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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코스와 폴리스의 중간지점.
게시물ID : economy_52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단해요
추천 : 1
조회수 : 57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1/04 23:06:34
사람이 모인 공동체(이하 조직)는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더 이상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일들이 발생한다.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노동의 한계생산성이 체감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조직은 늘 불필요한 인력을 감축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상시인력보다는 임시직의 비중을 높인다. 즉, 조직은 일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지면 임시직으로 사람을 충원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사회에 상당한 문제를 던져 준다. 조직입장에서는 비정규직과 같은 임시인력을 가동하는 것이 이익일 경우가 있다. 정부에서도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를 합법화했다. 그리고 이것은 임시직, 계약직, 파견직 등으로 불리고 있다. 정부나 관련 기관 역시 이를 이용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것은 애당초부터가 어불성설이었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 대비 낮은 임금과 차별에 고통을 받는다.
 
조직에서는 단순하고 쉽게 대체가 가능한 일을 비정규직화한다. 즉, 핵심인력만을 남기고 모두 대체인력으로 전환하는 조직이 대부분이다. 대체인력들은 숙련도가 낮아도 할 수 있는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다 보니 늘상 고용불안이라는 해고조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직입장에서 대체인원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일은 '비용절감'이라는 큰 틀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애당초 정부가 의도했던 노동의 유연성에서 파생된 개념이 조직의 인건비지출의 최소화라는 결과를 낳았다.
 
산업혁명을 전후로 하여 영국에는 방직산업이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자본의 노동력 착취라는 어두운 그늘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우리는 배웠다. 생산의 3가지 요소는 토지,노동,자본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라는 것은 자본이 생산의 핵심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노동과 토지는 자본에 가리워져 버렸다. 그리고 노동과 토지 역시 자본화되었다. 그 두껍고 말 많은 막스의 자본론을 읽지 않더라도 우리(나)는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체험하고 살아간다.
 
자본주의가 무서운 이유는 인간을 자본의 노예로 만들기 때문이다. 노동을 통하여 생산을 하고 분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그 기능을 대체해 버린 것이다. 자본은 노동의 가치를 현저하게 훼손시켰다. 우리 가까운 곳에는 주식,펀드,부동산,보험,연금 등이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탐욕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탐욕'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 탐욕을 달성하기 위해 '경쟁'이라는 합법적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정의(justice) '인 셈이다. 인간은 여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경쟁이라는 합법적 전쟁을 태어나면서 부터 죽을 때까지 한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공동체'를 말할때 '다같이 사는 사회'를 언급한다. 그런데 경쟁을 통한 탐욕의 달성이라는 시스템에 갖혀 있는 이상 누군가는 도태되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 희생이 없이는 번영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부터에서 시작된 노예제도가 그걸 입증해 주고 있다. 민주주의의 시초라 하는 아테네 역시 시민이라 하는 특권층이 사는 폴리스는 노예들이 살았던 오이코스(Oikos)에 기반을 두었다. 이 오이코스는 요즘의 에코(Eco)로 변하여 불리웠다. 우리가 사용하는 Economy라는 것도 그리스어인 Oikonomia에서 파생된 것이다. 오이코스에서 노예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생계문제가 해결되면서 폴리스의 민주주의는 꽃을 피운 것이다. 우리 사회도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처럼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으로 나뉘어 수천년 동안 살아왔다. 신분제도는 근대화의 물결로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존재한다.
 
민주화를 원하고 함께 살기를 바라는가? 그러면 생계는 누가 어떻게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 정치민주화와 경제민주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다만 정치민주화는 머릿속의 관념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고 경제민주화는 탐욕이 정의로 위장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을 정리한다. 이상과 현실은 만나지 않는 평행선이다. 그런데 언젠가는 만날 것이라고 믿으며 이상과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바로 삶이다.
 
우리는 폴리스와 오이코스가 만나는 그 접점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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