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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 오일러의 공식
게시물ID : lovestory_520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환떼는남자
추천 : 1
조회수 : 729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2/22 18:19:57

 

루트는 오일러 공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참 아름답다. 시(詩)적이다.

"\pi=3.141592653…

i=√-1

e=2.7182818284…

\pi는 어디까지나 한없이 계속되는 무리수입니다.
무한한 우주로부터 \pi가 e의 품으로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부끄럼쟁이 i와 악수를 합니다.
그들은 몸을 가까이 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e도 i도 \pi도 결코 연관성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간이 단 한가지 더하기를 하면 세상은 바뀝니다.
모순되는 것들이 통일이 되어 제로(0)가 됩니다.
요컨대, '무(無)'로 끌어안게 됩니다."

 

 

 

 

 

 

 

 

 

 

 

 

다음 오일러 등식은 모든 실수 x에 대하여 항상 성립한다. 수학자 오일러의 이름을 붙인 등식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삼각함수와 지수함수를 단단히 연결해주고 있다.



이 등식의 x에 \pi를 대입하면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수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 이름은 오일러 공식(Euler's identity)이다. 이것은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개의 상수 e, i, \pi, 1, 0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식이기도 하다. 

"어이 거기 괜히 교과서 뒤적거리지마. 이건 대학수학 복소해석학에서 나와."


더욱이 이 다섯 개의 상수는 고전 수학을 대표하는 네 가지 주요한 분야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즉, 덧셈에 대한 항등원 0과 곱셈에 대한 항등원 1은 산술을, 허수단위 i는 대수학을, 원주율 \pi는 기하학을, 자연상수 e는 해석학을 나타낸다. 덧붙여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연산인 덧셈, 곱셈, 지수셈도 엿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공식에서 갖가지 신비로운 의미를 찾는 것이 결코 놀랍지 않다.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일러 공식은 '수학자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식'으로 선정된바 있는데, 오가와 요코의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博士の愛した数式)]의 주인공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기도 하다. 오늘 애기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다. 뭐 별거 없는 영화라고 해도 딱히 할 말이 없다. 남녀간의 뜨거운 사랑도 없다. 처절한 애증 관계도 살인과 복수가 얽힌 현란한 액션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수학교사가 된 한 남자가 자신이 왜 '루트'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왜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옛 이야기를 첫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내용이 전부다.

 

수학이 주는 이성적 냉철함과 사랑이 주는 감성적 따뜻함이 사람을 통해 연결되는 잔잔한 영화.

 

 

기억은 80분밖에 지속되지 않지만,

최근 수년간 9명이나 되는 가정부를 갈아치운 박사에게 10번째 가정부로 싱글맘인 쿄코가 찾아온다. 첫날 쿄코가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박사는 질문을 던진다.

 

"신발 사이즈는 얼마죠?"

"24입니다."

"참으로 고결한 숫자군! 4의 계승이야."

"계승이란게 뭐죠?"

"1부터 4까지의 자연수를 전부 곱하면 24가 되지."

"전화번호는 몇 번이죠?"

"576-1455"

"5761455라구? 굉장하군. 1부터 1억 사이에 존재하는 소수의 개수와 같다니..."

 

박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숫자를 통해 풀이 하는 수학자였던 것. 이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다. 사고로 인해 80분밖에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는 박사는 매일 아침이 첫 대면이고, 언제나 숫자로 된 인사를 반복해서 나눈다. 어느 날 박사는 쿄코에게 집에서 기다리는 10살 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걱정하던 박사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들도 집에 들르도록 하고, 루트(√)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이 두 남자는 야구라는 공통 분모를 발견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지만 루트의 야구경기를 보러 갔던 박사가 고열로 쓰러지자 세 사람의 관계는 문제가 되기 시작하는데….

 

박사 : 수학을 가르치던 교수였다. 1975년 교통사고로 인해 기억이 80분을 넘지 못한다.  
쿄코 : 미혼모, 무학(無學)에 외톨이였던 그녀는 가정부로서 일에 열심이다.

루트 : 가정부의 아들. 박사의 가르침을 받아 훗날 수학교사가 된다.

 

수로 세상을 보고 수를 마음에 품은 박사는 수로 가득한 자신의 세계에 그녀를 초대한다. 그녀는 매일매일 그의 칠판앞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수의 따뜻한 기운을 느낀다. 이 영화에서는 어렵거나 전문적인 수식은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수학에 대한 무작정의 두려움에 떨 필요는 없다. 그저 중학생 수준의 연립방정식이라던가 소수나 약수에 대한 관계가 거의 전부이다. 여기에 수준높은 네이피어수 e가 잠깐 덧붙여질 뿐이다. 게다가 수학적 지식이 모자랄 수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루트가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준다. 이러한 장치와 배려 덕분에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의 수학은 정말 아름답게 보인다.

 

 

 

계산기를 두들기면 의미없는 무리수만 만들어 내는 기호, 루트

이 영화에서 핵심 인물은 '루트'다. 계산기를 두들기면 의미없는 수만 잔뜩 뱉어놓는 기호. 그렇지만 숫자를 둘러싸 보호해주고 제곱근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는 기호. 시험을 치를 때 제곱근이 제발 정수로 딱 떨어지기를 바랬던 그 기호가 수학교사의 별명으로 등장한다. 그는 수업시간에 자신과 어머니인 쿄코 그리고 친절하지만 기묘한 박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계승(!), 우애수, 허수, 완전수, 소수 등을 설명한다.

 

 

루트는 오일러 공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참 아름답다. 시(詩)적이다.

"\pi=3.141592653…

i=√-1

e=2.7182818284…

\pi는 어디까지나 한없이 계속되는 무리수입니다.
무한한 우주로부터 \pi가 e의 품으로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부끄럼쟁이 i와 악수를 합니다.
그들은 몸을 가까이 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e도 i도 \pi도 결코 연관성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간이 단 한가지 더하기를 하면 세상은 바뀝니다.
모순되는 것들이 통일이 되어 제로(0)가 됩니다.
요컨대, '무(無)'로 끌어안게 됩니다."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수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수식. 이것이 바로 친구라곤 數 밖에 없었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정체이다. 무질서의 조합으로부터 가장 간단한 수가 나오기 때문에 우주에서 가장 완벽한 수라 생각하며 진심으로 이 공식을 사랑한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박사와 쿄코, 루트가 만나 서로의 마음을 연결할 때, 영원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그건 절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는 숫자들과 무미건조한 텍스트만 난무하는 수학교과서에서 아무런 감흥도 얻지 못한 나에게 이 영화는 신선한 충격이다. 입시교육이라는 현실속에 작금의 수학은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채 허덕이고 시름시름 앓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사물과 현상에서 소박한 수학적 진리를 얻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풀어나간 이 영화에서의 모습이 우리에게 곧 폭풍처럼 밀어닥칠 것이라 기대한다. 시험이 끝났다면 잠시 손을 내려놓고 이 영화를 마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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