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들어봐
나 이제 고 1이고 지금 막 첫 시험 치르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지금 망하면 점수 절대로 안 올라간다고 겁 주고
그게 또 무섭긴 한대 막상 하려면 아무것도 안돼
근데 공부를 하려고 책을 펴면 있잖아,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왜 공부를 하는거지?
나 꿈있어, 엄마도 알잖아. 국제기구에서 일하는거.
엄마는 그거 돈 많이 못 번다고 되게 무시하는데
나 그거 돈때문에 꿈꾸는 거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난 외국어도 좋아하고 사람만나는 거 좋아하고 다른 환경 적응 잘하고
무엇보다 국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는거, 그거 때문에 꿈꾸는거야.
물론 나도 알아.
이거 내 나이에 그냥 한 번쯤 꿈꿔보는 마냥 이상적이기만 한 미래일 수도 있다는거.
근데 그거알아?
난 엄마가 대학잘간다고, 취업잘된다고 이과가라고 할때마다 힘이 쭉쭉빠져
엄마는 농담일 수도 있겠지. ㅋㅋ나오늘 엄마가 나한테 시험못보면 때린다고 할 때 농담인거아는데 소름끼쳤어.
엄마는 현실적인 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하는말이겠지만
왜 나한텐 꿈꿔볼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거야?
마냥 좋은데 취업시키고 시집 잘보내고 말 거였으면
처음부터 나 희망고문 시키지 말았어야지.
내가 국제고 간다고 할때 뭐라그랬어.
가라고 합격만 하면 어딘들 못보내주겠냐고 열심히하라고 하다가
맨 마지막에 원서 다써놨는데 대학 진학율 안좋으니까 가지말라고 했잖아.
나 잘할 자신 있다고 믿어달라고 울면서 매달리는데
엄마랑 담임쌤이랑 짜고 나 인신공격까지 하면서 좌절시켰잖아.
근데 이제와서 왜 공부하는지 모르겠다고 할 때마다 뭐?
그냥 답답하고 막연해서 무섭다고 할 때마다 뭐?
대한민국 고등학생 누구나 겪는 거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ㅋㅋㅋㅋㅋㅋㅋ누구나 다 이런 기분 겪는거면 고쳐야할 심각한 문제거리지
엄마도 똑같은 시절 거쳤다고? 그럼 이 지옥같은 기분 나중에 생각할 때 행복하기만 했어?
내가 공부할 이유, 엄마가 비현실적이라고 포기시키는 거 엄마가 몰라?
현실만 바라보자면
우리집 못살고 엄마는 바깥일 하느라 바빠서 나 신경도 못써주니까
나 대학안가고 바로 취업하는 게 맞는거지.
엄마 아무것도 안하고 내가 전교 몇등이나 하길바래? 그럴거면 온라인에서 캐릭터를 키워.
진짜 그러는 거 아니야
내가 어려서 생각이 짧아서 그렇다고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내 인생이잖아, 내가 실패할 테니까 날 내버려 둬.
엄마 때문에 1점으로 절절매는 인생 지금까지 살아왔어.
실패가 무서워서 아무것도 시도 못하고 센척만 하는데 속은 벌벌 떠는
내가 아주 싫어하는 그런 애가 됐단 말야.
대한민국 고등학생도 인간이고 싶어
난 인간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