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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코베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다 ?
게시물ID : panic_465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inpanic
추천 : 22
조회수 : 1639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4/28 12:49:38

그러고보니, 커트 코베인이 저세상으로 떠난지도 이제 곧 19년이 된다.

 

 

 

▲ 커트 코베인 (Kurt Cobain). 전설이라 불리는 얼터너티브 락의 창시자 너바나 (Nirvana)의 리더.

 

그런데 말이다.

 

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밴드의 리더, 커트 코베인의 죽음이 의외로 소홀하게 다뤄졌다는 거 아는가?

 

나는 본 사건의 수사반이 19년 전,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의혹들이 커트의 죽음을 둘러싸고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19년이라는 세월동안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 했다는 점에서 그 배후에 대한 또다른 의혹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다 그런 점들로 미루어본 커트 코베인 사건의 미스테리어스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과 비견될만하다는 것이 본 수사반의 결론이 되겠다.

 

도대체 19년 전 그때, 시애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숨죽이고 따라오시라.

 

-

 

1994년 4월 8일 오전 8시 40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무인 경비 용역 시스템 회사 '베카 일렉트릭'의 직원이었던 게리 스미스는 경보 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집집을 돌아다니던 중,

커트 코베인의 집 앞 유리문을 통해 그가 얼굴부터 피를 흘린 채 죽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당시 총구는 턱을 겨누고 있었고, 총신은 그의 가슴에 얹혀져 있었다.

 

사체가 커트 코베인이었음을 짐작한 게리 스미스는 직장 상사에게 그 사실을 즉시 보고했고, 사실을 전달 받은 상사는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전했다.

전화를 받았던 DJ 마틴 레이머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커트의 죽음은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15분이었다.

잠겨 있는 유리문의 유리를 깨고 현장에 진입한 그들은 가장 먼저 붉은 펜으로 쓰여진 글을 발견했으며, 그것을 곧바로 유서로 단정했다.

 

온실에 누워 있던 커트의 머리 왼쪽에는 상당량의 혈액이 말라 붙어 있었고,

레밍턴 20구경 엽총이 그의 다리 사이부터 가슴에까지 걸쳐져 있었으며 왼손으로 총신을 잡고 있었다.

빈 탄약 박스 하나, 엽총 탄약 22발이 든 가방1과 현금 120달러, 마약 투여 기구들, 가방, 지갑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으며, 경찰은 지갑 속 운전면허증을 통해 사체가 커트 코베인임을 재 확인했다.

 

오전 11시 5분, 과학 수사 검시관 세 명이 도착했다.

그중 니콜라스 하트션 박사가 현장 사진을 촬영한 후, 커트 코베인이 스스로 총을 쏴서 자살했다고 곧바로 결론 내렸다.

또한, 수사 책임자였던 도널드 카메론 경사는 온실 출입문 하나가 안쪽에서 쐐기로 고정되어 있어 현장이 밀실이었음을 밝혔다.

 

이후 부검을 통해 커트 코베인의 사망 추정 시각은 4월 5일 저녁으로 추정되었으며, 그의 혈관에서는 L당 1.52mm2의 헤로인3이 검출되었다.

 

-

 

이상의 내용이 커트 코베인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언론에 발표된 전부이며, 발표 이래 이날 이때까지 일반인들이 '진실'이라 믿고 있는 바로 그 스토리이기도 하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의 자살에 대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다.

"이제나 저제나 하더니 걔도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긴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했고, 이전에도 자살 기도를 한 적이 있었으니 대중들은 '자살'이라는 발표를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혹은 바로 그 '그럴 수도 있을 법한' 사실들에서 출발한다.

 

-

 

당시 커트 코베인은 자살을 암시하는 포즈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던 사진이 있었다.

그것은 사진작가 유린 렌케트가 당시 유럽 투어 중이었던 너바나를 데리고 프랑스 파리에서 찍은 것이다.

 

하지만 후일 유리 렌케트는 그 포즈가 커트의 의지로 취한 것이 아닌, 자신이 커트에게 부탁한 포즈라고 증언했다.

 

자살 기도로 곡해된 사건도 있었다.

 

사망 1달 전이었던 1994년 3월 2일, 커트는 아내 커트니 러브와 생후 18개월 된 딸 프랜시스와 함께 로마의 엑셀시어 호텔에 묵고 있다가 의식불명에 빠졌다.

커트니 러브는 '커트가 자살하려 했다'며 구급차를 불렀고, 응급실로 옮겨진 커트 코베인은 20시간 후에 깨어났다.

 

커트니 러브가 자살 기도라고 언론에 흘린 것과는 달리 커트는 커트니와 함께 자축 파티를 벌였을 뿐이라며 일축했고,

당시의 담당 의사 역시 신경 안정제와 술을 같이 섭취하면 이와 같이 위험해질 수는 있으나, 자살 기도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또 커트니 러브는 당시 커트의 위장에서 알약 50정이 나왔다며 사실과 다른 말을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경찰 기록에 따르면, 자살 기도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 일을 자살 기도라며 커트니 러브가 신고한 사건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커트에게, 자살하고 싶을만큼 그를 옥죄워 왔던 것은 분명 있었다.

그것은 만성 위통이었고, 밤마다 찾아오는 극심한 통증을 달래기 위해 커트는 꽤 오랫동안 헤로인을 복용했다.4

 

하지만 이후에 커트는 위통의 원인을 치료하는 수술을 받게 되면서 그의 자살 충동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며,

주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때만큼 커트가 행복해보였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고 했다.

 

사실, 타살 의혹에 대한 조사는 커트의 사체가 발견된 당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었다.

문제는 그게 공식적인 수사 기관에 의해 진행된 것이 아닌데다 그 과정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위에서 언급했던 로마 자살 기도5 사건 이후 커트는 약물 치료 시설에 수용되었는데, 곧바로 탈출하여 자신이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까지 잠적에 들어갔다.

그런 커트의 행방을 쫓기 위해 커트니 러브는 톰 그랜트라는 사립 탐정을 고용하게 된다.

 

커트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기 몇 주 전부터 커트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행방을 쫓던 톰 그랜트는, 사건 당일에 검시관들과 거의 비슷한 시간에 현장에 도착하여 사건 현장을 둘러보게 된다. 

그리고 당시 급박하게 발표되었던 수사 당국의 결과가 자신이 조사한 내용, 판단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독자적으로 커트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후의 조사에 대해서는 커트니 러브가 전혀 협조하지 않아 자비를 털어 진상 조사에 임했다고 한다.

 

오랜 기간에 걸친 조사를 통해, 자살이라고 단정 짓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린 그는 당국에 끊임 없이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묵살당했으며, 커트니 러브로부터 방해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6

 

톰 그랜트, 그가 제시하는 타살설의 주된 근거는 다음과 같다.

 

-

 

1. 엽총에서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

 

커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엽총의 방아쇠에선 커트 본인의 지문은 물론, 그 누구의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 탄약 박스 및 집 안 어디에서도 지문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른 물건의 지문이야 커트 본인이 지우는 게 가능하지만, 엽총 방아쇠를 당기고 난 후 방아쇠의 지문을 즉사한 사람이 어떻게 지운단 말인가?

애초에 곧 자살할 사람이 지문을 지우는 행동을 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이는 타살설의 가장 완벽한 증거로 꼽을 수 있으며, 당시 수사 기관의 명백하고도 중요한 실수로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다.

 

 

2. 엽총에는 3발이 모두 장전되어 있었다.

 

곧 자살할 이가 탄약을 풀로 장전하는 건 부자연스럽지 않을까?

 

 

3. 치사량의 3배의 헤로인을 투약한 사람이 방아쇠를 당긴다고?

 

부검 결과 커트의 혈관에서는 치사량의 3배에 해당하는 양의 헤로인이 검출되었다.

하지만 그는 헤로인 과용이 아닌, 두부 총상으로 죽은 것으로 부검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문제는 치사량의 3배의 헤로인을 투약한 사람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냐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 시애틀 과학 수사 연구소는 "커트 코베인은 마약 중독자였으므로 내성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하다." 라고 이야기했으나,

헤로인은 내성이 생기지 않는 약물이다. 이는 마약 전문가들도 모두 일치된 견해를 보인 부분이며, 법의학자, 화학자들도 역시 그정도의 헤로인이라면 마약 중독자라도 수초 안에 의식을 잃게 되어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사 보고서에 커트는 헤로인을 투약하고 마약 투여 기구를 가지런히 정리한 다음 스스로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나와 있다.

 

치사량을 훨씬 오버하는 마약을 투약하고 스스로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다는 결론보다,

누군가에게 헤로인을 투약당하여 사살당한 후, 현장이 자살로 위장되었다고 보는 게 설득력 있지 않을까?

 

 

4. 밀실이 아니었다.

 

이것 역시 수사진들이 범한 중대한 실수다.

 

커트가 죽어 있었던 온실에는 발표와 달리 두 개의 문이 있었다.

안쪽에서 쐐기가 박혀 있었다고 발표된 문은 어차피 발코니로 통하는 문이니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 반대쪽에 잠겨 있는 문 하나가 더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문은 출구로 통한다.

 

문이 잠겨 있었다 한들, 걸쇠를 채운 채로 문을 닫기만 하면 범인은 문을 잠그면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토록 기본적인 오류는 수사진들은 왜 간과하고 넘어갔을까?

 

 

5. 유서는 조작되었다?

 

당시엔 커트의 사체 옆에 놓여 있었던 글의 내용 때문에, '자살'이라는 결론은 그 어떤 의혹을 감안하더라도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글에서 유서라 치부해도 온당할 만한 대목은 마지막 네 줄 뿐이다.

 

먼저 글의 전체 내용을 보자.

 

-

「그것에 접해 있던 이래 몇 년에 걸쳐 펑크록 101코스로부터 파생된 모든 것에 대해 그리고 만드는 것에 대해 흥분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 나는 뭘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무대 뒤에 있고 쇼를 알리는 표시로 객석의 불이 꺼지고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성이 들리기 시작해도 아무런 감동이 없다. 프레디 머큐리처럼 그것을 사랑하고 관객들이 바치는 애정과 숭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나는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가 정말 존경스럽다.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여러분들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 한 사람 속이고 싶지 않다.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공정하지 못하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범죄는 거짓을 통해 마치 내가 100퍼센트 즐기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모두에게 돈을 뜯어내는 일이다.
나는 때때로 무대를 내려오기 전에 시간 기록기를 한방 먹이고 싶은 감상이 들곤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있는 노력을 다했다. 정말 노력하고 있다. 믿어주기 바란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나는 내 자신이 그리고 우리가 많은 사람에게 영향받고 즐거움을 제공 받았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아마도 잃어버린 순간에 그것의 고마움을 깨닫는 소위 나르시스트 타입인가 보다. 너무 신경이 예민하다. 어린시절에 가지고 있던 정열을 다시 찾기에는 조금은 둔감해 질 필요가 있다.

가장 최근에 치뤘던 3번의 투어 동안에 나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너바나의 팬에 이르기까지 주변 사람 모두를 예전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 안에 있는 부담과 죄책감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선의 부분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단지 단순히 지나치게 사랑했으므로 이렇게 처량한 신세가 되버렸다. 한심하고 보잘것 없고 연약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물고기자리(별자리)의 되게 재수없는 녀석이 된거다. 왜 아무 생각 없이 즐기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 나도 더이상 모르겠다.

나에게는 야심과 배려가 넘치는 여신같은 아내와 너무나도 어린시절의 나를 닮은 딸이있다.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프랜시스는 만나는 사람마다 누구에게나 키스를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선하고 그녀에게 위험을 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어떻게 손쓸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나는 프랜시스가 나처럼 한심하고 자기 파괴적인, 죽음으로 달려가는 일만을 생각하는 인간이 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즐거웠다. 매우 좋은 인생이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크게 감사하고 있다.
일곱 살 이후, 인간이라고 하는 것 전부에 대해 증오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너무도 쉽게 타협하고 서로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공감! 분명 그것은 단지 내가 너무나도 모두를 사랑하고 미안한 기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몇 년간 편지를 보내주고 염려해 주었던 모든 이들에게 타서 진무른, 토할것 같은뱃속 바닥에서부터 감사를 표하고 싶다. 나는 손 쓸 방법이 없을 정도로 정상을 벗어난 변덕쟁이 갓난 아기다. 이미 나에게는 정열이 없다. 그리고 기억해 주기 바란다. 점점 소멸되는 것보다 순식간에 타오르는 것이 낫다는 것을...

Peace, Love, Empathy. Kurt Cobain
프랜시스 그리고 커트니, 나의 모든 것을 그대들에게 바친다. 계속 전진하길 커트니, 프랜시스에게 건배. 내가 없다면 더욱 온화하고 행복해질 그녀의 인생을 위해. I LOVE YOU,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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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마지막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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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그리고 커트니, 나의 모든 것을 그대들에게 바친다. 계속 전진하길 커트니, 프랜시스에게 건배. 내가 없다면 더욱 온화하고 행복해질 그녀의 인생을 위해. I LOVE YOU,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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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커트의 필체는 다른 사람의 것인 양 현격히 다른 모양을 보였다.

 

 

▲ 한눈에 보기에도 필체의 차이가 드러난다.

 

1997년 2월, 미국의 필체 판별 전문가 매슬 마틀리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필체 판별 전문가 레지널드 엘튼은 미국의 어느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마지막 4줄은 다른 사람이 쓴 것이라고 감정했다.

그리고 그 외 본문의 내용은 커트 코베인 본인이 쓴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

 

커트가 세상을 떠나고 4년 후 (1998년), 너바나의 드러머였던 데이브 그롤은 어느 라디오 토크쇼에서 커트가 죽기 전 너바나는 해체를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 이전부터 톰 그랜트는 글이 팬들에게 은퇴를 선언하기 위해 준비해둔 내용이라 주장해 왔으며, 실제로 필체가 다른 마지막 네 줄만 제외하면 그와 같은 내용으로 읽을 수 있다.

 

 

6. 커트의 사망 시각 이후, 누군가 커트의 신용카드를 사용했다.

 

신원불명의 누군가가, 시체가 발견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43달러 가격의 꽃을 사고 커트의 신용카드로 계산하려 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커트니 러브가 그 전에 커트의 신용카드를 정지시켰기 때문에, 누군가가 카드를 긁으려 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 그 주인공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7. "목숨이 위태롭다." - 죽기 전 커트의 호소

 

커트의 친구였던 브래드 바넷의 증언.

 

그는 커트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 날의 하루 전인 4월 4일 시애틀에서 커트를 만나, 커트가 주검으로 발견된 방까지 같이 갔었다고 한다.

그는 그날 커트가 자신에게 "위협을 느껴본 적 있어? 내 목숨이 위태롭다." 며 말했다고 한다.

 

-

 

위와 같은 의혹들을 무시하고, 현장 도착과 동시에 사건을 '자살'이라고 단정했고,

언론을 통해 이보다도 더 확실한 자살 사건은 본 적이 없다며 말한 바 있는 과학 수사 연구소의 니콜라스 하트션 박사는 커트의 아내 커트니 러브와 친분 관계를 맺고 있었던 걸로 밝혀졌다. 커트니가 커트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말이다.

 

앞서 언급한 로마 자살 기도 사건에서도 본 바와 같이 본 미스터리에 커트니 러브도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커트가 살해당했다면, 도대체 왜? 무엇 때문이겠는가? 그 의혹의 실마리는 바로 커트니 러브가 쥐고 있다.

 

-

 

그렇담 커트니 러브는 과연 누구일까.

 

밴드 'Hole'의 리더이자 영화배우, 그리고 커트 코베인의 미망인인 그녀는 사이키델릭 밴드 'Grateful Dead'의 매니저 출신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마약과 섹스로 얼룩진 청소년기를 보냈다.

 

생부였던 행크 해리슨은 자신의 딸에 대해 '허영심이 많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고 증언한 바 있으며,

그녀의 말 꾸미기, 바꾸기 행적은 숱한 잡지들의 인터뷰에서 무수히 발견된다.

 

이제, 본 미스터리와 관련하여 그녀와 연관된 의혹을 짚어보도록 하자.

 

-

 

엘든 호크라는 이름의 무명 락 보컬의 증언이다.

 

1993년 12월 말, 엘든이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헐리우드 소재의 레코드 가게에 커트니 러브가 찾아와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남편의 머리를 날려주면 5만 달러를 주겠다."

 

다음 해 3월, 레코드 가게 주인인 릭 세퍼디언은 엘든 호크를 황급히 찾는 커트니 러브의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당시 엘든 호크는 자신의 밴드 'Mentors'의 투어를 위해 레코드 가게 알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릭 세퍼디언의 증언에 따르면, 커트니 러브는 "그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며 소리를 지른 뒤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의 입증을 위해 엘든 호크와 릭 세퍼디언은 1996년 3월 6일, 커트니의 변호사조차 인정한 거짓말 탐지기의 최고 권위자, FBI의 에드워드 겔브 박사 앞에서 심문을받게 되는데,

99.91%의 신뢰도로 증언이 '허위가 아님'을 입증하게 된다.

 

살인을 청부 받았다고 해서 커트가 타살당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대신 위의 이야기는 재수사의 근거와 당위성이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듬해인 1997년 4월 19일, 엘든 호크는 시속 97km의 열차에 치어 사망한다.

 

그의 사망 순간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가 죽기 이틀 전, Mentors의 공연장에서 그는 친구인 드루 갤러거에게 "생명이 위험해. 가짜 운전면허증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커트 코베인을 죽인 사람을 알고 있어." 라 말했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커트니 러브의 주위에서 일어난 죽음, 이게 다가 아니다.

 

커트가 세상을 떠나고 2달 후인 1994년 6월 16일, 커트니 러브의 밴드 Hole의 베이시스트였던 크리슨 파프가 자신의 집 욕조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크리슨은 Hole 멤버들의 방탕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 했던 외지 처녀였으며, 특히 리더인 커트니 러브와 심각하리만치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마약에 찌든 밴드, 그리고 커트니와의 불화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크리슨은 밴드와 시애틀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다.

하지만 이사 바로 전날 그녀는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그녀의 사망 현장인 욕조 옆에는 주사기와 마약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톰 그랜트는 "타살이 확실하다. 새 출발을 위해 이삿짐까지 싸놓은 사람이 왜 자살을 하겠는가?" 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크리슨 사망 사건의 현장 수사에 곧바로 출동한 검시관은 커트 사망 사건의 검시관이기도 했던 바로 그 니콜라스 하트션 박사였다.

 

-

 

이제 화살은 커트니 러브에게 향하고 있다.

위 두 가지 의혹과 앞서 언급했던 로마 자살 기도 사건까지, 커트니의 행적에는 확실히 구린 구석이 있다.

 

만약 커트니가 커트를 살해했다면, 타살의 주동자였다면, 그 동기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마지막이자 아주 중요한 의혹을 제시한다.

 

-

 

커트와 커트니 부부의 담당 변호사였던 로즈마리 캐롤의 증언에 따르면, 커트는 죽기 직전 '곧 이혼할 생각이니 커트니를 제외한 내용의 유언장을 써달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커트니 러브 역시 캐롤에게 변호사를 구해달라고 의뢰했으며, '재산 분할에 관한 혼전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지 물어 왔다고 전했다.7

 

'혼전 계약'에 따르면, 커트니 러브는 이혼할 경우 커트의 재산에 조금도 손댈 수 없으며, 약간의 위자료만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커트가 사망한 후 커트니 러브는 수천 만 달러의 유산을 상속 받았다.

 

비록 커트가 서명하지는 않았지만 커트니를 제외한 내용의 유언장은 존재한다.

이 유언장은 경찰이 입수하였으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

 

본 수사반이 커트 코베인 미스터리를 논하는 중에 솔직하게 밝힌 느낀 점은,

"이토록 전설적인 인물의 사망 사건이, 이토록 많은 의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이토록 대충 대충 얼버무려질 수가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사 결과, 이와 같은 의문들과 의혹들은 모두 한 인물에게 귀결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커트니 러브.

 

이미 공식적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대중들에게 널리 '자살'로 결과가 낙인 찍힌 상태에서 재수사에 들어간다는 것은 해당 수사 기관으로서는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그런 까닭에 명확한 증거가 나타난다던가, 여론의 공세가 집요하지 않는 한 재수사를 해줄 이유가 없다.

 

톰 그랜트와 기타 저널리스트들, 그리고 여러 웹진에서 재수사를 주장하고 나섰지만 그들의 주장들 역시 다수의 여론이라고는 할 수 없어 힘을 잃었다.

그리고 그러한 의견들조차 생기는 족족 태클을 걸고 들어간 인물이 바로 커트니 러브인 것이다.

 

애초에 자신이 섭외했던 톰 그랜트에게는 물론이고, 누구든 타살설을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나서기만 하면 그것들을 자신의 변호사들8을 통해 회유와 협박 등의 수단을 통해 억눌렀다.

심지어, 새로운 자살설9을 주장하는 커뮤니티의 핵심 멤버로 커트니의 이름을 올리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커트니 러브 본인이 나서서 타살설이라는 진실에 가까운 용액을 희석시키려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씻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토록 자살이라는 결론에 대한 불확실한 증거들과 타살을 뒷받침하는 의혹들이 숱하게 불거져 나온 마당에, 바보가 아닌 이상 커트니 러브에게 혐의의 눈길을 보내는 건 당연할 터.

 

이제 그녀의 선택은 하나다.

커트 코베인의 연인이자 파트너이며 아내였던 자신이 나서서 제 3의 기관을 통한 재수사를 요구하는 수밖에.

 

진정 떳떳하다면 왜 그러지 못하는 것인가?

 

 

 

출처 :: http://kjh_revan.blog.me/30161048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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