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09~10시즌에도 제구는 고질적인 문제였습니다. 대신 KBO에서 탑클래스(저는 패스트볼 만큼은 류현진 김광현 못지않은 선수라고 생각합니다)에 속하는 패스트볼을 바탕으로한 힘으로 찍어누르는 피칭이었죠. 구위가 좋다보니 타자들이 안좋은 공에도 배트가 나가게 되어 결과적으로 범타로 물러나거나 혹은 파울이 되어 볼카운트가 유리해져 쉽게 승부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패스트볼의 구위를 잃어버린 11~12시즌에는 타자들이 쉽게쉽게 안좋은 공을 걸러내어 볼넷을 허용하고 카운트 잡기위해 들어가는 쉬운공을 난타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받은 군면제를 통해 벌었던 2년을 고대로 꼬라박은 셈이죠. 밸런스도 좀 무너진거 같고, 부상도 좀 있었던거 같고. 아무튼 굉장히 실망스러웠던 2시즌이었습니다.
그래도 젊은 선수고, 선수 생명에 큰 지장을 줄만한 큰 부상을 겪은것도 아니기 때문에 선동열 감독의 조련을 받는다면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이건 뭐 기대를 완전히 상회하는 모습입니다. 구위를 회복한 패스트볼이 낮게낮게 제구가 잘되기 시작했고 체인지업이나 슬라이더도 예전보다 훨씬 예리하게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정신적인 면에서도 굉장히 성숙해진게 느껴집니다. 사실 양현종 선수가 박병호 선수에게 홈런을 맞았을때 제가 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아쉽고 그렇더라구요. 그전까지 워낙 호투를 펼쳤고, 또 실투가 아닌 아주 잘 제구된 공을 그냥 잘쳤다고 밖에 할말이 없는 타격으로 홈런을 만들었으니. 팬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속이 타는데 본인은 오죽했겠습니까. 실제로 바로 다음 타자인 강정호 선수에게 2루타를 허용하며 흔들렸지만, 거기서 더이상 무너지지 않고 이닝을 마무리하는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또 기아는 영봉패를 당하긴 했지만 넥센 투수진에 완전 눌린 경기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10개의 안타와 4개의 볼넷을 얻어내는 나쁘지 않은 공격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점을 뽑아내질 못했는데, 이런 흐름은 (압도적으로 상대 투수에게 당하는 것보다) 오히려 투수에게 더 나쁜 영향을 주게 됩니다. 꾸역꾸역 막아내는 투수와 완벽한 피칭으로 압도하는 투수가 펼치는 투수전에서 오히려 압도하던 투수가 한순간의 위기에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많죠. 결국 투구라는건 마인드컨트롤의 싸움이니까. 수많은 타자들이 나가고 결국 범타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며 굉장히 흔들렸을만 한데도 홈런 이후엔 큰 위기없이 잘 넘어가는 모습이 너무 듬직하고 멋있고 그렇습니다.
이겼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양현종 선수가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오랜만에 오유 야게에 조금은 긴 글을 쓰게 되었네요.(사실 별로 대단한 내용도 없습니다만은...) 이번 시즌에 기아가 우승을 하려면 09년에 그랬던 것처럼 좌완의 부재라는 팀의 아킬레스건을 양현종 선수가 잘 커버해주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 역할을 충분히 잘 수행해 주고 있으니 이번 시즌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분위기가 너무나도 좋은 넥센과의 3연전, 양현종 선수가 등판하는 경기를 잡지 못하면 자칫 스윕을 당할 위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렇게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네요.(물론 더 최악의 상황은 양현종 선수가 넥센의 타선에 난타당하며 일찍 무너지거나 양현종 선수가 잘 막은 경기를 필승조를 모두 소모해가며 결국 지는 상황이겠지만 어쨌든) 선동열 감독이 삼-두-넥 9경기에서 4승5패 정도의 성적만 거뒀으면 좋겠다고 했고, 저도 그정도면 괜찮은 성적을 거두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과연 이번 주말 두경기중 한 경기를 가져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네요. 그러는 의미에서 병현이형 우리가 시즌 첫 선발승 선물했으니까 내일은 고향사랑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