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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본 한국인의 떡복기 기질
게시물ID : travel_5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유머천사Ω
추천 : 4
조회수 : 237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0/12/02 13:02:41
떡볶이, 순대, 황사 

일본
시미주 아키꼬 


“나라의 수도인데도 불구하고 사면을 다 
산이 포위하고 있는 수도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
만 해도 이 서울이 얼마나 매력적인 곳일까?”
 그렇게 흥분하면서 말하는 나에게 “한국에
서는 옛날부터 수도는 산이 있는 곳에 만들어 
왔다.”고 가르쳐 주셨던 어르신이 있었지
만, 나 같은 외국인에게 있어서는 “도시와 
자연의 융합”이라고 필요 이상의 놀람을 느끼
면서, 동시에 이런 도시에 살 수 있다라는 것에 
대해 부러움까지 가지게 된다. 

종로의 세종 대로를 광화문을 향해서 걸어가면 
그 멀리에 보이는 산들. 다들 사납고 용맹
스러운 바위를 보여주고 있다. 시선을 내리면 
경복궁이 펼쳐지고 있다. 그 경치를 방해하
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뒤돌아보자 그 곳에서는 
지금 막 보았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도
시의 고동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이 gap이 
나에게는 더없이 좋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외국인인 내가 왜 이렇게 
서울에 대해 구애됨을 가지게 됐냐하면 그 
계기는 10년전의 서울 여행이고, key-word는 
떡볶이, 순대, 황사(黃砂)다. 

한국에 처음에 왔을 때는-한국이래봐야 
서울일 뿐 이지만-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봄이었
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그리고 외국에 간다라는 것은 나에게 어떤 
impact를 주는 건가? 넘친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기대감과는 달리 서울 시내를 향해서 달리는 
택시 안에서 보인 경치에서는 아무
impact도 느끼지 않았다. 왠지 일본이랑 
비슷비슷하기도 하고 한국다운 냄새도 하나도 느
낄 수 없고 “외국정서”라는 말과도 동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 시장을 보러 가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거기에는 상인
이랑 시민이 1대1로 거래하는 경치가 아직도 
남고 있었고 활기 넘치는 분위기에 압도당했
다. 또 무엇보다도 팔고 있는 것들이 다 원형이고
 필요이상의 포장도 하고 있지 안았던 것
이 너무너무 생소하게 보였다. 항상 슈퍼에서 
시장을 보고 있는 나에게는 보는 것 모든 것
이 희귀하고 어딘가 그립기도 하고 호기심이 생겼다. 

좀 배가 고파서 시장 가운데 있는 포장마차에
 가기로 했다. 똑같은 포장마차가 가득히 나
란히 있고 포장마차의 중심에서는 아주머니가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까지 4월
이라 포장마차에서 올라가는 하얀 연기가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우리는 많은 포장마차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앉았다. 친구는 한국말로 무언가를 시켰던 
것 같았다. 내 눈앞에서 빨간 sauce가 큰 
철판 안에서 마치 지옥 늪처럼 뽀글뽀글 화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거기에 주걱을 넣어서 
천천히 크게 휘젓기를 시작했다. 아주머니의 주
걱에 밀려서 통나무가 데굴데굴 왔다 갔다 했다.
 나는 그 철판에 눈을 멈추었다. 왜 이렇
게 빨개? 어떻게 하면 이렇게 빨간 건가? 
그리고 과연 이것은 뭘까? 

이윽고 아주머니는 손을 멈추고 통나무들을 
접시에 옮겼다. 아주머니는 웃지도 않고 아무 
말도 없이 접시를 그냥 내 앞에 놓았다. 
그러나 난 당장 먹을 수 없었다. 아주머니가 오
른 쪽에 있는 큰 냄비를 덮고 있는 비닐을 
벗기기 시작했으니까. 연기와 함께 나타난 것
은 소용돌이치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물체였다. 
대충 보면 sausage같기도 했다. 도대체 이
것은 뭘까? 친구한데 물었더니 그것은 순대라고 
한단다. 아주머니는 양손으로 긴 순대를 
위로 들어 올려서 도마 위에 놓고 재빠르게
 썰기를 시작했다. 탱탱한 순대는 썰때마다 뽀
득뽀득 소리가 났다. 

두 접시가 내 앞에 모였다. 나는 먼저 빨간 
것부터 먹기로 했다. 그것은 떡볶이라고 한단
다. 이쑤시개로 꿰고 한 입을 먹어봤다. 처음에는
 달았는데 먹으면서 입의 한 구석에서 매
움이 올라왔다. 오뎅 국물이 나의 입을 더 
맵게 시켰다. 입 속은 이제 panic이였다. 일본
에도 찹쌀떡이 있으니까 친근감을 가지면서 
먹었는데 이렇게 맵다니… 하지만 장소가 바뀌
면 이런 떡 요리가 되는구나… 라며 곤란해하면서도 재밌게 먹었다. 

다음은 순대 차례다. 순대는 일본에서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음식이었다. 순대의 정체는 
과연 뭘까? 아무래도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음식일까?) 
그 대답에 놀랐다. 돼지의 장에
다 당면을 넣은 것이고, 까만 색은 돼지 
피라고 했다. 나는 어지러워졌다. 돼지의 피까지 
먹다니. 이런 우락부락한 음식을 먹다니. 
마치 기마민족이잖아(진짜 기마민족이 이런 것
을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련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대륙이다. 지리적으로도 가
까우니까 영향을 받고 이런 음식을 먹게 되었다… 
그래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잖아? 

나는 신기한 기분이 됐다. 눈 앞에서는 
새빨간 고추 바다가 소용돌이치고, 나의 머리 속에
서는 말을 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없이 넓은 초원을 다그닥 다그닥 달리고 있었다. 

다음 날은 경복궁을 구경하러 종로에 갔다. 
그래도 좀 이상했다. 날씨는 좋은데 하늘 색깔
이 왜 이럴까? 친구한데 물어봤더니 
황사 때문이라고 했다. “황사”. 우리 나라에도 오기
는 오지만 대부분은 바다에 떨어져버린다고 들었다. 
그 황사가 여기도 있다니. 나는 머리 
속에 세계지도를 그렸다. 그래, 황사는 중국에서
 흘러오고 한반도를 지나서 우리 나라에 
가는 거다. 그 만큼 이 서울이 대륙이랑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거다. 

그래, 지금 나는 확실히 서울에 와 있구나. 
어제 먹었던 떡볶이하고 순대, 그리고 오늘의 
황사가 내 안에서 하나로 연결이 됐다. 
똑같은 ASIA지만 어딘가 그립기도 하고 어딘가 색
다른 나라, 이것이 바로 “한국 정서”
 아닐까? 나는 무언가가 확실히 터진 것 같은 느낌
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한국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사실 나는 역시 한국이랑 일본을 이해하
려고 한다면 그 뒤쪽의 어른거리고 있는 대륙, 
즉 중국을 알아야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
다. 하지만 나의 관심이 바로 중국에 
옮겨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한국사람들의 기질 때문
이다.

처음에는 내 눈에 비친 한국사람들에 대해서는 
굉장하게 “why?”가 많았다. 왠지 언제나 
화나 있는 것 같은 것은 why?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손님한테는 감사하다는 게 보통인데 
팔아줄 테니까 감사해라 같은 태도를 당당하게 
보여주는 것은 why? 그리고 길을 걷고 있
을 때 상대방이랑 부딪쳐도 미안하단 말 
한마디도 없이 서로 지나가 버리는 것은 why? 지
하철을 타고 있을 때 아무 말 없이 
뒤쪽에서 걸어오다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짐
을 부딪치면서 가버리는 것은 why? 자기가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 상대한테 큰소
리 치는 것은 why? 이것들은 한국을 알게
 된지 10년이상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why?들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사람이랑 사귀면 사귈수록 느끼게 되는 “정
(정의 깊이)”, “솔직함“ 때문에 “why?” 
들에 대해 일일이 화나지 않고 금방 잊어버리
게 됐던 것 같았다. “그래도 서울 사람들은 
냉정하고 정이 없어요.” 지방에서 올라온 어
떤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었지만 
나는 그 말에 ‘더 이상 정이 많아지면 어
떻게 되는 거야? 나는 이 정도도 
충분하고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낄 때도 많은데…’ 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쓴웃음을 져버렸다. 

이런 일이 있었다. 친구랑 강화도에 
놀러갔을 때였다. 우리는 시내관광을 마치고 다음에
는 시내에서 좀 벗어난 곳에 있는 절에 
가기로 했다. 절에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되는
데 그 날은 휴일이라 갈아타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시내에 돌아
갈까? 아니면 택시를 타고 절까지 갈까? 
친구랑 한참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까 버스에서 만
났던 어떤 애기엄마가 우리 이야기를 
듣고서 “지금 남편이 우리를 마중하러 올테니까 방
향도 똑같으니 우리 차를 같이 타고 가요.
 절까지 데려다 줄께요.” 라고 말해주셨다. 그 
때에 우리의 reaction은

친구 : 정말이에요? 감사합니다.
나 : 미안해요.
결국 우리는 아주머니 차를 타고 절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절 구경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왜 아까 아주머니한데 미안하
다고 했어? 고마운 거 아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미안하다고 생각해.” “아
주머니가 그렇게 해주고 싶어서 그러시는 
건데, 만약 해주고 싶지 않으시면 처음부터 그
런 소리 안 하시는 거 아냐? 그러니까 그냥 고맙게 타면 되는 거 아니었어?”

그 때 나는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때문에 아주머니 식구가 귀찮을까봐 그것이 미안
해서 그렇게 말했던 건데… 왜 친구들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할까? 라고 혼자 납득이 
가지 않고 속상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마치 한국사람이랑 
일본사람의 국민성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일본사람 같은 경우 대체적으로 communication할 때 
상대방이 말하지 않은 마음 속에 있
는 말까지 들으려고 한다. 우리는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잘하지 않은 편이라 서로가 눈치
를 채면서 상대방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려고 한다. 마치 눈에 안 보이는 자로 눈
에 안 보이는 상대와의 거리를 재려고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서로가 편하
고 상대방에게 방해를 주지 않은 방법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특성은 뭔가
를 정할 때나 거절할 때 부탁할 때 많이 볼 수 있다.)
 한국사람이 좀 다르다. 주장도 강하
고 확실히 하고 머리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랑 입에서 나타나는 말이 똑같다.

처음에는 한국사람과 이야기할 때 너무 당황했다. 
일본에서 오블라토에 보장되어 있는 것 
같은 인간관계에 익숙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라면 “글쎄요…”라고 해서 말을 얼
버무릴 상황일텐데 여기에서는 그런 
원쿠션없이 어이없이 넘어간다. 하지만 생활하면서 지
금은 그런 솔직하고 상대방과의 거리를 
재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너무 편하고 마음에 들
고 있다. 또 여기에서는 애매하게 돌려서 
돌려서 말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와의 관계에 오
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솔직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점에서
는 나는 정말 완벽한 한국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전엔 중국사람이랑 일본사람이 
구별이 잘 안됐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나를 
한국사람 같다고 한다. 분위기가 그렇다고. 
단(이상한 말투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외
국에 살다가 돌아왔냐?”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냐?” 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튼 점점 
한국사람화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언젠가 일본에 가면 사람들이 나더러 
“한국에서 유학 오셨어요?”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상대방과의 거리를 재지 않아도
 될 것같다. 또. 원래 사람은 그래야 되는데 너무
나 충격적이고 강도도 높고 당황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생활하면서 그런 관계
가 너무 편하고 마음에 들었다. 

한국사람은 정말 정이 많다고 생각한다. 
유학생이었을 때도 직장생활 하고 있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 
수도인 도쿄 같은 경우 사람의 정은 거의 볼 
수가 없게 되었는데 서울은 아직까지 
정이 많다. 나에게는 정말 신기한 일이고 내가 이렇
게 도시 생활하면서도 지치지 않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 기질 가운데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솔직함“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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