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50 년대 이전에 태어나 아직까지 현역인 군 장비들
게시물ID : humorbest_5229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SKY!
추천 : 34
조회수 : 9738회
댓글수 : 6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9/04 16:37:18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9/03 22:56:19

1. 모신 나강 (1891 년 ~ 현대.)





총기 설계자 세르게이 이바노비치 모신 대위. 탄창 설계자는 에밀, 레옹 나강 형제


러시아 제국에서 1891 년 제식 채용. 1차대전때도 사용되고 혁명과 내전때도 사용되었다.

소련군에서는 2차대전때까지 보병 제식 소총이였다가 2차대전이 끝나고 SKS 나 AK 같은 소총들이 나오며 보병 소총에서는 퇴역.

대부분이 중국,북한 같은 공산국가들로 넘어갔고, 50 년대 한국전에서 대량으로 사용되었다.

소련군에는 60 년대까지 저격소총으로 남아 있다 63년 지정 사수 소총인 드라구노프가 개발되며 군용 저격총에서도 퇴역한다.


소련군에서 퇴출된 후에도 6~70 년대의 베트남 전쟁동안 북베트남군과 베트콩들이 사용했고, 80 년대에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반소 세력인 무자헤딘들이 모신 나강을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90 년대까지도 사용되었다.


90 년대에도 러시아의 적인 체첸 게릴라들이 애용해 러시아군을 엿먹였고, 러시아군은 당시 사용하던 드라구노프가 모신나강보다 명중률이 떨어져 저격전에 애로사항이 생기자 민간인들이 가지고 있던 모신나강을 징발해서 다시 저격총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21 세기에도 아프리카같은 곳에서는 아직 현역이며,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국가의 경찰같은 준군사조직들도 아직 사용중이다.


군용 생산은 65 년 중단되었지만 민수용 생산은 98 년까지 지속되어, 생산 기간은 총 107 년.


2. 리엔필드 ( 1895 년 ~ 현대 )





설계자 : 제임스 파리 리


영국에서 1890 년대 개발되고 95 년부터 배치된 볼트액션 소총이다. 최초 채용은 영국이고, 영국의 식민지나 영연방 국가들도 채용했다.  19 세기의 보어 침공때부터 두번의 세계대전, 그리스 내전, 한국 전쟁, 60 년대까지 이어진 말레이 분쟁등에서 영국과 영연방 국가 병사들의 손에 들려 있었고, 네팔 내전, 1차 중동 전쟁, 수에즈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등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예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는 아직 2선급 부대나 경찰에서 현역으로 사용하고 있고, 2008 년의 뭄바이 테러때도 군경이 리엔필드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영국에서는 1956 년 생산이 중단되었지만 호주와 인도는 더 오랫동안 생산했고, 인도의 생산 라인은 80 년대까지 유지되었다.



3. 콜트 M 1911 ( 1911 년 ~ 현대 )





설계자 존 브라우닝.


미군이 1911 년 채용하고 아직까지도 현역에서 뛰고있는 권총.

오랜 복무에 지쳐 고장난 총들도 재생을 거쳐 재복무를 했고, 최소한 3번은 재생되었다고 한다.

1992 년 미군 대부분에서 베레타 M92 로 대체되었지만, 해병대는 이에 반발하고 1911 의 개량형인 MEU 피스톨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무기 선택이 자유로운 특수부대 대원들중에도 온갖 권총을 전전하다 M1911 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4. M2 중기관총. ( 1932년 ~ 현대.)





설계자 존 브라우닝.


1921 년 설계가 완성되고,  1932 년부터 미군에 제식 배치된 50 구경 중기관총.

그냥 중기관총으로도 쓰고, 차나 전차위에도 얹어서 쓰고, 두정을 묶어 함선 옆구리에 대공포로 깔기도 하고, 네정을 묶고 트럭 뒤에 올려 야전방공차량으로도 ㅤㅆㅓㅅ다. 1967 년에는 카를로스 헤스콕이 이 총으로 2,250m의 세계 최장거리 저격 기록을 세웠고 2002 년까지 유지되었다.


그리고 아직 현역이다.


60 년대쯤에 M85 라는, M2 를 대체할 50 구경 중기관총이 채용되었다.

M2 는 무게가 38kg + 삼각대 20kg  으로 매우 육중해 보병들이 다루기 까다로웠고, m85 는 이점을 고려해 무게를 29kg 대로 줄였다. 그리고 장갑차나 차량 내부에 수납할것도 고려해 크기도 줄였다.

그런데 총의 내구도도 떨어졌고 신뢰도도 떨어졌다.  설계미스로 탄걸림도 발생했고 결국 M2 로 다시 대체되었고 좀 더 버티던 녀석들은 M240 으로 대체되었다.


그 다음에는 XM307-312 라는 OCSW 가 등장했다.

이 무기는 40mm 유탄 발사기와 12.7mm 중기관총을 동시에 대체하기 위한 무기였다.

XM-307 은 25mm 고속유탄발사기로, 무게가 23kg 이다. 레이저 거리 측정기, 2km 밖의 보병도 맞출수 있는 컴퓨터와 화력제어장비, 물 반컵을 올려놓고 쏴갈겨도 한방울도 흘리지 않는 저반동에 공중폭발유탄까지 갖춘 우수한 병기였다.

그리고 312 는 이 무기의 12.7mm 중기관총 버전인데, 모듈화 설계로 307 과 312 는 컨버전 키트가 있다면 상호 변환이 가능하다.

307 <-> 3012 의 변환 소요 시간은 2분 이내.


그리고 이 강력한 무기는 그에 걸맞는 지랄맞은 가격으로 나가리 되어 M2 의 자리를 빼았지 못했다.


그 다음에는 XM806 이라는 50 구경 기관총이 나왔는데, 무게가 18kg 로 크게 줄었다.

즉 분대단위로도 손쉽게 운용할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가격도 비싸고 성능도 아직 검증되지 않아 소수 특수부대에나 배치되었다.


M2 의 최고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온것이 실제 전장에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총열 교환이 까다로운 점이였다. 실전에서 M2 가 과열될 경우에 병사들은 그냥 끊어쏘며 알아서 식기를 기다리거나, 그냥 총이 망가지건 말건 쏴갈기다 진짜 망가지면 버렸다.


그래서 FM 사에서 내놓은 M2HB QCB 는 총열교환문제가 해결 되었고, 기존의 M2HB 들도 총열교환 문제를 해결하는 개량을 받고 M2E2 라고 이름을 바ㅤㄲㅝㅅ다.


M2 옹이 은퇴할 날은 아직 멀었다. 최소 한세기는 채울듯.


5. T-34 ( 1940 년 ~ 현대 )





설계 : 하라키우-모르조프 설계국


1939 년 설계 완성, 1940 년부터 생산이 시작되고 1958 년까지 생산되었다.


2차대전 기간동안 계속해서 개량되며 소련 전차의 주력으로 활약했다. 생산 추정치는 9 만여대. 물론 그만큼 많이 터져나가서 매년 만단위로 터져나갔다고 봐도 된다.


그리고 2차대전 종전후, 동유럽의 위성 국가와 중국, 북한, 아랍지역등 친소 국가들에게 대량으로 공여되었다.


대전 직후에는 48년의 중동 전쟁, 50 년의 한국전쟁, 56 년의 헝가리 혁명, 6~70 년대의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되었고, 90 년대의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도 사용 되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 현역이고, 우리의 주적 북한에서도 아직 2선 현역이다.



6. M-4 셔먼 ( 1941 년 ~ 현대 )





M4 셔먼은 1941 년부터 배치된, 2차대전 당시 미군의 주력전차다.


이쪽도 엄청난 숫자가 터져나갔다. 물론 전사자만 독일군 350 만, 소련군 900 만에 달하는 동유럽에 비하면 적다.


종전후 T-34 가 친소 국가들에게 뿌려진것처럼 M4 는 전차가 없거나 빈약하고 가난한 서방권/친미 국가들에게 뿌려졌다.

생산은 45 년에 이미 종료되었지만, 기존에 찍어둔 물량이 5 만대를 넘길 정도로 워낙 많아서 여기저기 뿌릴수 있었다.


이후 중동 전쟁과 한국전에서 사용되었고, 아프리카 지역의 분쟁에서도 사용되었다.

중동 전쟁때 셔먼의 단물을 잘 빼먹은 이스라엘은 온갖 개조를 가하며 70 년대까지 셔먼을 착취했고, 자체적 생산 능력을 갖추자 해외로 팔아 치웠다.  때마침 칠레가 전차를 구하고 있었다. 전차는 필요한데 경제사정은 어려웠던 칠레는 구형 전차를 사서 개조해 쓰기로 결정했고, 이스라엘이 팔고있던 셔먼을 기쁘게 사가서 개조했다.


칠레는 개조한 셔먼을 열심히 부려먹었고, 89 년 레오파르트 1 을 사오면서 은퇴시켜주는가 싶었지만 2002 년까지 1선에서 부려먹고, 그 이후로는 2선으로 돌려서 부려먹고 있다. 북한의 T-34 와 칠레의 M-4 중 누가 먼저 은퇴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45 년 생산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아직 활동중인 셔먼중 가장 어린 기체도 67 살이다.


7. 수통 (1941 년 ~ 현대)






(1943 이라는 숫자가 바로 생산년도다.)


1941 년, 일본이 진주만에 기습 공격을 가하며 미국또한 2차대전에 뛰어들었다. 총병력 20 만의 미군은 1,000 만의 대군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그에 맞춰 개인 장구 수요도 미친듯이 폭증했다. 이 수통도 이 시절 수백만을 넘어 천만에 육박하는 물량이 생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후 독립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제공되었고, 국군에게 제공된 물품은 한국전,베트남전을 거쳐 현대까지 전해지고 있다.주로 볼수 있는 물품운 US1943. 1941 도 간혹 보이지만, 1943이 가장 많이 보인다고 한다.


당신 사단장보다 훨씬 더 고참이고 수많은 전투에 참여한 역전의 용사지만, 이걸 차고 있다고 사단장에게 경례를 하지 않아도 되는것은 아니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노르망디 해변이나 태평양의 바닷물 냄새를 느낄수 있을지도 모른다.



8. M1 카빈 ( 1942 ~ 현대 )





2차대전즈음 미군의 제식 소총은 M1 개런드였다.

그런데 개런드는 큰 편이라 후방 부대나 운전병,전차병,조종사등이 사용하기에는 난감했고, 이들을 위한 더 ㅤㅉㅏㄻ은 총으로 M1 카빈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공수부대에도 카빈이 지급되었다. 뛰어내리다 총에 낙하산줄이 엉키면 그대로 저승에 가니, 사고방지를 위해 최대한 ㅤㅉㅏㄻ은 총을 지급한 것이다.


가볍고,장탄수도 15/30 발로 많고,튼튼하고,반자동 사격도 되고, 거기다 값도 개런드보다 두배가량 저렴했다.

그래서 개런드보다도 많은 6백만정 가량이 생산되었고, 공수부대와 일반 보병들도 이 총을 호평했다.


전후에는 역시 한국군같은 곳에 대량으로 제공되었고, 한국전에서 활약했다.


미군에서는 M14 가 나온 뒤에도 가벼움과 사격속도,크기의 이점으로 M16 이 보급되기 전까지 미 군사고문단은 M1 카빈을 애용했다.


그리고 한국군은 수십만정 단위로 보유중인지라 2012년까지도 향토예비군이나 동원미지정 예비군들의 무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직 남은 카빈 탄환이 어마어마한지라 예비군은 앞으로도 한동안 카빈을 쓸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카빈을 받아 잘 살펴보면, 제조사 각인이 IBM 인것도 있다. 컴퓨터 회사 IBM 맞다.



9. An-2 (1947 년 ~ 현대)




1947 년 소련에서 개발된 소형 수송기다.


본래 순수 민간용으로 개발했기에 날개는 복엽구조에 금속뼈대에 캔버스를 씌우고 , 동체는 트러스트 구조의 전금속제인등 개발 당시에도 구식화된 기술들만 사용했다. 그런데 가격도 저렴하고, 다루기도 쉽고 적당히 튼튼하기에 군대에서도 쓸만하다 여겨 대량구매. 소련에서 5,000 여대, 폴란드에서 13,000 여대, 중국에서 1,000 여대가 생산되고 바르샤바 조약기구와 중국,북한에서 쓰이며 가장 많이 생산된 수송기가 된다.


러시아의 흉악한 환경에서 트럭처럼 많이, 막 굴려먹기 위해 만든 기체인지라 성능은 떨어지지만 그만큼 강인하고 다루기도 쉽다. 이착륙에 필요한 활주로 길이도 2~3백여 미터에 불과하고, 엔진과 조종계통을 제외한 부위의 파손은 자전거 수리점 정도의 기술로도 고칠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유지/보수 부품은 구하기도 쉽고 값도 싸다. 얼마나 저렴하냐면, 중고가가 대략 3만달러로 보통 승용차 정도의 가격이다. 엔진을 교체하고 성능을 올린 후속기 An-3 는 신품이 150 만 달러쯤 한다. An-3 의 판매량은 25 대. An-2 에 비교하면 대실패다.


현재는 대부분의 기체가 개도국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곳에서 여객기나 수송기로 날아다니고 있지만, 북한군에서 330 여대, 국군에서 20 여대가 현역으로 활동중이다. 북한군의 기체는 중국제 280 여대와 자체생산 50 여대로 전시에 기습폭격이나 특수부대에 기습 침투용으로 쓰일것으로 예측되고 있고, 국군의 것은 소련,중국,폴란드에서 사온 것으로 북한군 기체의 침투 방어훈련, 강하훈련, 기초비행훈련등에 쓰이고 있다.


또한 앞서 말했듯 이착륙 필요 거리가 2~3백미터에 불과해 골프장에 페어웨이 (공 잘치라고 잔디 다듬은곳) 에서도 이착륙할수 있다. 그리고 전시 북한군 특수부대나 기습폭격의 1차 목표중 하나가 될 공군 비행장들은 대부분 골프장이 딸려있다. 그래서 병사들이 골프장 ㅍ[어웨이에 북한군An-2 의 강착륙을 저지하는 훈련을 자주 하고, 훈련후 장교나 장군들이 골프를 잘 칠수 있도록 잔디를 다시 복구하는 일도 자주 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