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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소년
게시물ID : humorstory_3781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다고담
추천 : 0
조회수 : 27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5/06 15:34:16

'후-후-후우우-'

나는 입바람 부는 것을 좋아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것저것 입으로 바람을 부는 버릇이 있었다. 나뭇잎, 종잇조각 따위의 것에 바람을 후-하고 불면 그것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곤 했다. 바람을 불 때면, 그것들에게 마치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과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어른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불렀다. 입바람을 불다가 어른들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전 불어서 모든걸 넘어뜨릴 수 있어요!‘ 하고 말할때면 어른들은 ’이 거짓말쟁이야, 니가 불어서 넘어뜨릴 수 있는건 그저 종잇조각에 불과해!‘ 라고 말하곤 했다. 거짓말이 아닌데, 내가 바람을 불면 모든 것을 넘어뜨릴 수 있는데. 나는 거짓말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고 싶어 어른들에게 '저걸 넘어뜨려볼게요! ’하고 바람을 불었다. 그 뒤 보지도 않고 돌아오는 대답은 뻔했다. ‘넌 못해. 이 거짓말쟁이야.’ 하고.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에 있는 건물이 비워졌다. 그 건물에 있던 상가는 자주 갔었던 오락실도 있있고, 1층엔 맛있는 떡볶이도 파는 곳이었는데, 건물을 통째로 비워야 한다고 한다. 어른들은 그 건물을 무너뜨리고 다른 건물을 짓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많이 아쉬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 건물을 내가 무너뜨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입바람을 불어서, 건물을 넘어뜨려 증명해 보이면 나는 더 이상 거짓말쟁이가 아닐거야.‘ 하는 생각.

 

그렇게 난 매일 아침 학교를 가기 전에 건물 앞에서 입바람을 불기 시작했다. 건물에 내 바람이 닿도록 건물 주위를 빙그르르 돌면서 있는 힘껏 바람을 불었다. 나는 바로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바람은 바로 무너뜨리는 바람이 아니라, 영향을 끼치는 바람이니까. 건물은 서서히 약해질 것 이고, 그 뒤에 건물을 폭파 시키기 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이다.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어느새 건물을 폭파 하는 날이 5일 남았다. 5일 뒤면 폭약을 설치하고 건물이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건물 주변으로 무서운 아저씨들이 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난 그 아저씨들을 피해, 건물 앞으로 가서 바람을 불고 왔다. 이제, 건물은 5일 전에 무너질 것이다.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조금만 더 불면 된다. 조금만 더.

 

집에선, 그 건물이 보이는 창가로 가 건물을 보고 있었다. 멀리서도 나는 열심히 입바람을 후-후 하고 불었다. 내 바람이 닿는다면, 건물은 분명히 얼마 가지 않아 무너질 것이다. 그러면 나는 더 이상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후-후.

 

하루가 남은 날, 내일이면 건물을 무너뜨린다고 한다. 나도 힘을 내야했다. 있는 힘껏 입바람을 불었다. 이제 무너져야 하는데? 무너져야하는데? 내 바람으로 건물이 무너져야 증명할 수 있는데. 밤새 바람을 불고 온 다음, 집으로 들어가 창가에 서서 어느때와 다름 없이 바람을 불었다.

 

그 때, 지켜보고 있는 도중에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건물이 흔들린다. 사람들이 피한다. 멀리 떨어지기 시작한다. 건물이 무너진다. 건물이 흔들흔들 하다가 무너져 내렸다. 내가 해냈다! 내가 드디어 성공했다. 그러나 궁금해졌다. 건물은 폭파 된 것이 아니라 내가 바람을 불어 넘어뜨렸는지 정말 궁금했다. 건물이 폭파 된 그 곳으로, 무서운 아저씨들이 지키는 곳으로 가족들 몰래 집 밖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아저씨 오늘 이 건물 폭파하는 날이에요? ” “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내일 폭파 시킨다고 했는데 그 전에 건물이 무너지다니 나 원 참.” 내가 무너뜨린게 맞는 것이다. 내가 해냈다.

 

나는 집으로 걸어 들어왔다. 발에 힘이 빠져버렸다. 집에선 어디를 갔었냐며 혼을 내신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얼굴을 파묻는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내가 해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증명 해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말해도 여전히 거짓말쟁이일 것이다. 내가 침묵함으로써, 내가 내 스스로에게 침묵이라는 거짓말을 함으로써,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 이상 거짓말쟁이가 아닐 것이다. 나에게만 거짓말을 하면 모든 이들에겐 진실일 뿐이다. 거짓말은 때때로 침묵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침묵일 뿐인데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이라고 부른다. 나는 침묵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입바람을 불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은 내게 거짓말쟁이라 부르지 않았다. 나는 ‘어른스러워 졌네.‘ 소리를 듣는다. 나는 침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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