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은 단순한 만화인가 정치철학서인가.
멘붕멘붕
요즘 진격의 거인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많다. 초반에야 두말할 것도 없이 최근 최고의 만화라는 칭송을 받았지만 10권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처음엔 재미있지만 뒤로 갈수록 뭔가 이상한 만화’라는 평이 일반적이다. 그냥 인간이 거인을 도살하며 그 영토를 확장 해나가 살기 좋은 세상 만드는 만화일 것이라는 초반의 예상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도 아닌 주인공 엘런이 거인이 되었으니 ‘작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따위 스토리 구조를 만들어내느냐’는 투정어린 불만들이 나올만하다. 그러나 나는 이 부분에서 바로 이 만화가 가지는 정치철학적 메시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에서 엘런이 왜 거인이 되었는지, 이 만화의 결론은 어떻게 될 것인지 설명하고 예상하려고 한다.
나도 처음에는 인류의 적인 거인과의 전쟁을 다룬 인류의 투쟁이 주제라고 생각했다. 또한 엘렌이 거인이 되었을 때 그 의미를 도무지 유추할 수 없었다. 그러나 35화를 읽고서 생각이 달라졌다. 35화에서 월 로제 안쪽에 거인이 출현하여 인류를 다시금 공격한다. 그에 따라 엘렌이 속한 조사병단은 거인과 전투를 벌이며 한편으로 구멍이 뚫린 벽을 메꾸기 위해 우선 구멍 난 부분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구멍은 찾을 수 없었다. 월 로제는 붕괴되지 않았던 것이고 거인은 외부에서 침입하지 않았다. 그 말은 월 로제 내부에서 거인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코니의 어머니로 생각되는 거인의 존재는 월 로제 주민들이 거인으로 변화했음을 추리가능하게 한다. 즉, 거인은 곧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류를 공격하는 거인의 존재는 인류 그자체고, 거인과 인간의 싸움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싸움인 것이다. 이것이 『진격의 거인』의 결말을 예상해보기 위한 나의 첫 번째 단서가 될 것이다.
두 번째로 벽안에 갇혀 있는 거인들의 존재이다. 첫 번째 논증에 의해 이들 역시 인간임을 가정해야 한다. 지금껏 적이라고만 생각했던 거인들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이용됨은 물론이고 방어벽 역할이라는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매우 고된 일을 해내고 있다는 것은 인간과 거인의 관계가 초반에 봐왔던 투쟁적인 관계 또는 인간을 위협하는 관계가 아닌 거인이 인간에 의해 지배되어질 수 있는 관계임을 제시한다. 주인인 인간에 의해 노예인 거인(또 다른 인간)이 착취당하는 관계가 그려진다.
세 번째로 엘런과 함께 조사병단에서 고된 훈련을 버텨낸 라이너와 베르톨트가 사실은 월 마리아를 부수고 월 마리아 주민을 유린했던 거인이라는 것, 애니 레온하트의 존재 등은 거인의 종류를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인간에서 거인으로 또는 거인에서 인간으로의 변신이 자신의 의지에 따르며 제약이 없어 자유로운 거인(이하 자유로운 거인)과 그렇지 못한 거인(이하 일반 거인)으로의 분류이다. 자유로운 거인이 거인으로 현신해 있을 시 그 두뇌의 명석함이나 신체 능력이 독보적이여서 일반 거인에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리더의 역할을 한다. 이는 흡사 혁명에 있어, 일반 민중을 깨우치는 혁명적 리더의 역할과 그들을 따르는 민중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 나는 이 만화를 계급 갈등의 투쟁을 그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각각의 벽들은 기득권과 비기득권을 나누는 기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세 개의 벽 중 바깥쪽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살기 척박한 환경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거인의 위협에 가장 노출되어 있다. 세 번째 벽인 월 마리아 밖의 상황을 거인(인간)들끼리 살기위해 투쟁하는 공간으로 가정한다면, 왜냐하면 그곳은 보호벽이 없기 때문에 맹수의 위협이 있을 수 있고 문명과는 동떨어진 곳이라는 설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월 마리아 내부보다도 더욱 살기 어려운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벽 안쪽으로 접근해 갈수록 살기 좋고, 안전하며, 가장 기득권에 근접할 수 있는 장소라고 예상 가능하다. 가장 설득적인 근거는 월 시나 내부 한 가운데에는 왕이 있기 때문이다. 왕정에서 인간은 존엄하지 않다. 왜냐하면 왕만이 존엄하기 때문이다. 인권이 아닌 왕권이 존재하며 무소불위의 권력과 최고의 기득권을 가진다. 왕은 다른 인간이 생사를 관장할 수 있고, 왕 자신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기득권, 권력을 가진다.
그렇다면 벽을 세운 것은 거인으로부터 안전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닌 내부와 외부를 구분 짓고 그들을 차별하고 내몰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공고히 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정 하에서 거인들이 벽을 뚫고 내부로, 내부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은 바로 혁명을 의미한다. 투명한 천장을 깨부수고 내부로 들어와 위계를 없애는 것이 바로 혁명이다.
게다가 월 마리아가 무너진 상황에서 월 로제 주민들은 벽 외부인에 비하면 분명 기득권층이지만, 월 시나 주민들과 왕에 비하면 비기득권층이다. 월 로제 주민들은 거인들로부터 월 시나 주민들과 왕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입장에 서있음을 가정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이러한 예상은 월 로제 안에서 주민들이 거인으로 변신하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을 사실상 자신들이 기득권자가 아니라는 것을, 왕으로부터 이용당하고 농락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벽 외부의 거인들이 벽을 부수는 것이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면 벽 내부에서의 거인들의 활동은 위로부터의 혁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여기까지는 44화까지의 내용을 통해 내가 유추해낸 것이다. 엘렌이 어서 집 지하실에 당도해 아버지가 남긴 비밀을 풀고, 실제 작가가 마지막 권을 그려내야지만 진짜 결론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으로 결론을 예상함과 동시에 작가에게 위협을 가하려고 한다. 엘렌이 자신의 칼을 벽 외부에 거인들에게서 벽 내부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왕에게로 돌린다면 이는 혁명을 이야기하는 정치철학서로, 그러한 정치철학을 담은 문학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지하실에서 거인을 인간으로 돌려낼 방법을 찾아 혁명하려는 거인들을 힘없는 인간으로 돌려놓고 그것을 벽 내부의 왕에게 그 업적을 돌린다면 이는 그저 그런 만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될 것이다.
현재 일본은 극우 파쇼 아베 총리에 의해 과거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미화하며 다시금 군장을 꾸리려 하고 있다. 전쟁을 통한 경제성장이 그들이 바라는 최고의 시나리오 일 것이다. 전쟁은 민주주의를 망치고 일왕과 총리자신에게 막강한 권한을 돌려줄 것이다. 이 만화 『진격의 거인』이 그러한 아베의 의도에 발맞추는 망작이 될지, 그에 반하고 민주주의와 인문주의를 추켜세우는 걸작이 될지는 작가의 손끝에 달려있다.
베스트 가서 좀더 많은 사람과 토론하고 싶습니다. 추천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