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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게시물ID : gomin_525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친구Ω
추천 : 0
조회수 : 21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0/01/23 00:41:29
2006년 겨울 즈음의 일이다.
유독 마음이 잘 맞았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얼마간을 아주 감감무소식으로 지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수화기에 대고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허허 웃더니 한다는 말이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아주 좋은 자리가 났으니
이리로 와서 서울구경도 좀 하고 돈도 벌어가라는 것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주는 월급액수라는 것이 대학생으로서는
선뜻 만질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터럭만큼의 의심도 않고 고맙다 하며 전화를 끊고는
그 길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들과 부딪히는 술잔은 언제나 즐겁기 마련이다
돈 많이 준다는 그 아르바이트도 물론이지만,
떠나기 전날 밤부터 친구와 함께할 한잔 술생각으로 맘이 들떴다.
결국 다음날 아침까지 선잠 한번 이루지 못하고 고속버스에 몸을 실은 것이다.

그 덕분인지 나는 꿈을 한편 달게 꾸는 것만으로 서울에 도착했다.
코흘리개 적만 하더라도, 소가 밭을 갈아엎는 풍경이나
닭 울음소리에 부산해지는 아침이 익숙했던 나에게
서울의 공기는 놀랍도록 매웠다.

다르긴 다르구나 하며 혼자 실없이 웃음 짓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저 멀리서 웃으며 손을 크게 흔든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묵을 숙소로 함께 향하는데
이놈의 지하철 노선이란 것이 무에 이리 복잡하단 말인가.

이리 내리고 저리 갈아타며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잡스러운 얘기들을 주고 받으며 걷는데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저기 놀이터에서 좀 앉았다가 가잔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사실은 전화통화로 얘기한 일이 아니라
다른 일거리란다. 별 생각 없이 다단계냐며 농을 걸었더니
별안간 정색을 하며 네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 한다.

아니면 말지 그놈 참 옹골차게 성내네 하며 말았다.
이리저리 끌려가다 당도한 건물 앞에서
이순신 장군마냥 당당한 자세로 우리가 일할 곳이다 하길래
쳐다보는데 어찌된 회사가 간판 하나도 없는 것이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계단을 꾹꾹 밟아올라 들어선 사무실에는
온통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득시글대는 남녀들 하며
한쪽 벽면에 진열되어 있는 각종 건강보조식품 등등.

정식으로 아르바이트생이 되기 전에는 교육을 받아야하니
얼른 강의실로 들어가 대기하란다.
나같은 사람들이 서른명 가량 되었다.

벌써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아채고는 대성통곡하는 아가씨,
군 제대한지 얼마 안되어보이는 어리버리한 청년들
그리고 그들과 매한가지로 두리번거리기 여념없는 나까지
시쳇말로 다들 아주 벙쪄있었다.

웬 사내 하나가 무슨무슨 지부장이라며 들어오더니
한참 사람들을 다독거려놓고 잔뜩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결국 요지는 다단계 사업이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생각
하는 것처럼 불법적인 것이 아니며, 6개월 정도만 일하면
한달에 천만원 정도 벌어들이는 건 큰일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놈들아, 그러면 이때까지 내가 잘살아보려고 도서관에서
책 붙들고 헤멘 그 시간들은 다 헛거냐! 이렇게 대갈하고 싶었지만
내가 그리 용기있는 놈이 아니라는 것만 새삼 확인했다.

나보다 먼저 와서 소위 '사업'을 시작했다는 사람들은
하루 내내 내게 말을 붙이려고 노력하고 어떻게든 내 생각을
돌리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그저 이 놈들이 어떻게든
나한테 돈 울궈낼 생각에 눈이 벌겋겠지 하고 경멸하며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그저 다시 짐싸서 고향으로 내려갔으면
하는 바램 뿐이었는데, 난 관두고 갈테니까
짐가방 달라는 말만 나오면 앉혀놓고
1시간은 족히 설교를 해대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나는 못하겠다, 나는 안하리다 하며
끝끝내 버티고 있으니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식이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왜 멀리 차버리려하냐는 거였다.

나를 서울로 불러올렸던 친구놈도 마찬가지였다
무릇 대학생이라면 격동의 80년대만큼은 못하더라도
시대의 과오를 성토할 수 있는 뜨거운 피를

가슴에 지녀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티비와 컴퓨터 앞에만 붙어앉아있는 사람들이
대학생 대접을 받는 시대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기까지 하다며,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나름의 정의를 부르짖던 그 친구가 지금 이렇게
황금의 노예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굉장한 씁쓸함으로 다가왔다.

끊임없는 회유와 친구의 강권 속에 나흘을 보내고
5일째 되는 날 겨우 짐을 고스란히 돌려받아 거리를 나섰다.
지하철역까지 어떻게 가는지만 좀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그간 자주 부딪혔던 아가씨가 바래다 준다길래 쭐래쭐래 따라나섰다.

시내 버스에 올라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아가씨가 자기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근사하게 차려서
전국에 체인점을 열어 회장님 소리 듣는 것이 꿈이란다.

나는 굴러들어온 복을 차고 고향으로 내려가지만
자기는 꼭 다단계 사업을 통해 크게 밑천을
모아서 성공할 것이니 부러워 말란다.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그 아가씨의 눈동자는
단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결연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더 이상 대꾸하기도 싫어 그러려니 하고 돌려보낸 후
터미널에서 버스시간을 알아보니 출발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단다.

대합실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도대체 무엇이, 내 친구로 하여금 난로도 없는 춥고 휑한 그 곳에서
황금 만세를 외치게끔 만들었는지 나는 절대로 알고 싶지 않았다.

고향으로 내려와 맘을 추스린 다음 전화를 걸었다.
그곳에서 자꾸 일할 요량이면 네 어머님께 전화드려
모든 걸 이야기해버리겠다고, 다 때려치우라 했더니

우리 어머님 지금 병환 중이신데 니 전화 받고
쓰러지실 수도 있다, 그리 되면 너 가만 안둘 것이다 하길래
덜컥 겁이 났다. 아들네미는 다단계에 빠져서 돈을 쓸어붓고 있을테지,
편찮으신 어머님이 충격으로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집안이 흔들릴 일이니
그마저도 할 수가 없어 홀로 고민만 하며 세월을 보냈다.

자꾸 전화 문자메시지 이메일로 설득하고 달랬더니
효험이 있었던지 다 관두고 막일이라도 할 생각이라며 연락이 왔다
에라이 경을 칠 놈 진작부터 그럴 것이지 하며 그제서야 맘을 놓았다.

그러다 다시 몇달만에 연락이 닿았는데 뜬금없이 어디어디라며 나오라고 한다
깜짝 놀라 부랴부랴 옷을 챙겨입고 약속장소로 나갔더니
그 건장한 청년은 어디가고 볼이 홀쭉 들어가 안쓰럽기가 그지 없는 것이다.

그 놈의 자존심은 아직 변함이 없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지가 다 사겠다는 걸
겨우겨우 말리고 이집에서 저집으로, 한잔 두잔 여러순배가 돌고
서로 거나해진 채 막차로 들른 술집에서 육회를 시켜놓고 그제서야 물었다.

그래, 돈은 얼마나 잃었느냐
이백만원 상당이었는데 도로 쓸어담아왔으니 손해는 없다
에라 몹쓸 놈, 돈 도로 받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나도 속았다는 걸 알고부터는 너 볼 면목이 없더라
시끄럽다, 이제는 다 옛일이고 우리는 변함없는 벗이다

그러고서 한잔을 마시는데 예전 그 패기는 다 어디로 갔는지
잔뜩 기죽은 얼굴이 그렇게도 서러워뵈었다.
우린 아직 젊으니 실수할 수도 있지 하며 애써 다독이는데

회한이 복받쳤는지  미안하다며 꺼이꺼이 우는 바람에
결국은 나도 친구 손을 꼬옥 붙잡고 엉엉 울어버렸다.

세상에 공짜 없다는 말, 비싼 수업료 내고 깨달았으니
그거야말로 다행 아니겠느냐며 사람들 북적이는 술집에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머시매 둘이 엉엉 울었다.

이제 그 놈은 직업군인 한다고 바쁘고
나는 내 꿈을 찾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그 얼마만에 만나더라도 소주 한잔은 나누자꾸나
우리는 친구니까, 그래 친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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