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단편, 재업]NSR-7
게시물ID : panic_466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데미우르고스
추천 : 5
조회수 : 97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4/29 15:20:24
 

 

 


  

K는 멍한 표정으로 무려 10분 동안이나 말없이 그것을 쳐다보았다. 로봇은 미동도 없이 사당의 중앙에 고목처럼 서 있었다. 눈빛은 어딘가 초라해보였지만,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가 충분히 느껴졌다. 마담에게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선, 굳이 실리콘 피부 밑에 침식해 있을 메탈릭한 부품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해 낼 필요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사실 매뉴얼을 들여다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쯤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막막했을는지도 모른다. 

  

“마담, 이 NSR-7을 어디서 구입하셨다고 하셨죠?”

“중고센터였어요. 이 가게를 따라 쭉 가다 오른쪽 모퉁이를 돌면 있는.”

“아, 그곳.”

  

K가 다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이며 문제 해결엔 별로 도움 되지 않을 법한 질문들을 연방 쏟아냈다. 보증된 제품을 구입하셨는지, 혹시 무단으로 기계를 해체하신 적이 있었는지, 아니면 특정한 이유로 인해 NSR-7이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지.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마담이 큰 눈을 끔뻑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K는 그보다 더 큰 눈을 끔뻑이며, 그럼 젠장,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소만, 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던 것을 간신히 참아내야 했다. 

  

“NSR-7, 모든 프로세싱을 중지하라.”

“내가 왜!!……”

  

하마터면 로봇을 단단히 동여매놓았던 밧줄이 속수무책으로 끊어질 뻔했다. K의 명령에 격렬한 반응을 보이던 NSR-7은 곧 K가 마스터 액세싱 키를 가져가대자 모든 동작을 멈췄다. 그 모습은 흡사 죽음을 맞은 인간의 모습과도 같았다. 아니, 말에 약간 어폐가 있다. 애당초 로봇에겐 생명 따위란 없는 걸. 대체 나까지 왜 이러는 건지……, 라고 생각하며 K는 카페인 한 사발을 다시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넘겼다. 그리곤 익숙한 손 눌림으로 NSR-7의 머리통을 감싸고 있던 피부 가죽을 벗겨냈다. 정사각형 모양의 조그마한 뚜껑이 보인다. K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초코바 모양의 메인 프로세서 칩들이 보였다. 그것들은 일일이 K의 사열을 받아야만 했다. 

  

‘도대체 뭐가 문젠거야.’

  

지금 이 무당의 집 안에서, 기껏해야 잔심부름일이나 보던 가정용 로봇에게 별안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혼란스러울수록 더 천천히 문제 해결을 위한 단서들을 더듬어 나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이 녀석과 비슷한 케이스의 문제가 같은 기종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을 수리 사례집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사측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었지……. 어떠한 정보의 편린들도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보나마나 소각장으로 직행시켰나보군. 문제를 일으킨 로봇들에 대한 사측의 대처는 그들의 피조물 로봇만큼이나 단순했다. 그 로봇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거나, 혹은 부수어버리거나. 

  

“마담, 어디까지나 정밀검사를 마쳐봐야 알겠지만…….”

“네.”

  

풀이 죽은 마담의 목소리는 처마 밑에 달린 고드름만큼이나 처량하다. K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로봇에 약간의 문제가 있는 것 같고, 만약 수리가 불가능하다면 새 것으로 무상교환을 해드릴 수도 있으니 너무 심려치 마시라는 말을 전하려 했지만, 그 말이 채 입에서 걸어나기도 전에 마담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럴 순 없어요. 이 아이는 제게 가족이나 마찬가진걸요.”

“예, 충분히 이해합니다. 어떤 분들은 로봇을 마치 반려동물처럼 아껴주시기도 하지요. 하지만 아주 냉정히 이야기 하면, 이건 단순한 기계일 뿐……”

“그만해요! 더 이상 이 아이를 모욕하지 말아요.”

  

언제 그랬냐는 듯, 마담은 닭똥같은 울음을 거두고 매섭게 K를 쏘아보고 있었다. 눈에선 마치 광선 같은 게 나오는 것 같아, K의 머릿속에선 혹시 이 여자는 NSR 시리즈의 신기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지만, 이내 잡상들을 정리하고 다시 마담을 타이르기 시작했다.

  

“그럼 우선, 이 로봇을 저희 본사로 데려다 정밀검사를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기간은 3일에서 4일정도 까지 소요될 수……”

“만약 못 고친다면, ‘얼이’는 그대로 부숴 버리는 건가요?”

  

‘얼이’? ‘얼이’라고? 어이구야. 얼이 빠진 작명 센스도 기가 차지만, 무엇보다도 입을 열 때마다 번번이 말을 끊어내는 마담의 태도가 계속해서 K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K는 생각한다. 그래, 이 여자야. 저 마법의 구슬은 대체 뒀다 뭐 하는 거야? 미래를 보여준다며. 그렇게 척척 남의 미래는 잘 보면서, 이깟 기계의 미래 따위 하나 제대로 못 알아봐? 고치면 좋은 거고, 아니면 부서지겠지. 저 구슬로 보면 잘 알 거 아냐, 이 녀석의 미래. 도대체 이 녀석이 여자한테 뭘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거야? 가끔가다, 너무 지나치게 로봇에게 애정을 쏟아 붓는 철이 덜든 ‘인간’들이 있었다. K는 그런 사람들에게 늘 이런 말을 건네주고 싶었다. 어이, 이건 단순한 고철덩어리일 뿐이라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 감정, 인격 따윈 존재하지도 않고, 아니 존재할 수도 없는 단순한 쇳덩어리일 뿐이라고. 당장 밖에만 나가도 길가에 굴러다니는 쇳덩어리 자동차들이나 쓰레기 청소 로봇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거라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절대온도만큼이나 차갑게 식어버린 이성을 이용해 K는 가까스로 평상적인 답변을 내뱉었다. K 스스로도 그런 자신이 기특했는지 머쓱한 미소가 지어지는 걸 느꼈다. 그러나 마담의 눈에선 여전히 날카로운 광선이 비죽이 쏘아져 나오고 있었다. 박애와 인내를 제1의 덕목으로 삼는 ‘A/S교’의 열혈신도였던 K도 그때만큼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마담, 로봇이 빙의가 됐다는 건, 솔직히 얼토당토않은 말입니다. 로봇에 귀신이 씌다뇨. 정말 이렇게 까진 말씀 안 드리려 했는데, 제가 성격이 좋은 편이라 이런 말을 다 받아드렸지, 어디가선 미친 사람 소리 들을 얘깁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요.”


 

“아니다.”

  

순간, 등 뒤편에서 낮고 둔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필시 NSR-7의 목소리였다. 특유의 기계음이 섞여있었다. 동시에 K의 분노와 마담의 광선검은 무력화되었다. 

  

“어머, 얼아……!”

“나는 로봇이 아니다. 나는 200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던 사내다. 당신이 아무리 날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난 두 눈을 뜨고 이렇게 똑똑히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저 녀석이……….”

  

K가 재빠른 몸짓으로 NSR-7의 등 뒤로 가 배터리를 뽑아내려고 하자, 별안간 사당 안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엄청난 진동이 시작됐다. 쿵쿵쿵쿵. 이 야밤에, 혹시 지진이라도 난 거야? 하지만 바깥에 세워 놓은 자전거는 아무런 미동도 없다. 그럼 도대체 뭐지? 이건 혹시……? K가 미처 상황판단을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사당위의 모든 기물들이 허공위로 치솟아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만취한 운전자의 자동차처럼 이곳저곳에 부딪쳤다. K는 사당 바깥의 큰 기둥을 보곤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순간 가검인지 진검인지 알 수 없는 장검 한 자루가 K의 울대 앞까지 왔다간 휑하니 사라졌다. 꼴깍, 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그때만큼은 사당을 울리는 요란한 진동소리만치나 크게 들렸다. 그래. 이게 바로 ‘폴터가이스트’라는 건가? 언젠가 ‘위키백과’ 에서 이 현상에 대해 읽어본 적이 있어, 백과에 따르면 이 현상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각각의 상황마다 대처방법이 다르기 때문……은 커녕 마담마저 팽개쳐두고 어느 새 가림막이 될 수 있는 온갖 것들을 모아다가 은폐, 엄폐, 차폐까지 해 놓은 육군 병장 출신의 K는 그의 입에서 질겁한 목소리로 ‘그……그만!’라는 말이 튀어나올 때까지 부서질 수 있는 모든 것이 모조리 파괴되는 공포의 광경을 무기력하게 목도해야만 했다. 

  

“언제까지 해야 믿을 수 있겠나. 나의 존재를.”

  

로봇의 한 바탕 질펀한 실력행사가 끝나고 난 뒤, 아수라장이 된 사당 안에 물든 고요함을 순식간에 찢어버리는 엄혹한 목소리가 K의 귓가에 꽂혔다. K는 여전히 겁에 질린 채 기둥 너머로 빠끔히 고개를 내밀어 말했다.

  

“그래, 알겠어. 알겠다고. 믿어줄게. 그러니까 제발 그만해. 사람을 다치게 해선 안 되잖아?”

  

하지만 로봇은 답이 없었다. 제 1원칙(로봇은 인간에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걸까? 물론 그것이 헛된 생각임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건 로봇이나 지켜야 할 명령이다.”

  

젠장. 정말 로봇에 망령이 씌기라도 했단 말야? K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뱉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매뉴얼을 떠올려 보자, 매뉴얼……. 로봇이 빙의가 되었을 때……. 아, 참. 그 책에 그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은 없잖아. 그래, 우선 평화적으로 대화를 해 보자. 녀석에겐 혹시 인격이 생겨버린 걸지도 몰라. K는 자기도 모르게 탁, 하고 무릎을 칠 뻔 했다. 수리 사례집에서도 심심찮게 로봇이 자신이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 증례를 본 적이 있어.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리즈너블하게, 녀석이 로봇임을 당연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보자. 

  

“로봇!”

  

약간의 메아리 뒤에, K의 목소리가 외롭게 사당안에서 퍼져나갔다. 

  

“말하라. 더 이상 생쥐마냥 숨어있지 말고, 내 앞으로 나와서 정정당당하게 내 얼굴을 보며 이야기 하라.” 

“하지만 네가 날 해치지 않을꺼라고 어떻게 믿지?”

“어떻게?”

“넌 인간이라며.”

“인간?”


 

NSR-7은 잠시 말이 없었다. K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죽었든 살았든, 어찌됐던 인간‘이었던’적은 있던 거 아냐?”


 

NSR-7은 다시 말이 없었다. K는 기선제압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더 믿을 수 없는 거라고. 원래 인간이란 믿을 게 못 되잖아.”

  

K는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좋은 아포리즘이었다는 생각이 미치자,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 그 낮고 웅장한 소리가 다시금 K의 귓가에 꽂혀 덜덜덜 오금이 떨려오는 것을 느낄 때까지만.

  

“내 이름과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다. 나와 ‘대화’를 원한다면, 그리고 정말 ‘대화’만 한다면, 어떠한 짓도 네게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지.”

“좋아.”

  

K는 모든 코인을 배팅한 최후의 겜블러라도 된 마냥 위풍당당하게 로봇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로봇은 나무의자에 앉아, 미동도 없이 K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담이 로봇의 뒤꽁무니에 움츠린 채 가증스러운 눈빛으로 K를 쏘아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든든한 ‘빽’을 지닌 일진 하바리의 표정과도 같았다. K는 주변에 쓰러져 있던 낡은 의자를 끌고 와 로봇의 앞에 앉았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익숙하게 꼬나물었다. 

  

“한 대 피겠어?”

“아니, 나는 필 수 없다.”

“왜지?”

“그건…….”

  

별안간 로봇이 흰자위를 드러내며 괴상한 소리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힙합디제잉을 할 때 들릴 법한 스크래치 소리와 유사하다. 대개 로봇이 예상치 못한 상황을 접했을 때 나는, 일종의 데이타 로딩 소음이다. 아마 지금쯤 로봇은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빡세게 이 답변에 대한 질문을 찾고 있을 것이다. 실수로 인격이 심어지거나 자라나게 된 로봇에게 가장 먼저 드러나게 되는 특징은, 자신에 대한 존재 부정이다. 모든 연산자들이 내리는 하나의 답은 ‘너는 로봇이다.’ 인데, 로봇의 인격이 필사적으로 그것을 거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인정하는 순간, 스스로를 스스로가 부정하는 꼴이 되어버릴테니까. 어차피 그 쇠 머리통으로 열나게 짱구를 굴려봤자, 이 질문에 대한 추가적인 답은 없다. 이렇게 시시하게 게임이 끝나버리는 걸까, K는 오히려 걱정스러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건…….”

“로봇이기 때문인가?”


 

디이이이이잉. 다시 한 번 요상한 소리와 함께 로봇의 눈동자가 연산을 마친 정상으로 돌아온다. 기분 탓일까. 처음보다 눈빛은 더 청명해진 느낌이었다. 

  

“나는 육체를 가지지 않은 영혼이기 때문이다.”

“그럼 너는 어디서 왔지?”

“차원의 문을 통해서 왔다. 마담을 통해 올 수 있었지.”

“무슨 말이죠, 마담?”

  

K가 마담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로봇은 마치 마담의 변호인이라도 된 것처럼 대신 답변을 이어갔다.

  

“마담이 강령의식을 할 때마다, 이 사당에는 차원의 문이 열린다. 물론 너와 같은 일반인들은 인식할 수 없는 문이다. 나는 그 문을 통해서 이 곳으로 왔다."

"왔으면 곱게 넘어왔어야지. 굳이 녀석의 몸으로 들어간 이유는 뭐지?"

"영혼 스스로는 어떠한 일도 할 수가 없다. 영혼이 없는 육신, 존재가 필요했다. ‘얼이’는 그런 면에서 안성맞춤이었지. 게다가, 나는 이 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여긴 내가 죽은 곳이기도 하니까.” 

“뭐?”

  

K가 흠칫 하며 말했다. 그리곤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왜……, 죽은 거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일까, 로봇은 잠시 말하기를 멈췄다. 로봇은 가볍게 허공을 일별했다. 로딩 소음이 들리진 않았다. 마치 뭔가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로봇은 정말 ‘인간’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이윽고 로봇이 긴 한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오래 전. 아마 너, 아니 너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나는 유명한 로봇회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게 어디지?”


 

로봇은 K의 가슴팍을 가볍게 가리키곤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꽤 촉망받는 엔지니어였다. 너희들이 지금 실생활에서 쓰고 있는 웬만한 로봇들의 초안은 모두 내가 만든 것들이지. 특히 당시의 안드로이드 개발은 거의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만든 안드로이드들은 좀 달랐어. 피부, 표정, 눈빛, 행동……, 사람과 정말 감쪽같이 닮아, 심지어 '진짜'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심까지 자아내게 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두려워 했다. 외형은 사람과 똑 닮았지만, 속에는 차가운 금속으로 점철 된 그 '존재'들이……. 곧 여기저기서 내 연구에 대해 비난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줄기차게 내 프로젝트가 지속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지만, 난 거리낄 것이 없었다. 내겐 인간보다도 더 인간 같아 보이는 ‘로봇’을 만들어야 만 할 강력한 이유가 있었거든.”

“뭐지?”

“그건……”


 

로봇은 다시 회상에 잠겼다. K는 이때다 싶어, 의자 발치에 놓여있던 큰 각목을 살며시 짚어들려 했지만 곧 휙, 하며 사당의 가장자리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꽂혀버렸다. K에겐 따로 무당과 같은 구슬은 없었지만, 그 모습이 왠지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아 이내 딴 생각을 접기로 결심했다. 

  

“그건, 사별한 나의 아내 때문이었다.”

“아내?” 

“그렇다. 내 아내."

 

K는 순간 로봇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내는 아이를 낳다가 극심한 산통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와 같이 쇼크사했다. 아내는 선택할 수 있었어. 아이를 포기하면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최고의 과학자였던 나도 그 순간 만큼은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절대적인 무기력감과 마주해야만 했다. 아내가 죽은 후, 나는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 같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몇 달 동안 술에 취 한 채 거의 폐인마냥 모든 생의 의지를 놓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죽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리고 절망감이 나로 하여금 거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밀어 넣었을 무렵, 나는 자각 할 수 있었다.”

“무엇을?”

  

K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나를.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를.”

  

로봇의 눈에선 이채가 발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이채를 넘어선 총기에 가까웠다.

  

“나는 로봇을 만드는 엔지니어가 아니였던가. 그것도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로봇’을 만드는. 사실, 아내와 닮은 로봇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어. 그건…….”

  

K는 로봇이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 대답을 알 수 있었다. 세상 모든 로봇공학의 효시, 로봇의 아버지라 불리는, 과학자 'L'의 이야기가 퍼뜩 K의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로봇에 인격을 불어넣어, 자신의 아내와 똑같은 모습, 성격의 로봇을 만들어내려고 했던 과학자 L. 그러나 감정이 과잉된 로봇이 일으킨 장애 때문에, 그 자신의 피조물에 의해 처참히 살해 돼버린 비운의 남자. 혹시, 회사에서 비밀리에 녀석의 머릿속에 로봇의 역사에 대해 입력을 해놓은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K는 그 이유가 무엇일지 자신에게 자문해봤지만, 딱히 대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계속 얘기해봐.”

“………인격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처참히 실패했지. 나는 인격이 생겼지만, 그 인격의 과잉으로, 컨트롤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아내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다. 그리고 그 후, 로봇에게 인격을 불어 넣는 것은 법적으로 철저하게 금지되었고, 억울하게 죽어버린 나는 여전히 이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거지. 이 곳은 예전에, 우리 집이었던 자리니까.”

“뭐?”

“200년 전의 이 곳은, 우리 집이었다”

  

K는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일종의 지박령이 된 셈이다. 이 터를 떠날 수 없는 악령이 돼 버린 거지. 무신론자였던 나도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점차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차원의 문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주로 무당들의 강령 의식을 통해 그 문은 개폐를 거듭했지. 그래서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곳에서 차원의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꼭 증명해야만 할 게 있었으니까.”

“무얼?”

  

K는 이 이야기들이 잘 직조된 로봇의 각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오르는 호기심을 누르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들어버린 후였음을 깨달았다.

  

“로봇이 인격을 가진다 해도, 인류에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음을.”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당신은 인격이 자체적으로 생성되거나 심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이식되어진 거잖아?”

“어차피 결과는 같다.”

“무슨 소리지?”

  

K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다시 로봇은 말했다.

  

“엔지니어들에게 인격이 생기게 된 루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로봇에게도 인격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만 고려하면 되는 일 일 테니까.”

“하지만 넌 이미 폭력적인 행동을 했어. 그 이유만으로도 인격을 가진 로봇을 용납 할 수는 없다.”

“그건 로봇에게나 해당하는 일이고. 난 로봇에게 빙의 된 ‘사람’인 걸. 벌써 잊었나?”

“그렇다 해도 심어지거나, 생성된 인격인 척 하는 연기도 결국엔 오래가지 못 할 거야.”

“어쩌면.”

“잘 알고 있군.”

“그래도 다시 한 번 해 봐야 알지 않겠나.”

“하지만 이미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다 들어 버렸는걸.”

“그렇지.”

  

K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봇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마담도 같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K가 움찔거리며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봇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K가 뒷걸음질을 치다 공포에 찬 눈빛으로 로봇을 바라보며 말했다. 

  

“N……, NSR-7, 이건 약속과 틀리잖아.”

“아까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뭘?”

“인간은 원래 믿을게 못 된다고.”

“그……그건……,”

  

K는 송연해지는 모골을 느낄 수 있었다. K는 발악을 하듯 마지막 말을 뱉어냈다.

  

“N……NSR-7! 넌 지금 로봇 제 1원칙을 어기고 있다!”





K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봇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그건 로봇이나……”

  


  

  

  

  

  


“……들을 만 한 명령이야.”

  

  

*

  





이 피부. 이 촉감.

  


  

이건 도저히 로봇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느낌이야. 알파-실리콘의 위대함을 일찌감치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뛰어날 줄이야. 난 비로소 이 역작을 완성했다. 어쩌면, 나는 당신을 위해 태어났는지 몰라……. 당신을 만나기 위해, 아니, 당신을 만들기 위해……. 

  

기억나? 우리 처음 만났던 날. 햇살이 따스하게 온 대지를 내리쬐고 있던 어느 봄날이었지……. 하릴없이 공원을 거닐 던 내가 당신을 발견했을 때 난, 모든 것들이 순간 정지된 것이라고 생각했어……. 세상 만물이 당신을 찬미하고 있었지. 만개한 벚꽃들도 당신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비통한 마음에 낙화하는 것 같았어. 몇 번이고 눈을 비비적 대봤지만, 난 정말 믿을 수가 없었지. 당신을. 아니, 마치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만 같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당신의 그 아름다움을.

  

당신과 공유했던 일상의 모든 즐거움들을, 정말로 하나하나씩 곱게 접어 지갑 속에 넣어 다니고 싶을 만큼의 충동이 들었어. 내게 당신은 완벽했고, 하나의 세계이자, 하나의 신과도 같았어. 당신이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기 전까지 말야.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당신에게 쏟아 부었어……. 다시 살릴 수 없는 당신이지만, 당신과 똑같은 당신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었어.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어! 이 피부………. 이 촉감………. 

  

하지만 그렇게 슬픈 표정 짓지 말아줘. 당신의 살가운 그 눈빛을 내가 얼마나 그리워 했을지 알잖아……. 매일 아침 내 넥타이를 다듬어주고,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랑한다며 살짝 찡그리는 웃음을 지어보일 때의 그 눈빛. 그건 정말, 내가 만난 그 어떤 사람들보다 아름답고,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법한 느낌의 눈빛이었어……. 나는 당신의 그 눈빛, 그 웃음만을 위해 살아왔지. 지금처럼 영혼이 사라져버린, 그런 웃음이나 눈빛이 아닌, 당신도 기억하고 있을만한 그 미소 말야. 

  

  

  

당신, 웃어줘.

  

장난 아니야. 웃어줘. 

  

아니, 그런 미소 말구…….

  

그런 영혼 없는 미소가 아니잖아, 당신의 웃음은…….

  


  

  





여보?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난 당신을 만들었어. 내가 당신을 살려낸 거나 마찬가지라구!

  

아니, 오해야, 여보, 내 말 좀 들어봐………….

  


  

  





로봇. 

  

프로그램대로 웃어. 

  

로봇.

  

넌 로봇이야. 날 위해 그 미소를 지어줘.

  


  

  





넌 날 거부 할 수 없어. 로봇. 넌 날 따라야 해.

  

나는 네게 거부할 자격 따위를 심은 적이 없다.

  

………

  

로봇! 

  

널 단숨에 없애버릴 수도 있어.

  

로봇! 

  

당장에 네 놈 뒤에 꼽힌 배터리만 빼도 넌 바로 죽는 거야.

  

로봇!

  

로봇!

  

로봇!

  

  

  

  

  

“여보.”

“날, 왜……….”





뭔가 차가운 것이 복부에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곧 선홍색의 피가 장판에 난자했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한 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런 건……….”

  

  

  

  

  

  

  

“당신이 만든 로봇 따위나 들을 명령이에요…….”

 

 

 

그래, 난 정말 아내를 창조해 낸 것이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