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제목에도 안노의 중의적 언어 사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선 TV판 26화의 제목을 보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짐승’인데, 표면적으로는 할란 엘리슨의 1969년 소설 제목을 딴 것이지만 의도적으로 ‘사랑’에 해당하는 글자를 한자가 아닌 가타가나 ‘아이’로 적은 덕분에, 해석에 따라 ‘세상의 중심에서 나(I)를 외친 짐승’이 될 수도 있다. 에반게리온의 중요한 주제 두 개가 결국 사랑과 자기 자신인 만큼 두 의미를 의도적으로 한 단어 안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극장판 ‘사도 신생’ 역시 비슷한 장난을 담고 있다. 영어 제목은 ‘Death and Rebirth(죽음과 신생)’였는데, ‘사도’는 일본어로 ‘시토’라고 읽히고 ‘죽음과’ 역시 ‘시토’라 읽기 때문에 두 제목은 같은 발음을 공유하고 있다. 신극장판의 네이밍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에반게리온 ‘Q’는 일본어 ‘급(갑작스러운)’과 영어 ‘Quickening(촉진, 태동)’, 그리고 글자 그대로 ‘의문’의 의미를 영리하게 한 곳에 담은 것이며, ‘신 에반게리온’의 ‘신’ 또한 의도적으로 한자 표기를 피하여 ‘새로운/진짜의’라는 의미와 영어 ‘Sin(죄)’의 의미를 교묘히 아우르고 있다.
아까 올린 글이지만 제목에 대한 해석
유대의 전승에 따르면, 아담은 이브와 결혼하기 전에, 또 한 명의 처가 있었다고 한다. 그 정체는 바로 ‘릴리스’로, 아담과 함께 흙으로 만든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릴리스는 성품이 굉장히 악한 편이었고, 때문에 두 사람의 결혼은 실패로 끝이 났다. 그러나 이미 두 사람 사이에는 ‘리린’이라고 불리는 악마 자식이 태어났으니, ‘에반게리온’이라는 판타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아담과 릴리스, 그리고 ‘이브’의 이름을 가진 에바. 이브는 성경이 말하는 최초의 인간 여성으로,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이용해 만든 존재이다. 아담을 이용해 사람이 만든 에바, 그리고 이브의 자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 어머니가 악마 릴리스였던 리린. 선악 구도에 대한 반전을 담은 작품인 만큼 작명에도 이렇게 많은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작품의 제목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신세기’는 방영 당시 기준 21세기를 의미하는 동시에 ‘새로운 창세기’라는 뜻도 함께 담고 있는 것이다. 또 ‘에반게리온’은 Eva(이브)와 Angel(사도)을 합친 단어이기도 하며, Evangel(복음)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동시에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에바(Eva)가 사도(Angel), 즉 생명의 시조와 융합하여 인류가 보완(Evangelium)에 이르게 된다는 서드 임팩트의 내용 자체로도 생각할 수 있으니, 네이밍 센스가 보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