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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반복되는 보건지소들의 진료 공백을 보며..
게시물ID : freeboard_2958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슬픈비
추천 : 10
조회수 : 29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8/04/16 16:33:26
4월도 벌써 절반이 지나갔네요.
너무 예쁘게 피었던 벚꽃들이..진료실 밖에 눈처럼 날리고 있습니다.
이런 좋은 날씨..기분 좋은 바람에도.. 속이 상해 또 몇자 푸념을 남깁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임기가 끝난 공보의(공중보건의사)들이 나가고, 새 공보의들이 들어오기까지 진료공백이 생기는 곳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뉴스에 나올테고요(아니면 벌써 나왔으려나요?)...

제가 있는 곳처럼... 우리나라의 대다수 작은 시골 마을에는 보건지소가 거의 유일한 의료기관입니다.
이곳에는 공중보건의... 일명 공보의라고 불리는 의사들이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군대 대신 만 3년, 즉 36개월간 근무하고 있지요. 이중에는 인턴 레지던트를 마치고 전문의를 따고 오신 분들도 있지만, 막 의사면허증을 따고 부임한 일명 초짜 의사들도 있습니다. 물론 전문의라고 해도 아직은 저처럼 개원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 환자를 대하고 다독거리는데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이렇듯 아직 경험도 많지 않고, 자신의 전문 파트가 아닌 이것 저것 타과 진찰까지 하다보니(의료기관이 주위에 없으니 거의 모든 과의 1차 진료를 다하게 됩니다) 미흡하기 이를 데 없는 의사들이지만, 저희들이 이곳에서 하는 역할은 매우 큽니다. 
병원들이 많은 도시나 아님 시골이라도 인근에 의료 시설이 많은 곳에서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이런 시골에서 저희들의 자리가 비면 그 피해는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큽니다.

그런데도 또 올해 진료 공백이 생기는군요.
바로 작년에도 이런 사태로 힘들어하는 시골 주민분들이 많았었는데요.
매번 반복되는 이런 상황을 보면 정말 부끄럽고 화가 납니다.
몇해가 넘도록 반복된 이 사태를 누구도 해결하려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누구 책임일까요?
첫번째 책임은 아무래도 국가겠지요.
매년 새 공보의가 들어오기까지 한달간 진료 공백이 생기는 건 뻔한데 그 날짜를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뭐 국방부와 보건 복지부, 지방자치단체등 여러 단체의 의견이 상충되기 때문에 조율이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벌써 이런 상항이 몇해째인데...
한심합니다.
 
둘째는 저희 의사들 때문입니다.
실제 제대로 퇴역일까지 제 날짜를 채우는 의사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친한 의사에게 엉터리 진단서를 받아 병가를 내거나, 남은 연가를 몰아쓰거나..아니면 무단으로 제 임기 전에 의사들이 나갑니다. 이게 관행이 되어 있는데... 공보의 대부분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현역으로 군대 간 사람들이라면 말년에 무단 탈영하는 셈이지요. 
주변 공보의들에게 이런 건 잘못되었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 돌아오는 건 언제나처럼 혼자 잘난 척한다는 멸시뿐입니다.
의사들이 일찍 나가면 그만큼 환자들이 고생하시고, 약이 떨어져 힘들어할 게 뻔한 상황인데도... 여기할아버님 할머님 뻔히 돈 없어(65세 이상 어르신들은 보건지소에서 자기 부담금이 없으시거든요) 아파도 도시 병원까지 못가시는게 태반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의사라는 것들이 조금도 책임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늘 남들도 그러니까...라는 게 제일 큰 변명이죠.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셋째는 현지의 공무원들 때문입니다.
진료 공백이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이걸 완하할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오히려 이런 일을 공무원들이 방해한다는 거. 
제가 옮겨 갈 곳의 보건지소 역시... 앞 선생이 일찍 도망가는 바람에 한달 반 가까이 보건지소가 비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건소에 그쪽 지소 일까지 하겠다고 나섰는데.. 반응이 기가 막혔습니다.
" 지소 닫는다고 죽는 사람있겠어요?" 
" 정말 많이 아프면 알아서 병원들 찾아갈꺼에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정말 기운이 빠져버립니다.
보건지소 진료를 않하면..관련 공무원들도 그만큼 일이 줄고 편하다는 거겠지요..어짜피 월급은 나오니까.
출근만 하고...출장 달아놓고 맘대로 돌아다니거나 문 닫아두고 사적인 일(게임, 인터넷 쇼핑)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공보의 공백으로 어김없이 매년 한달 이상 진료 공백이 생기는데데.. 상황이 이러니 늘 주민들이 매년 같은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해결하려면 얼마든지 방법이 있는데.. 해모두들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해결하기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방법이 있지만 어떻게든 그 방법을 피해서 다들 놀고 싶어한다는 느낌...
 
어쨌든 공보의를 하면서 자꾸 우리 나라 의료 현실에 어두운 면만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추한 젊은 의사들..
나태하고 무책임한 공무원들...

물론 아주 성실하고 부지런한 공보의들과 공무원들도 계실 겁니다. 근데... 저도 좀 곁에서 실제로 봤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믿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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