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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번째 소개] 위험한 관계
게시물ID : readers_72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ickyo
추천 : 1
조회수 : 2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5/02 1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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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고 현실적인, 그래서 더 참혹한]




더글러스 케네디가 현재 영미문학권에서 정말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빅 픽쳐'라는 책을 통해 인기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 필자는 반골기질이 있는건지, 아니면 맛있는 것은 맨 나중에 먹는 습관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빅 픽쳐를 첫 작품으로 읽고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른것이 바로 이 '위험한 관계'였다. 고르게 된 계기는 책 미리보기를 통해 '읽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느낀 감정은, '아 읽지 말걸.'이었다는게 솔직한 첫 인상이다. 작품이 구리다거나, 재미가 없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되려 이 책은 잘 쓴 소설이고 재밌는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읽지 말자는 생각을 한건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다. 이 책이 '이혼,결혼,임신'과 관련된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묘사되는 내용들이 영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내가 여성이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꼈을 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머리속에 막연히 자리잡던 아버지의 역할이나 여성의 임신, 결혼이라는 관계에 대해서 이 책은 아주 강하게 독자를 밀어 붙인다. 필자가 유독 영미소설을 더디게 읽기는 하지만 이 책은 그래도 그렇지 3일이나 걸려서 완독했다. 물론 앞의 절반이 2일이 걸렸지만.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도 작가의 강렬한 푸시를 견디기 힘들어서였다.




물론 그의 묘사는 책을 덮고 난 다음에야 충분히 적절하고 좋은 구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인간이 힘들때 주변으로부터 힘을 얻는 과정이라는게 결국 일상의 규칙성 속에서 찾는 우연한 희망,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받는 의외의 응원, 그리고 내 스스로의 자존감이 나락으로 추락할 때에 여전히 변치 않는 증거로서 남아있어 주는 일상의 몇 가지 것들과 익숙한 풍경, 장소, 내음 같은것이라고 했을 때 이 책은 여성이라는 존재가 모든것이 혼란스러워 지고, 수많은 전통적 가치관과 자신이 걷던 삶의 방식이 부딪히며 벌어지는 스트레스. 그리고 기대받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모순과 자신이 기대고 싶었던 주변 모든 것들이 '위험하게' 바뀌어 가는 것을 통해 철저하게 혐오되기를 바라는 듯이 쓰여져 있다. 남성으로서 이 책을 읽으며 중반까지만해도 이렇게까지 여성이 변하는게 임신과 결혼이라면 안하는게 낫지 않나 싶을정도였다.




그러나 바로 전 문단에서 말했듯이, 주인공 부부의 여성은 주변으로부터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모든것이 스스로가 이방인이자 타자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유일한 남편마저 보통의 존재로서도 자신을 보듬어 주기 어려워 했다. 이러한 내용을 극 후반부에 가서 이해하고 공감하고서야 극의 주인공이 겪는 심각한 후유증과 심리적 장애,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끼친 그녀의 히스테릭한 점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적어도 이 책의 중반까지 느꼈던 '임신과 결혼'에 대한 비관적이고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한 쪽으로 밀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어쨌거나 책은 부부관계에 있어서 오는 혼란과 법적공방을 다루고 있다. 흔히 떠오르는 아침드라마 같은 스타일이었는데, 이 책이 명작으로 불리는건 아마도 도입,전개,절정에 있어서 아주 현실적이고 상세하게 그려져 부담까지 느껴지는 여성의 절망과 힘듬에 대한 과정과 절정 결말에서 보여지는 전통적인 반전과 캐릭터,상황을 통한 깔끔한 마무리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엔 너무 과장된 게 아닐까? 정말로 이렇다면 대체 가정이라는 시스템이 유지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강력하게 보여준 여성의 불안정에 대한 이면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개연을 느끼게 해주는 그녀를 둘러싼 상황과 극에서 그녀와 대척점을 지닌 남편이 보여주는 적으로서의 캐릭터가 이러한 의문을 완화시켜 그럴싸하게 만들어 주었다. 모든 소설이 허구이고 독자에게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설득하는 것이 재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면, 적어도 더글러스 케네디는 그 부분을 충분히 잘 수행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중반을 넘어가고 전형적인 절정 결말의 구도로 넘어가면서 몰입감은 정말로 껑충 뛰어올랐다. 비록 진부한 형식이기는 했으나, 책 전체를 참신하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넣는 것 또한 또 다른 진부함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위에서 말했듯이 너무 극화되어 있다거나 개연성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지적을 할 수도 있고 스스로도 그러한 질문을 던져 보았으나 그러한 것들을 전부 수정하고 나면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밋밋한 이야기거리로 전락한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결국 소설가와 독자란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 문학적으로 허용된 허구와 우연을 통해 '이 정도면 그럴싸 하지?'하고 속이고, 우리는 그것에 속아주며 '그럴 수 있지' 하고 극적인 상황을 즐기는 관계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의도적인 취사선택과 우연의 배치, 그리고 영미소설 특유의 '공간'과 '환경', '내면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장치화하여 우리를 능글맞게 잘 속여넘겼다고 생각한다. 줄이자면, 개연성도 과장도 납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더글러스 케네디의 문체는 때때로 저널리스트 같기도하고, 폴 오스터와 같은 영미소설 특유의 만연체를 섞기도 하며 중간중간에는 전통적인 영어권 국가의 문장구성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소설로서 분위기를 깨지 않고 특별히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 문장의 구성이다. 그러나 문장이나 구성을 특 장점으로 꼽을만한 소설가는 아니라는게 이 책을 읽은 필자의 판단이다. 스토리의 구성능력도 사실 전통적인 서사의 뼈대를 그대로 둔 느낌이고, 그 변주를 잘 활용하여 이야기를 구성했기에 이야기 전체를 보자면 진부한 면도 있다. 문장과 구성, 스토리를 전부 4점정도만 주고 싶다. 다만, 그가 이러한 이야기를 구성함에 있어서 장장 400여페이지에 걸쳐 그려낸 관계에 대한 다양한 장치들, 그리고 그것들이 작동하며 벌어지는 두 부부와 그 주변인간의 갈등과 내면을 '정말 과장된 것 처럼' 강력하게 표현하면서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읽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몰입감과 형상화에는 4.5점 이상을 주고 싶었다. 




전체적으로 재밌고, 좋은 책이며, 미혼 여성이나 남성은 약간 이해하기 어렵거나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 책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신이 알 수 없는 상대에 대해 어떠한 이해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과 갈등을 빚는 방식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 주는 힘이 있다. 이 말은, 이 책을 다 읽고난다고 해서 여성만이 겪을 수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속에서, 그녀들이 약해지고 히스테릭해져서 모든 사람에게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는 모습에 대해 더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그러한 것들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나중에 이러한 갈등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에 조금은 더 현명하고 여유있는 대처를 할 수 있는 조각을 가슴에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한번 쯤 읽는다면 각자 무언가를 얻을 이야기를 잘 그려낸 소설이라고 추천드리고 싶다.



p.260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그네스가 내 머리를 제자리로 돌리고는 갑자기 빵을 내 입에 밀어 넣었다. 내가 외면하자 이번에는 더 세게 내 머리를 돌렸다. 그 다음 이 사이로 빵을 밀어 넣었다. 나는 빵을 밀치고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생각할 새도 없이 갑자기 그녀의 주먹이 내 얼굴을 후려갈겼다. 아찔한 충격이 밀려들었다. 통증이 심해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간호사!"

패터슨 간호사가 병실로 들이닥쳤다.

"그러니까...말을 할 수는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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