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4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은 원내 진출 10년 만에 생존 기반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철저하게 유권자들에게 외면받았다. 울산과 인천에서 각각 2명의 구청장을 보유하고 있던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은 모두 재선에 실패해 노동당을 포함한 진보정당들은 이번 선거에서 기초단체장에서도 단 한 명의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광역·기초의원 선거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515명으로 가장 많은 후보를 낸 통합진보당은 이번 선거에서 광역의원 3명과 기초의원 34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기초단체장 3명과 광역의원 24명, 기초의원 115명을 당선시킨 결과와 비교하면 3분의 1도 안 되는 수치다. 애초 통합진보당은 현역 구청장이 출마한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 재선을 노렸으나 5%포인트 안팎의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정의당의 부진은 더 참혹하다. 기초의원 11명이라는 참담한 성적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의당은 울산시장에 출마한 조승수 후보의 선전을 기대하기도 했으나, 20%대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쳐 높은 벽을 실감했다. 새정치민주연합과의 단일화에 성공해 기대를 모았던 인천 남동구청장과 동구청장 선거에서도 간발의 차로 고배를 마셨다.
노동당 또한 광역의원 1명, 기초의원 6명에 만족해야 했다. 세 정당을 합해도 2010년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며, 2006년 지방선거만도 못하다. 수치만 보면 10년 전만도 못한 신세가 된 것이다.
5일 각 당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종북공세와 색깔론을 극복하고 통합진보당을 지지 격려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분열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따가운 평가를 받았다"(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유권자들은 아직 무슨 당인지도 모르겠고 또 찍어 주어야 할 이유가 분명치 않다고 생각하셨을 것"(천호선 정의당 대표) 등의 반응을 내놓았다. 당 대표들의 발언에는 종북논란, 야권 분열, 미미한 존재감 등 이번 선거에 대한 자체 진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미래는 앞으로도 밝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로 분열의 길을 간 진보정당들은 이후 계속된 위기를 맞았다. 2013년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은 내란 혐의로 구속되고 올해 통합진보당은 정당해산심판을 받을 처지에 놓였다. 그 와중에 의원들이 정당의 존재감을 보일 만한 원내활동을 하지 못하고, 새로운 의제 발굴에도 성공하지 못한 점 등이 이번 지방선거 결과로 나타났다는 평가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이번 선거는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등에 모두 중요한 기회였다. 해체와 분열을 겪어온 지금까지의 대중적인 진보정당의 실험들이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정치학)는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당들은 시대와 사회 흐름에 맞는 가치를 제대로 제시하지도 못했다. 우리 사회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필요한 세력이라는 공감대마저 상실하니 유권자들이 더 이상 표를 줄 이유가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보정당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진보 교육감의 약진이다. 단일화를 통해 힘을 모은 것도 중요하지만, '혁신학교'와 '무상급식' 등 꾸준히 대안을 제시한 것이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은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고 교수는 "진보정당은 운동권 이미지, 종북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진했던 것에 비해 진보 교육감 후보들은 성장이나 경쟁, 엘리트 교육 등 보수의 가치에 맞서 소통, 안전 등 대안적인 가치로 양자 구도를 만들어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