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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드디어 나에게도 봄이.
게시물ID : freeboard_2951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또르륵
추천 : 10
조회수 : 282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08/04/11 10:26:48
어제 있었던 일이다. 윗 사람과 작은 트러블이 있은 후, 삐져서 피곤한 마음을 이끌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자리가 없을 땐, 서서가기 좋은 자리는 제일 뒷 5인석 좌석 바로 앞에서서 창밖을 보면서 가는 자리다. 뒷자석 5명, 바로 앞에 앉은사람 그 앞 사람 해서 7명중 1명만 일어서면 앉을 수 있으니깐.. 그 날은 제일 뒷 좌석엔 4명이 앉아 있다. 양 창문에 남자 1명씩 그 사이 반명분의 자리들을 비워두고 중간에 여자 2명.. 어렸을 때부터 세뇌 당한 남녀칠세부동석이란, 어이없는 속담을 실행하듯 반자리씩 떨어져 여자 2명이서 오붓한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어느 한쪽으로든 붙으면 5명이 앉을 수 있겠다 싶어, "죄송합니다, 좀 앉을게요." 용기를 내어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나의 지치고 삐져있는 몸은 소심함이라는 어이없는 녀석에게 맥없이 무너져, 앙탈을 부리듯 이런 상상만으로도 만족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남자 한명이 내려, 그자리에 앉게 되었다. 내가 앉자, 옆에 있던 여자 2명이 내쪽으로 붙는게 아닌가.. 아니.. 뭐지.. 나의 매력을 알아주는 이색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신 분을 드디어 만나는건가.. 어이없는 상상을 하며, 오른쪽을 보니, 건너편에 5인석 좌석이라는 것을 꼭 깨달게 해주겠다는 무서운 기세로 아주머니 한 분이 몸을 비집고 계셨다. 하.. 역시.. 그런 눈을 가진 분은 로또 걸리는 것보다 힘든 것을 깨달으며, 그런 세상의 한탄을 오늘도 어김없는 하게 되었다. 역시.. 5명이서 앉으니깐, 서로서로 일심 동체인듯이 다다닥 붙게 되니, 불행의 행운을 만나게 되었다. 이상하게, 4월 초인데도 여자분이 반팔을 입고 계셨고, 나도 반팔을 입고 있었다. 버스가 털컹거릴때마다 나의 오른어깨과 그 여자분의 왼쪽 어깨가 원치 안는 만남을 계속하는 거였다. 나는 원했지만... 분명 그분은 힘겨워보이는 듯. 예쁘장하신 분하테 이 무슨 몹쓸 짓인가. 이거 이러다 뉴스에만 보는 버스 치한범으로 몰리는거 아닌가. 저 여자분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레, 나를 만나서 이렇게 속죄를 하는 걸까. 죄송한 마음에 더 이상은 이렇게 가면 안되겠다 싶어, 맨살이 닫는 부위라도 어떻게 해야지 하는 마음에, 고민하던 중. 지갑 속 명함을 꺼내 살 닫는 부분에 꽂아 넣었다. 1장으로 안되길레 2장 3장까지. 꽂아 넣었다. 하...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미친짓을 했을까. 아마도, 그 여자분을 내가 생각으로 느끼기 전에 본능으로 정말 마음에 들었나보다.. 커다란 눈, 다소곳이 웃는 모습.. 그 여자분 친구분이 쑥떡거리는게 나에게까지 들린다. "야, 저 사람 왜저래, 너 한테 마음있나보다 명함을... 하하" 그 소리를 듣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어쩔줄 몰라 쭈삣쭈삣하고 있는데.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아니, 지금 작업 거시는거에요? 뭐에요? 이거 빨리 안빼요?" 옆에 여자분도 급 당황하셨는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나에게 말하는건지, 운전기사 아저씨 한테 말하는건지 분간이 안갈 정도의 크기로 말씀하시는데. "전지현이다~~"라는 고함을 질러도, 그렇게 일제히, 신속하게 그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시선이 지목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개 돌리는데 바람소리가 슁슁 들리는 듯 했다. 압니다.. 알아요.. 제가 못나보이는거.. 평소 같으면, "아..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말았겠지만, 이순간 만큼은 나도 욱해서. "저기.. 계속 팔이 닫길레, 죄송한 마음에 생각해서 한건데. 작업이라니......" 여기 저기서 킥킥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여자분한테 죄송할 정도로 얼굴이 뻘개 지셨네.. 나도 마찬가지지만. 보통 이런 무안을 당하면, 성질을 낼 법도한데, "죄송합니다." 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하.. 그 소리에 반했는지, 동그란 큰 눈에 반했는지, 그 마음씨에 반했는지, 아니면 오늘하루 제대로 미쳐서 그런지.. "아뇨. 제가 더 죄송합니다. 그리고 작업으로 생각하셔도 됩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끝까지 말을 못했다. 여자분이 눈이 더 커지고, 우물쭈물하시더니 명함 한장을 빼서 챙기더니.. "그럼, 이번호로, 연락하면 되는거예요?" "네?. 아.. 네.." 하하.. 하하.. 이런 나에게도 봄이 오는구나. 정말 꿈꾸던 그런 날이 오다니. 하늘은 모든 인간에게 기회라는거를 주기는 주는구나. 때마침 하늘도 나를 축복하듯, 우중충한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와 버스 창문너머로 나와 그 분을 햇살 가득 비춰줬다.. 그리곤.. 내방 창문 사이로 이틀간의 비에 짜증이라도 내듯 아침 햇살을 뿜었고, 그로 인해서 깼다.. 멍... 하.. 진짜.. 인터넷 유머로만 통하던 일이 실제로 나에게 일어나다니. 내가, 아 ㅅㅂ 꿈 이런걸 사용하게 될 줄이야... 28살 어느 아침 상콤하면서 선명한 처음 보는 그 분의 얼굴에 가볍게 미소 지으며, 출근 길에 오른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며, 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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