에서 라디오 21 주최 '네티즌 정치참여 한마당: 신당 이렇게 가자!'에 패널로 참여하였다.[18]

8월 28일 제14기 KBS 방송 시청자 위원에 위촉되었다.[19] 그밖에 스포츠서울 등의 객원논설로도 투고하였다.
인터넷 실명제 반대론

2003년부터 인터넷 실명제 여론이 등장하자 그는 인터넷 실명제를 반대해 왔다. 8월 21일 오후 2시부터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선거법 개정과 인터넷 언론> 세미나에 참석한 그는 인터넷 실명제 반대편에 섰더, 그는 "지난 대선때 비방·명예훼손이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고, 명예훼손이 이루어질 경우 현재도 형법상 처벌이 가능하고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20] 당시 이강래 민주당 국회의원과 김학원 자민련 국회의원,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등은 실명제도입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의견을 펼쳤다.[21]

그는 원희룡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재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등과 함께 “인터넷에서 활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것은 바로 ‘익명성’ 덕분으로 비방이나 흑색선전은 현행법으로도 IP 추적 등을 통해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하다”며 강제적인 실명제를 반대했다.[21] 변희재 운영위원은 실제 사이트 운영현실을 예로 들며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할 수 없는 규정이 유지되는 한 주장과 칼럼을 중심으로 하는 인터넷사이트들은 언론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선관위의 선거법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21]
평론 활동

변희재는 2004년 반노무현 성향으로 돌아섰고, 서프라이즈에서 탈퇴하였다. 한편 브레이크뉴스의 기획국장으로 임명되었다.[22] 2004년 4월 17일 이진우 브레이크뉴스 공동대표와 인터넷 토론사이트 신데렐라를 개설하였다.[22] 변희재 대표는 같은 날 올린 새 매체 소개 글에서 “지금의 정치판과 언론판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객관성 있는 보도로는 이 현상을 해석하고 대안을 담아낼 수 없다”며 매체의 지향점을 시사했다.[22] 4월 17일 브레이크뉴스 기획국장직을 사직하고, 브레이크뉴스에 기획위원으로 남는다. [22] 신데렐라 뉴스에서 그는 이름쟁이와 함께 추미애의원 추대 활동을 하다 인터넷 언론인 브레이크뉴스에 기자로 활동하며 반노무현 논조의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는 브레이크뉴스 기자 활동 및 논설위원 활동과 함께 시민단체인 포털사이트 피해자 모임에 참여하여 대표로 선임되기도 했다. 2005년 12월에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정보보호법 관련 법률 당시 일부 포털사이트가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정보는 임의로 삭제, 조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포털사이트 피해자 모임의 대표였던 변희재는 "포털이 자사에 불리한 것만으로 선별적으로 삭제하는 등 네티즌의 표현의 자유를 일부 침해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23] 2005년부터 2006년에는 시대소리뉴스의 필진, 정치토론장 다요기의 필진 등으로도 참여하였다.

그는 기자 생활 외에 인터넷 활동을 즐겨 하였다. 2008년의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그는“보통 인터넷을 하며 지냅니다. 생활이 특별할 게 없어요. 우리 세대는 어딜 다니지 않잖아요. 다만 여러 사이트를 방문할 뿐이지.”라고 하였다.[1] 신동아의 기자에 의하면“그렇다면 하루에 인터넷을 얼마나 사용하느냐”고 묻고선 곧 후회했다 한다. 그는 밥 없이는 살아도 인터넷 없이는 못 사는 세대 사람이 사용 시간을 염두에 둘 리 없다. 인터넷 웹진을 운영하며 관심 분야에 대한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변씨는 역시 취재도 글도 인터넷을 통해 해결한다고 했다.[1]


http://ko.m.wikipedia.org/wiki/%EB%B3%80%ED%9D%AC%EC%9E%AC

의외로 굵직한 진보매체 창간에 다 참여함

그리고 인터넷 중독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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