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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 뱃놀이 -2부-
게시물ID : humorbest_5272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16
조회수 : 1290회
댓글수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9/14 13:59:33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9/14 08:20:55




자리를 잡고 앉아 아낙을 바라보았다. 조금씩이었지만 배가 물결에 부딪히며
흔들리고 있음에도 아낙은 태연히 배 귀퉁이에 서서 먼 곳만을 주시했다.

"그렇게 너무 빤히 들여다보시면, 제가 무안스럽습니다."

아낙이 나를 내려다보며 웃음을 지었다.

돗하나 세우지 않은 배가 물살을 못 이기며 슬금슬금 강길을 떠내려가고 있었다.
아낙은 내가 무슨 말을 하기라도 바라는 듯 입술을 앙다문 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낭자는 이 시간에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답니까?"

"함께 뱃놀이를 떠나 줄 낭군님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분께선 어찌 이 시간까지 자리에 오시지 못 하셨답니까?"

"글쎄요. 저 강바닥 밑에서 밤잠을 이루시는지, 저 나무 위에서 달구경을 하고 계신지, 저도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아낙이 스르륵 하고 치맛자락을 끄는 소리를 내며 내 앞에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아낙은 고개를 슬그머니 내민 체 게슴츠레 눈을 뜨며 교태를 부리듯 내 얼굴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무사님께서는 왜 이 야심한 시각에 잠을 못 이루시는 지요?"

"최근 들어 바람이 차갑다 보니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지 않고선 잘 잠에 못 들곤 합니다."

아낙이 내 눈을 응시한체 깊은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허리에 칼자루까지 매시고 말씀이십니까?"

아낙이 손을 입가에 가져가며 소리내어 웃었다.
아낙의 웃음소리에 내 마음을 들킨 듯 뜨끔한 기분이 일었다.

"무인으로서 밤길을 나설 때에는 불안한 마음이 들다보니,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괜찮습니다. 무사님께서 저를 희롱하시려 검을 빼드시지만 않으신다면야 그깟 철덩어리 무슨 소용이 있겠답니까?"

이런 시각 모르는 아낙과 단둘이서 강에 배를 띄운다니, 연인 사이가 아니고서야
돌팔매를 맞아 죽을 행동이었지만, 나는 아낙이 사람이 아닐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밤이 깊었음에도 아낙의 머리칼은 다부지게 정돈되어 말끔했고
허연 옷가지를 둘러 입었음에도 어디 한 곳 얼룩이 진 행색이 없었다.

"왜요. 제가 도깨비가 되어 무사님을 덮칠까 겁이 나십니까?"

아낙이 웃으며 말하자, 그 웃음소리가 비웃음처럼 기분 나빴다.
아낙은 내가 기분 언짢은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기죽지 않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내대장부께서 도깨비 하나에 이리도 긴장을 하셔서 어찌합니까?"

"이곳의 도깨비들은 사람을 홀려 목의 피를 취한다지요?"

"풍문은 항상 살을 찌우며 떠다니는 법이랍니다."

아낙이 손을 뻗어 배 밑에서 흐르는 물살을 갈랐다.
물살이 아낙의 손에서 양갈래로 흩어지며 유유히 퍼져나갔다.

"무사님."

"예, 말씀 하시지요."

"풍문이 사실이라면, 이 강 밑에는 죽은 사람들의 주검이 쌓여 있겠지요?"

"풍문이 사실이라면 분명 그렇겠지요."

아낙이 물에 담갔던 손을 슬며시 꺼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무사님은 소녀가 이 강 밑에 그 사람들은 밀어 넣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낙의 낯에 언뜻 억울한 기색이 보였으나 이내 표정을 밝히며 다시 입을 열었다.

"소녀가 도깨비라면 어쩌실 셈이시랍니까?"

달이 높게 떴는지 강을 훤히 비추었다. 해맑은 아낙의 얼굴이 마음을 녹이는 듯
혹여 아낙이 정녕 보통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 허리춤의 칼을 빼들어 소녀의 목을 내치시겠습니까?"

"낭자가 도깨비라면 난 이 자리에서 낭자의 입술을 빼앗고 낭자를 품을 것이오."

아낙은 순식간에 얼굴을 굳히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동그랗게 커진 두 눈에 불안함이 비추듯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사님, 농이 지나치시군요."

아낙은 화가 난 듯 이를 악문체 나를 노려보았다. 아낙의 화난 기색에도 이상하게 미안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미안한 기분은커녕 오히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난 굳이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낙은 내게 큰 실망감을 느낀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으로 시선을 깔았다.

"만일 낭자가."

아낙이 내 말소리에 슬쩍 눈을 치켜떴다.

"만일 낭자가 사람이라면, 내 약조를 하리다."

아낙은 금방 기분이 풀린 듯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되물었다.

"소녀에게 무슨 약조를 하시겠습니까?"

"낭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 드리지요."

"무엇이든 말씀입니까?"

아낙이 눈을 번쩍 뜨며 미소를 보였다.

"백두산 이무기의 혓바닥을 가져다 달라신다면 머리통을 잘라오고,
백년을 묵은 산삼을 캐오라신다면 낭자의 허벅지만한 천년삼을 캐오도록 하지요."

"소녀와 함께 이 강 밑으로 들어가자 하며는요?"

"어려울 것 없지요. 이런 좁은 강물이 아니라 저 먼 곳에 있는 바닷물에라도 들어가겠습니다."

"별을 따다 달라고 하며는요?"

"달을 따다 드리지요."

아낙이 신이난다는 듯 환히 웃다가 금방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곤 고개를 뉘이며 불만인 표정을 했다.

"무사님은 제가 천상 도깨비인 줄로 아시는 군요."

내가 끄덕이자 아낙은 잠시 침묵했다.

"그럼 무사님은 제 입술을 빼앗을 셈이시랍니까?"

자신을 겁탈할 마음이냐는 직설적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나는 아낙에서 시선을 피하며 꿀꺽하고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제가 도깨비라면 왜 저를 품으시겠다는 겁니까?"

내가 아낙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자, 아낙은 내 대답을 기다리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낭자가 도깨비라면 저는 낭자를 품고 낭자를 제 것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무사님에 것이 되는 것에 무슨 이로움이 있답니까?"

"천하 어느 곳에서도 도깨비와 혼례까지 치룬 용감한 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낭자처럼 고운 도깨비라면 마다할 바도 아니지만, 저는 도깨비와 백년가약을 맺음으로써 저의 진실 된
용맹함을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흠~, 그럼 어찌하면 제가 도깨비가 아니라는 것을 믿어주시려는 겁니까?"

"그것은 아직까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낙이 알 수 없는 기묘한 웃음을 흘렸다.

"제가 도깨비가 아니란 것을 증명해 보이지요."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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