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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포럼] ‘명예훼손’의 범위는 어디까지?
게시물ID : law_52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쇠소깍
추천 : 0
조회수 : 84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1/01 11:40:02

[미디어 포럼] ‘명예훼손’의 범위는 어디까지?

신문과 방송 2013/03/11 08:45
불법적·반사회적 행위로 제한하는 게 바람직

기자가 소송에 걸렸다 하면 열에 아홉은 ‘명예훼손’이다. 한 해 2,000건이 넘는 언론분쟁사건을 처리하고있는 언론중재위원회 통계 역시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2012년 언론중재위원회에 접수된 조정중재사건은 2,460건인데 이 중에서 명예훼손이 문제된 사건은 약 89%에 해당하는 2,185건이었다.


언론분쟁사건 89%가 명예훼손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이제 명예훼손은 일반인에게도 익숙하다. 네이버 지식iN에 올라오는 질문 중에는 명예훼손의 성립 여부를 묻는 것이 꽤 된다.
 
‘친구가제 굴욕사진을 학급 홈피에 올렸는데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 초등학생의 깜찍한(?) 질문에서부터 ‘9호선 막말녀 동영상 이런 거 올려도 되나요? 명예훼손 아닌가요?’라고 묻는 공공성 짙은 질문에 이르기까지 명예훼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넓고도 깊다.
 
하지만 명예훼손의 성립 여부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까다롭다.

일반적으로 명예훼손은 ‘특정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라 정의하고 ‘피해자의 특정’ ‘구체적 사실의 적시’ ‘사회적 평가의 저하’ 이 세 가지를 명예훼손을 구성하는 핵심요건으로 본다.

특히 ‘사회적 평가의 저하’와 관련하여 판단내리기 몹시 어려운 경우가 존재한다. 사안 자체의 불법성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몇 가지 관련 사례를 들어 사회적 평가 저하 여부에 대한 판단의 어려움을 함께 생각해보자.


사례1. 누군가를 가리켜 ‘대머리’라고 했다면 명예훼손이 될까?

‘리니지’ 게임 도중 홧김에 채팅창에다 ‘촉, 뻐꺼, 대머리’라고 썼다가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사람에게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여기서 ‘촉’은 상대방 닉네임이고 ‘뻐꺼’는 대머리를 뜻하는 은어다.

1심 무죄판결 이후 검사의 항소로 개시된 2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통상의 일반인이 ‘대머리’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여지가 없지 아니하여,

이를 두고 사회적 가치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이 아니라고 할 수 없”고 “상대방을 ‘대머리’로 지칭할 경우 당사자가 실제로는 대머리가 아님에도 대머리인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유죄를 인정했다.

이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상고, 3심 재판이 열렸고 대법원은 1심 법원과 마찬가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대머리’의 명예훼손성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뻐꺼’나 ‘대머리’라는 표현은 그런 표현을 하게 된 경위와 의도, 피고인과 피해자는 게임 상대방으로서 닉네임으로만 접촉하였을 뿐인 점에 비추어볼 때,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한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여 모욕을 주기 위하여 사용한 것일 수는 있을지언정 객관적으로 그 표현 자체가 상대방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는 것이라거나 그에 충분한 구체적 사실을 드러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대법원 2011.10. 27. 선고 2011도9033 판결)

이 사건은 다수의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사들이 가십거리에 가까웠으며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판결 결과에만 주목했다.

그런데 법리적인 측면에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사건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사회적 평가 저하’ 판단하기 모호

※이미지 터치시 확대됩니다

(미국산 쇠고기 관련 보도로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조능희 PD등 제작진이 무죄를 선고 받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재판부는 “방영된 내용 가운데 일부 허위 사실이 포함된 것으로 판단되지만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고 보도의 공익성이 인정돼 명예훼손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미지 터치시 확대됩니다

(2012년 9월 19일, 한 스포츠지 기자 A씨(36)가 트위터 상의 설전을 계기로 강병규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강병규는 배우 이병헌으로부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당한 바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보통 명예훼손은 ‘특정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라고 정의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범죄를 저질렀다거나 반사회적·반윤리적 행동이나 성향을 보인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명예훼손이다.

명예훼손이라 평가받는 행위나 대상은 흔히 나쁘거나 부정적인 것이 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처럼 당사자의 외모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비하하는 표현은 일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거나 인식한다고 해서 명예훼손이라고 곧장 판단하기 어렵다.

‘대머리’는 탈모로 인해 두피에 머리카락이 적은사람을 가리키는 말일 뿐 그 자체로는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물론 ‘대머리’를 수치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이런 사람의 시각으로 본다면 ‘대머리’라는 표현은 듣는 사람에게 굴욕감 내지 수치심을 안겨주어 나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는 ‘대머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극복되어야 할 편견일 뿐이다.

그런데 법원에서 명예훼손으로 본다면 ‘대머리=나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고 극복되어야 할 편견을 더욱 고착시키는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대법원 역시 이와 같은 문제점을 간파했기 때문인지 2심 법원과는 달리 ‘대머리’라는 표현을 당사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는 내용으로 보지 않았다.

대머리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저 사람의 생김새일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대머리’라는 표현의 명예훼손성을 부정한 대법원의 판단은 일반인의 시각과 다소 거리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타당한 결론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례2. 다른 사람의 혼전임신 사실을 공개하면 명예훼손이 될까?

지방의 한 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A목사는 주일예배 광고 시간에 B집사의 딸 C가 혼전임신한 사실을 공표했다.

집사와 딸 모두의 실명이 거론되었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느꼈을 당혹감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혼전임신 사실의 공표는 교회 집사였던 B에게 내려진 교회법 상의 징벌 내용과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악의적으로 한 일은 아니었지만, A목사는 B와 C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고소를 당했고 형사재판을 받게 되었다.

1심 법원은 A목사에게 명예훼손죄를 인정,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현재의 혼인관계나 혼전임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물론 사전적 의미에 비추어 보더라도 피해자 C의 혼전임신이 성경에서 금지하는 간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그렇지 않더라도 혼전임신이 타인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죄에 해당하여 유기시벌을 하고 교회에 반드시 공포해야 하는 중대한 사항이라고 보기는 더더욱 어려운 점,… 공표방법에 있어서도 피해자들 중 피해자 C에 대해서는 실명을 언급할 필요성이 전혀 없었고, 피해자 B에 대해서도 집사로서 자녀와 자기집을 잘 다스리지 못하였음을 이유로 시벌하였다고 표현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피해자들에 관하여 사실을 적시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2012. 8. 22. 선고 2011고단442 판결).

이 사건의 재판을 담당한 재판부는 A목사가 공표한 혼전임신 사실로써 당사자인 B나 C의 사회적 평가가 당연히 저하된 것으로 봤다.

‘당연히’ 저하된 것으로 봤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에 관한 별다른 설명을 판결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피고인측이 적극적으로 다투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법원 역시 사회적 평가 저하 여부는 거의 고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위에서 보는 것처럼 A목사의 발언을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살폈고 굳이 당사자 C의 실명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발언의 공익성을 부정했다.

그런데 과연 혼전임신이 당사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킨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확실한 사실이라 할 수 있는가?


또 다른 판단 기준 ‘공공의 이익’

사례에 나온 A목사를 비롯하여 상당수의 기독교인은 혼전임신을 부도덕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우스갯소리겠지만 신부 뱃속 아기는 ‘혼수품’이라고들 이야기하기도 한다.

혼전임신이 사회적으로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취급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 일반의 인식이 옳다면 혼전임신 사실의 공표는 명예훼손이 아니다.

사회 내 특정 그룹에 속한 사람에게는 부도덕하거나 심지어 죄악일 수 있지만 나머지 사회 일반인에게 그것은 별일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안은 구조적으로 앞에서 살펴본 ‘대머리’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사람들은 나쁘게 보기도 하지만 이런 시각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에서는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례가 앞의 사례와 다르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도덕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안을 명예훼손이 아닌 사생활 침해의 문제로 보고 민사소송으로 다뤄졌으면 좋을 뻔했겠다 싶다.

사회적 평가 저하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고, 나아가 명확하지 않은 사안에까지 명예훼손을 적용하다 보면 명예훼손으로 다루는 영역이 지나치게 넓어진다.

이것은 법 체계적으로도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형사처벌의 가능성까지 동반되는 명예훼손은 불법적 결과나 반사회적 행위로 국한하고 그 밖의 나머지 문제는 기타 인격권 침해, 즉 사생활의 비밀이나 초상권, 성명권, 신용훼손 등의 문제로 다루는 것이 좋다고 본다.


사례3. 인터뷰한 50대의 중년 여성을 보도에서 ‘노인’이라고 표현했다. 명예훼손이 될까?

몇 살부터 노인이라 할 수 있을지 누구도 말하기 어렵다. ‘노인’은 늙은 사람이니 50대도 늙은 축에 속하는 것 아니냐고 하면 할 말 없다. 또, 살아온 햇수가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외양이 기준이라 하면 역시 할 말없을 수 있다.

그래도 사회통념이라는 것이 있는데 50대를 노인이라고 한 것은 좀 지나치다.

보도에서 50대의 중년 여성을 노인이라고 지칭한 것은 기자의 명백한 실수였다고 본다. 문제는 명예훼손에 해당할 것인지 여부다.

노인으로 지칭된 당사자는 기분이 몹시 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명예훼손에서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주관적인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인 평가다.
 
명예훼손이 되려면 ‘나이 많이 먹은것=나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대한노인회에서 알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하면 이번에는 명예훼손 당했다고 여기는 당사자가 들고 일어날 것이다.

이 문제 또한 앞 사례에서 언급한 것처럼 명예훼손으로 풀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이번에도 역시 인격권 침해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인터뷰에 응했다는 것은 자신의 초상이나 음성, 발언을 보도에 사용해도 좋다고 동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격권 침해를 주장하기도 어렵겠지만, 자신을 ‘노인’으로 지칭할 줄 알았다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니 이와 같은 보도(50대에 불과한 자신을 ‘노인’이라고 지칭한 보도)에 자신의 초상이나 음성, 성명이 나가는 것을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해볼 만하다.


※이미지 터치시 확대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을 제기했던 강용석 의원은 해당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2012년 2월 22일 의원직을 사퇴했다.)


인격권으로 접근하는 것도 방법

요컨대 명예훼손, 즉 특정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나 가치의 저하로 평가되는 범위는 생각처럼 넓지 않다. 또한 명예훼손의 확대 적용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범법행위,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반사회적 행동 등으로 명예훼손의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나머지 영역은 명예훼손 외에 초상권, 성명권, 음성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 기타 인격권이 기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

언론분쟁사건의 90%가 명예훼손인 현재의 불균형한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고 있는 한국에서 재고해볼 만한 일이다.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정책연구팀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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