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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서울-해남 1박 3일 여행기(2)
게시물ID : bicycle2_71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꼴쥐투윈수
추천 : 3
조회수 : 173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5/06 11:04:38



추억의 혜전대학..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것은(표지뿐이지만) 처음이다.

혜전대학에는 나름 아픈 추억이 있다. 

2002년 복학하고 여름이 되었을때 대천해수욕장으로 피서를 왔다. 그 당시 전역한 이후 마음을 다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던 상태여서 학교를 계속 다닐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일자리를 찾는게 좋은가...로 고민하고 있던 당시였는데 답답하고 혼란 스러운 마음을 다잡고자 무작정 떠난 휴가 였다. 

당시 민박집 옆에 슈퍼가 있었는데 거기엔 젊은 여학생이 일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작고 귀여운 여학생이었는데 여름이라 엄청 바쁜데도 불구하고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긴머리가 찰랑거리는 활발한 여학생이었다.

2일째였던가.. 잠이 오지 않아 결국 밤에 다시 해변가로 나왔다. 그날 비가 오는 바람에 해변에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고요한 밤의 해변을 걸으며 앙드레가뇽의 앨범을 듣고 있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백사장에 쪼그려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담배를 피고 있는데 누가 내 어깨를 톡톡하고 쳤다. 순간 누군가 하고 뒤 돌아봤더니 그 슈퍼의 여학생이 그 미소를 짓고 나에게 물어봤다.

"뭐 듣고 있어요?"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들으니 그 슈퍼집 딸이라고 하면서 방학기간엔 이렇게 내려와 일을 돕는다고 한다. 고등학생인줄 알았더니 대학생이었다. 혜전대학을 다닌다고 했다. 나도 슈퍼집 아들이라 일 돕는거 짜증난다는 것을 공통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름밤의 분위기가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많이 풀어준 덕분이었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등 뒤로 낡이 밝아오고 있었다. 일해야 되는데 큰일이라며 웃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오늘은 민박집 들아가서 잠 안자고 버티겠다고 약속하고 해어졌다. 물론 들어가서 퍼잤다.

다시 밤이 찾아왔고, 다시 해변으로 나갔다. 그날은 날시가 좋아서 해변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술마시는 청소년, 여자 꼬시러 돌아다니는 패거리들, 딱봐도 불륜커플 등등..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 아가씨를 기대없이 찾아다녔다. 전화번호라도 받아둘껄 그랬나... 하긴.. 오늘은 자겠지. 낮에 또 일했을꺼 아냐. 이런 생각을 하며 어제 그곳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갔더니 그 아가씨가 거기에 있었다. 

"잤죠?"

날 보자마자 또 그 웃음을 보이며 제일 처음 물은 말이었다.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예. 들어가자마자 잤어요."

그리고 또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밤을 지새웠다.

새벽. 소란스러움이 잦아들은 새벽이 찾아오자 우리들에게도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거냈다. 

저 내일.. 아니 오늘 올라가요. 

예....

즐거웠네요. 즐거운 추억이 될것 같아요.

저도요.. 재미있었어요.

저기... 죄송한데...

예?

아니요.. 그냥..

말해보세요.

전화번호.... 알려주실래요?

전화번호요?

예... 아니.. 뭐.. 그냥 뭐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저기... 그냥.. 뭐 가끔 안부라도 물으면서... 뭐... 

나는 어리버리 대면서 조심스럽게 전화번호를 물어보자. 갑자기 그 아가씨가 나에게 뭔 쪽지를 쥐어주고 일어섰다.

'안물어볼까봐 걱정했어요. 남자가 왜 그래요.' 하더니 또 그 웃음을 보이곤 그 긴머리를 휘날리며 뛰어갔다.

나는 얼빠진 상태로 그 쪽찌를 들고 뛰어가는 뒷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쪽지를 펴보자 전화번호 10자리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 이후 어렵사리 전화를 하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횟수도, 통화시간도 조금씩 늘어갔다. 만나려 한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거리였지만 이상하게 서로에게 조심스러웠다. 계속 존대했으며 서로에게 필요이상으로 가까이 가는걸 두려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어느순간 부터 통화가 힘들어 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화를 못받는 횟수가 많아지고, 어쩌다가 통화가 된다고 하더라도 바쁘다는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가끔씩은 어머님이 전화를 받으시기도 했다. 물론 그런 일이 있을때마다 다시 전화가 오고 문자가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언가 변해간다는 느낌을 받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여름이 찾아왔다. 나는 어떤 기대감을 품고 다시 대천으로 향했다. 놀래켜줄 요량으로 대천에 간다는 연락을 안하고 갔다. 다시 그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슈퍼를 찾아갔지만 그녀는 없었다. 반면에 그녀의 오빠로 보이는 어떤 남자가 있었다. 전역이 얼마 안남은 오빠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사람인가 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저.. 작년에 있던 여자분은 안나오시나요?"

"아... 예..."

"....... 담배 한갑 주세요..."

"2000원 입니다."

"예.. 수고 하세요."

"저기요..."

"예?"

"혹시..... XX씨 아니세요?"

"예? 맞는데요."

"역시... 동생 찾아오셨죠?"

"아... 뭐... 그건 아닌데.... 아니. 맞습니다. 혹시 00씨는 안내려 오셨나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입원했다고 한다. 내 이야기를 들었는데 혹시나 했었다고... 나는 민박집에서 지갑만 들고, 친구들에게 이야기도 안하고 대전으로 향했다. 무작정 병실에 찾아가자 머리에 두건을 쓴 그녀가 있었다. 

그녀의 긴머리도, 그 웃음도 그녀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독한 항암제는 그 모든것을 그녀에게서 빼앗아 가버렸다.

나는 왜 나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냥 그 옆에 앉아서 그냥 그렇게 아무말 없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서울로, 일상으로 돌아왔고, 그리고 몇달 후 나는 그녀의 오빠에게서 전화를 한통 받았다.

그렇게 나의 여름은 다시 한번 지나갔고, 나는 그 이후 혜전 대학이라는 이름을 잊고 살았다. 

그게 몇년이 흐르고 다시 혜전대학의 표지판을 보게 되자 다시 2002년 여름의 추억이 물 밀듣이 밀려왔다..............는건 다 뻥이다.

나에게 그런건 없다. 앙드레 가뇽도 없고, 대천 해수욕장 가본적도 없다. 100% 뻥이다.


실제로 2002년 여름에 혜전대학에 대한 아픈 기억의 실제는 이러하다.

2002년 여름에는 겁내 노가다 하고 있었는데 새벽에 일찍 나가야 하는 관계로 일찍 자곤 했다. 당시 자기 전에 라디오를 틀어놓고 자곤 했는데 잠 들랑 말랑 하면 혜전대학 광고가 나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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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소리)
여 : 여보세요

남 : 나야

여 : 뭐야. 왜 이렇게 연락이 없었어? 걱정했잖아!

남 : 너말야. 내가 좋은데 취직 했으면 좋겠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지?

여 : 혹시. 거기?

남 : 그래 혜전대학

여 : 아~ 혜전대학! 나도 혜전대학!

남&여: ㅋㅋㅋㅋㅋ

(멘트) 충남 홍성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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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도 끝도 없는 이 광고를 들으면 하루종일 노가다에 쩔어서 피곤한 상태에서도 짜증이 확 밀려오면서 잠이 깨곤 했었다. 

아... 그리운 2002년이여... 암튼 그 혜전대학을 드디어 찍었다.

잡설은 이만 하고 다시 보령으로 슝슝...

지금 기억으론 홍성에서 보령을 가는 길에는 언덕이 계속 있었다. 언덕을 넘으면 언덕이 또 있고, 또 넘으면 또 있고.

배는 계속 고프고, 뭐 어찌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멍하니 페달질만 계속 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두번째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괴롭고 괴롭고 또 괴로웠다. 온통 산밖에 안보이고, 휴게소도 없고, 오직 트럭이 가끔씩 심심하지 말라고, 외롭지 말라고 흙탕물을 튀겨주고 가곤 했었다. 이렇게 두줄로 표현했는지 진짜 힘든 순간이었다.


어찌저찌 보령 도착. 이때 시간 대략 오후 6시.

자네 직장이 어딘가?
예. 저는 한국 후꼬꾸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한국 어디? 후루꾸? 
(자동차 부품을 건설하는 건실한 회사라고 한다)

이때 시간은 대략 6시 정도 되었다. 보령에서 군산까지 한번에 갈까하고 조금 고민을 했다. 무리하면 12시 이전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고민을 하다가 마침 여자친구를 바래다 주는 어떤 총각이 있길려 물어봤다.

여기서 서천까지 길이 어떤가요?

언덕이 좀 있는데... 힘드실껄요...

(뭐... 언덕쯤이야)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홍성에서 오셨나요? 홍성--보령 거리쯤 생각하시면 될껍니다.

홍성이라는 말에 바로 GG. 흐미... 그거리를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괴롭다.

오늘은 쉬자. 내일을 위해서....

대천으로 가서 모텔을 잡았다. 

모텔에 이야기해서 아예 들고 와버렸다. 

방을 구할때 일부로 욕조있는 방을 달라고해서(5천원 더 받더라...흘....) 우선 빨래좀 하고 대충 샤워했다. 

순천향대쪽에서 갈비 먹은 이후 생수와 포카리만 계속 마셔왔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그때까지 망할 콩국수집은 결국 못찾았다.) 무조건 뭣좀 먹기로 결정. 콩국수 집을 찾아 나섰는데 결국 또 못찾았다. 무슨 콩국수 먹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결국 중국집에서 짬뽕시켜서 맥주랑 먹었다. 원 계획은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서 마사지좀 해주고 잘라고 했는데 밥먹고 티비좀 보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잠들어 버렸다. 잠깐 정신 놓은줄 알았더니 11시더라.. 눈 한번 감았더 떳더니 3시간 지나 있었다. 흐미..

얼른 침대로 들어가 잤다.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2일차 : 자전거 여행의 백미는 산맥넘기(07/31)


출발전. 여관에서 한컷. 결국 9시 까지 잤다. 아주 푹 잤다. 어제 사놓은 컵라면을 아침으로 먹고, 출발.

자.. 가볼까! 하면서 자전거를 타니. 어? 이상하다... 싶은 마음에 보니 뒷타이어 펑크. 자전거 구입 이후 첫 펑크가 났다. 이럴때를 대비해서 펑크 수리용품 완비하고 왔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전거 포를 찾아갔더니 역시 실빵꾸.... 그것도 몇군데나...

아니...누가 도로에다가 스테플러 심을 버리는거야!! 타이어에 몇개가 박혀 있었는지...흐미... 암튼 수리했음. 다행히 도시에서 발견해서 살았다...에휴, 나름 운이 따른 여행이었다.


군산까지 55키로. 원래는 어제 전라도 들어갈려고 했는데.... 그나저나 이런 시골길 좋다. 차도 별로 없고.


전날은 비가 와서 다행(?)이었는데 이날은 해가 떠서 썬크림좀 발라주는 쎈쓰!

썬크림 바른데 앞쪽에 석재를 팔고 있었다. 나 또 이런거 좋아라 한다.

이건 자연돌을 깎아서 만든건가? 첨 봤는데 맘에 들었다.

요것도.

돌고래. 어딘가 표정이 어설픈 느낌이 든다.

설마 독수리는 아니겠지? 얼굴이 이상하다.

부엉이. 귀엽다. 새끼 부엉이도 같은 표정이다.

성모마리아와 부처님이 한 곳에. 이것이야 말로 종교 화합의 장 아닐런지..

석재 골목같다. 여기서 살면 진폐증 안걸리려나?

한참 달리다가 발견한 간치천. 난 처음에 간지천인줄 알고 이름에 간지난다 싶어서 사진찍었는데 찍고 나서 보니 간치천 이었다.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는 증거.

간치역. 이것도 간지역인줄 알았다. 

시골길. 좋다~ 하늘도 좋고~ 은나아~~

길가다 슈퍼 발견. 여기서 설레임을 원샷 해줬다. 어제부터 뭐든지 원샷 모드였다. 설레임을 손으로 쪼물조물 거려서 녹인다음 끝에서부터 주욱 짜 넣으면 원샷할 수 있음.

길 가다 만난 자전거 여행객. 삼천리 철티비를 타고 일요일에 출발 했다고 하신다. 진정한 근성가이!

설래임 먹고, 물 사고 다시 출발. 군산까지 가는 시골길은 달릴 만 했다. 날씨가 좀 덥기는 했는데 어제 받는 선글래스 끼고 달리니 좀 덜 더운것 처럼 보였다. 덜 더운것은 아니었다.

오후 1시 금강 하구둑 도착. 관광 전북에 어서오세요!! 얩!!!

역시 자전거 철푸턱. 

자.. 아침에 컵라면 하나 먹고 왔으니 군산에서 밥을 먹어줄까... 회를 먹을까, 아니면 오징어를 먹을까...

군산에 제일 마트. 아이스크림 50% 세일 합니다. 난 슈퍼집 아들이었기 때문에(뻥아님)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별로 안좋아하지만 여기서 다시 탱크보이 원샷 해줬음.

밥 먹으려고 여기저기 식당들을 기웃 거리며 보면서 갔는데 맘에 드는 곳이 없고, 맘에 드는 곳은 길을 건너야 하고... 이런 상황이라 다시 길 건너서 먹고 또 오기는 싫고, 그렇다고 아무곳이나 가기도 싫고 해서 계속 앞으로 가다보니 시내가 끝나버렸다..ㅠㅠ

또 밥을 못먹고 도시 하나를 지나가는 구나... 그래. 김제로 가서 먹자. 

이날은 몸이 풀렸는지 근육통도 없고, 컨디션도 상당히 좋아서 평속 25이상 꾸준이 밟아줄 수 있었다. 중간에 23번 국도를 타고 갔는데 길이 너무너무 좋아서 평지를 가는데도 마치 내리막을 가는 느낌이었다. 

김제로 연결되는 23번 국도를 이번 여행 최고의 길로 임명합니다.

근데 알고보니 자동차 전용 도로다. 김제 다 와서 알았다. 뭐 무사해서 다행이지. 사고 났으면 보상도 못받을뻔 했다. 어쩐지 트럭들이 유난히 빵빵 거리더라. 난 화이팅이라는 줄 알았지.. 에헷

김제에 도착해서 대충 짜보니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아니.. 뭐 어짜피 타임 리미트를 정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 조바심이 나기 시작해서 김제는 그냥 통과하기로 했다. 벽골제옆을 바로 통과했는데 들러볼까 하다가 그냥 통과 했다.

김제에서 정읍 가는길에 들른 지구대. 지구대소장님이 찬물도 주시고, 지도도 하나 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캄사!
심제에서 신태인을 거쳐 정읍으로 가는 길부터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출발전에 아침으로 컵라면 하나 먹고, 아이스크림 2개빼곤 물과 포카리로 연명해온것 아닌가. 

또 시골길임에도 불구하고 은근 차가 많아서 신경을 계속 쓰다보니 피곤해졌으며, 태양빛은 더욱 뜨거워져 가고 기온도 계속 높아져 가고 있었다.

조금씩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정읍가는 길 언덕위에 있던 슈펴. 처음엔 슈퍼 아닌줄 알았다. 무슨 폐가인줄 알았는데 슈퍼라 서있어서 그냥 들어갔다. 안에 계시던 할머니가 땀을 미친듯이 흘리며 험상궂은 놈이 들어오자 놀라셨다. 

바로 포카리 2개 따서 그자리에서 원샷 해줬다. 

진짜 이 당시에는 포카리를 개발한 사람의 발에 뽀뽀라도 할 수 있는 심정이었다. 완전. 인류 최대의 발명품중 하나이다!


할머님께서 포카리를 먹고 있는걸 보시더니 불쌍하시다고 물 얼은거 1.5리터를 하사하셨다. 순간 기쁨에 할머니에게 뽀뽀라도 해드리고 싶었는데 신고당할가봐 참았다. 선의는 거부하지 않는다.

이 물이 나중에 나를 살렸다. 이 물이 없었으면 완주는 불가능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6시 정도 된것 같은데.. 정읍에 도착했다. 여기서 아무거나 먹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발견한 감자탕집.

그리고 콩국수....ㅠㅠ 드디어 콩국수를 먹을 수 있구나..

저... 시원한 콩국수.. 맛도, 영양도 일품.. 김치도 대박 맛있었다.  콩국수 위에 띄운 얼음이 다 녹기도 전에 다 먹었다... 아.. 역시 최고. 결국. 드디어 먹고야 말았다. 콩국수. 정읍역 죄측에 위치한 왕대박 감자탕집의 콩국수 진짜 맛있습니다. 근처에 사시면 다들 드시러 가세요. 

먹고 나오니 보이는 농협 하나로 마트.
사실 이때 생각에 광주에 도착하면 해가 질것 같아서 여기서 영양식 초코바 구입하고, 전조등, 후미등 배터리도 갈고, 화장실도 이용하고, 옷도 반팔로 갈아입었다. 

이제 부터 슬슬 야간 라이딩 시작이었다.

정읍에서 장성을 가는 길에는 전북과 전남을 구분짓은 노령산맥이 있고, 산맥을 넘는 교통로 갈재가 있다. 첫번째 언덕 도전. 그전에 코딱지 만한 언덕이야 자주 넘어 봤지만 산맥을 넘는것은 처음이라서 나름 기대하고 출발. 끌바 하지 말고 올라가자!!

조금 올라가니까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 둘이 자전거를 새우고 있었다. 역시 자전거 타는 사람은 모두 친구. 반갑게 인사하고 얼음물 얻어먹고.

자전거가 고장나서 트럭을 히치하려고 기다리고 있단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동해따라와서 서울 들러서 해남찍고 부산간단다. 괴물들 같으니!!  생각만 해도 토나온다.

이런 저런 이야기 하고 있으니 트럭이 하나 온다. 같이 타고 가실래요? 하는데 그냥 올라가겠다고 했다. 

물론 나중에 후회했다.



갈재 중턱. 결국 여기서 섰다. 드럽게 힘들어...ㅠㅠ 미시령 같은거 논스톱으로 어떻게 올라갑니까? ㅠㅠ

전라남도다!! 드디어. 근데 갈재 정상에서 해가 저버렸다. 우선 정상에서 할머님이 주신 얼음물 오픈하고 한 10분 쉬어주고..

어두운데 다운힐은 상당히 위험할꺼란 판단아래 최대한 천천히 내려 가기로 마음먹었다. 가로등 같은게 하나도 없고, 달도 없어서 전조등 하나와 브레이크에 의지해서 갈재를 내려왔다. 덕분에 브레이크 패드가 다 닳아버렸다.

언덕을 내려오는 도중에 바이크 하나가 윙~ 하며 지나갔다. 부럽구나... 하면서 한참을 내려가 백양사역에 가니 그 오토바이가 있었다. 반갑게 인사하고 길좀 묻고, 초코우유 마시고 있는데 너무 맛있어 보여서 나도 초코우유 사먹었다. 물론 원샷-_-;;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서로의 안전을 기원하며 빠이빠이했다.

백양사에서 광주까지 가는길엔 샛길이 있다. 국도가 아니고 지방도인데 몇번인지는 잘 모르겠고, 새로 만들어서 도로 깔끔하고, 거리도 가깝고, 차도 얼마 없다. 밤은 깊어 가도 그 도로를 달리니 피곤한걸 몰랐다. 그냥 시원한 바람에, 새소리, 벌레소리, 물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야간 라이딩을 때려줬다. 

아주 훌륭한 구간이다. 강추 구간!!

우선 광주까지 가서 하루 잘까.. 아니면 그냥 계속 갈까.. 고민 하기로 했다.


이렇게 어둡다.

장성을 거쳐 광주로 입성. 광주 서족으로 들어가는데 임곡을 거쳐 가는것 같다. 자세히는 모르겠다.

광주에 들어가 처음 만나는 파출소. 경찰 아저씨들은 대체로 친절하다. 해남 가는 길을 물었더니 밤중에 죽을라고 가냐고, 찜질방을 추천해 주셨다. 커피마시고, 물 마시고, 비타천 마시고, 아저씨들이랑 노가리 까면서 30분 쉬었다. 

이 구간엔 특히 해병대 애들이 그렇게 많이 온다고 하면서 국토종단 하는 애들이 많다고 하시더라.

사진 찍겠다고 했더니 포즈 잡으셨다. ㅎㅎ 

여기서 고민을 참 많이 했다. 

체력적으로는 괜찮을 것 같았다. 결국은 길을 잃어 버리거나 위험한 야간 국도 상황인데 경찰아저씨들은 극구 말렸다.
나도 좀 걱정되기도 하고, 차라리 자고 4시쯤 출발하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략 160키로 정도 된다고 했는데 고민하다가 지금 안가면 금요일에 도착 못할것 같아서 밤새워 가기로 결정했다.

혹시 노숙을 하게 될지도 몰라서 신문을 얻고 출발했다.

광주여대 앞 편의점. 경찰아저씨들이 마지막 편의점이라고 해서 여기서 영양보충을 했다. 사리곰탕면, 참치김밥, 초코우유, 그리고 생생톤인지 뭔지...든든하게 먹고. 12시 30분. 나주를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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