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게도 매우 자상하신 선생님을 알게 되어 재수생의 신분으로도 주제넘게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곳은 원래 수능이 끝난 학원 고3 애들이나 졸업생들이 알바를 하기도 해서 재수생인 제 신분을 밝혀도 못 미더워 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제 신분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애들의 태도에 고마웠어요.
그래서 내가 누구를 가르친다는게 남 부끄럽지 않게 준비를 해갔습니다. 재수 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오로지 가르칠 내용만을 공부도 했구요.
단순 문제 풀이만 하면 답지를 보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개념에 기초하여 풀이를 유도하도록 이끄는 방향으로 설명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대부분 아이들이 이해를 해 주더라구요. 나름 뿌듯했어요.
제가 처음 이 곳에서 시작했을 때 처음 했던 학생이 있어요. 내 인생에서 제일 처음 가르치게 된 아이인 만큼 가장 애착이 갔고, 이 애는
학원에서 저와만 수업을 하기 때문에 항상 준비를 해 갔어요.
하지만 오늘 느꼈어요. 근 8개월 동안 내가 이 아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었구나...
이제 3학년 올라가는 아이인데 점과 직선사이의 거리 구하는 공식이라던지, 내 외분 식이라던지 ... 가르쳤던 기본적인 것들이 어느새 기억 속에
사라졌고, 명을 할 때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만 정말 이해하고 있는지도 장담 못하겠고..
공부는 자기가 하는거라잖아요. 근데 저는 그 애가 공부를 하도록 이끌지 못했어요. 필요한 내용을 전해주지만 의욕을 넣어주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이 아이에게 준 것 없이 시간만 빼았었다는게 미안해요. 이 아이만큼은 정말 공부를 하도록 만들고 싶었는데..
8개월동안 내가 한 게 무의미한 것에 대해 너무 회의가 드네요. 이 애를 보내고 학원에서, 버스에서,집에서 속 힘없이 계속 벙쪄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