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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허기 3 마지막편
게시물ID : humorbest_5285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14
조회수 : 1093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9/16 19:30:46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9/16 03:31:27

 

 

 

허기]

마지막.

 

 

 

계절이 바뀌었을 땐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두툼한 외투로도 마른 팔다리는 감춰지지 않았다.

지는 낙엽처럼 내 몸에 붙은 살들은 거리 위로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렸고 겨울이 되니 앙상한 뼈대만 남게 됐다.

그런 나를 보고 젊어졌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보기 좋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공통된 질문은 “요즘 다이어트 해??”였다.

 

주변사람들의 질문. 결혼 전보다 부쩍 살이 오른 아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는 시선.

이러한 것들이 아내를 자극했던 것 같다.

 

집 앞 마트에서 만난 동네 아주머니가 긴 수다 끝에

“남편 좋은 것 좀 해 먹여.” 하는 말을 붙인 뒤로는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 아줌마의 한마디는 기폭제였다.

미연이의 내부에 남아있던 폭탄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식욕이 없어진 나와,

식욕을 없애기 위해 필사적이 된 미연이...

 

우리 둘이 마주 앉은 식탁엔 더 이상 온기가 흐르지도

맛있는 냄새가 풍기지도 않았다.

 

삭막했다.

우리에게도 겨울이 찾아온 것처럼...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기 시작했다.

 

몇년전에 나를 엄습한 허기처럼. 포만감이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미연인 물조차 넘기지 못하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당신 정말 독하다...살이 더 빠진 것 같아.”

 

나는 굶어가고 있었다.

아니. 죽어가고 있었다.

 

“미연아. 이러지마. 내가 굶는 건 원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이건 정상이 아니라고. 병이야, 병!! 도대체 왜 당신까지 굶으려는 거야??”

 

걸신들린 듯 먹어댔던 그때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사실에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도 죽음의 위협을 느꼈지만 지금은 차원이 달랐다.

 

서서히 폭식하다가 죽는 것과

서서히 굶다가 죽는 쪽. 어느쪽이 더 빠르겠는가.

 

더구나 나는 지금 거의 앙상하게 뼈만 남은 상태였다.

 

“여보. 아직 나 사랑하는 거 맞지?”

 

이미 한번 정신이 붕괴된 적 있었던 미연이...

다 나은 줄 알았다. 나처럼...

우리는 그때 외로워서 그랬지만

지금은 무엇 때문에 광기에 시달리고 있는 걸까.

 

“나 사랑해??”

“당연하지. 그러지 말고 당신이라도 먹어. 응?”

“요즘 당신이 너무 멀게 느껴져. 완전히 다른사람같아.”

 

미연이의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가슴이 아프기보다는 갑갑했다. 숨통을 죄어왔다.

오열하듯 우는 아내를 달래 침대에 눕혔다.

 

“여보. 어디가... 가지 말고 내 옆에 누워. 응?”

 

미연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를 붙잡았다.

바싹 마른 두 남녀가 한 침대 위에 누웠다.

뼈가 드러난 팔다리를 이불 안으로 감추고 서로를 끌어안아보지만

느껴지는 건 부드러운 살결도 따뜻한 체온도 아닌 해골 같은 뼈가 전부였다.

 

곧 새근새근 잠든 미연이의 얼굴은 3년 전에 만났던 그날처럼 야위어있었다.

 

나는 미연이를 만난 날을 떠올리다가 자연스레 정신과 의사를 떠올렸다.

이번에도 나를 구제해줄 사람은 그 의사밖에 없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부터 출발해 병원 근처에서 몇 시간을 더 망설인 끝에 결심을 하고 건물로 들어갔다.

3년 만에 찾아간 거지만 의사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자리에 앉아서 나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그동안 걱정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여기 그때 빌렸던 돈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얀 봉투에 들어있는 돈은 그때 빌린 액수의 두 배였다.

나름의 이자라고 생각해 넣어둔 거지만 의사는 봉투는 들춰보지도 않고 책상 한쪽으로 밀어뒀다.

그가 쳐다보고 있는 건 내 얼굴이었다.

봉투를 내미는 미라처럼 마른 내 손가락이었다.

 

“너무 늦지 않은 건 아닌지 걱정되는군요...”

“제가 이렇게 되리란 걸 예상하고 계셨던 겁니까??”

“그때 말했지않습니까. 당신의 체질은 아주 특이하기 때문에 조절이 필요하다고요.”

“그런......”

 

의사는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3년전, 당신이 느낀 허기의 정체는 외로움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도대체...이유가 뭘까요? 그동안 누구보다 행복했습니다. 친구들은 물론 새로 취직한 직장에서도 원만하게 어울리며 지냈고, 게다가 제 아내는...”

“결혼을 하신 모양이군요.”

 

그때 의사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는 그게 원인이라는 듯이 펜끝으로 종이를 두어번 두드렸다.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결혼?

결혼이 문제였다니....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자를 만나고, 돈을 주고서라도 사랑을 하라던 사람은 바로 의사였는데.

 

“적절하게 조절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말이죠.”

“조절이요?”

“익숙해질 만큼... 적응될 만큼만 복용했어야 했단 뜻입니다. 딱 병이 나을 정도만.”

“병이 재발한 게 아내 때문인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의사는 부정하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아내분께 실례되는 말을 했군요.

나는 그가 이렇게 말해주길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건 숨 막히는 침묵과 추궁의 시선이었다.

 

“.........그렇담 이번에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의사의 입술이 벙긋거린다. 마임 하는 사람처럼, 일순 온 세상이 음소거가 되어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가 인식하는 거라곤 벙긋거리는 중년 남자의 입술모양밖에 없다.

 

‘떨어져 지내는 수밖에요.’

 

그는 사형을 선고했다.

행복한 결혼생활은 이로써 끝났다.

 

과연 나는 내 자신보다 아내 미연이를 사랑하고 있었을까.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하지만....과연 내 목숨보다 사랑했을까.

 

이 모든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 나처럼 미연이도 내 말이 믿겨지지 않는 것 같았다.

 

“뭐? 별거? 떨어져 지내다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당분간만이야. 이해해줘.”

“어떻게, 뭘 이해하란 거야. 치료야 집에서 통원하면서 받으면 되잖아. 다른 이유도 아니고 건강상의 이유로 별거라니 말이 돼? 당신, 바람이라도 난거야?”

“바람이라니.”

“솔직히 말하면 수상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야. 우리 처음만난 것만 해도...당신도 알고 있었잖아, 내 소문.”

 

남자 동창들 사이에 소문이 쫙 퍼졌을만큼 타인의 온기에, 관심에 목말라 있었던 미연이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한 건 없다. 처음부터 떳떳하게 그녀를 사랑해서 만난 건 아니었으니.

나도 어떠한 목적에서 그녀를 만났으니까 미연이의 히스테리를 이해하고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다툼 끝에 내가 거처를 옮긴 뒤에도

매일 밤 나를 찾아오는 그녀의 행동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약간의 과장과 거짓말을 보태.

 

“병을 앓고 있어. 전염성이 심해. 죽을지도 몰라.”

 

아내가 곁에 있으면 나는 굶어 죽고 만다.

그녀가 찾아오면 찾아올수록 입맛은 사라져가고 물한모금 넘길수가 없었다.

포만감 때문이었다.

3년전에 내가 느끼지 못했던 포만감이 지금에서야 느껴지기 시작한 것처럼,

심지어 들이마시는 공기에서조차 포만감을 느끼고 있었다.

 

위는 터지기 직전 상태로 팽창해 통증마저 있었고, 혀는 뻣뻣하게 굳어서 음식물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환상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거울을 보면 아사직전의 남자가 퀭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미연이에게서 떨어져야만 했다.

 

허기가 나를 괴롭혔을 때 그것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미연이를 통해서 허기는 사라졌지...

정반대인 상황에 처했다면...

당연히 그 정신과 의사의 말대로 정반대의 방법을 써야만 될 터였다.

 

사람에게서 멀어진다.

 

친구, 가족, 아내에게서...

 

나는 살기 위해 스스로 고립되려고 했다.

 

그러나 미연이는 내가 사는 곳을 귀신같이 알아내선 매일밤 문을 두드렸고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어떤 방법을 써서든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그렇잖아도 거뭇한 눈가에 아이라인과 마스카라를 덕지덕지 발라 해골처럼 시커먼 얼굴로 내 품에 달려왔다.

새벽이 되어 미연이가 잠들때까지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나나 그녀나 똑같이 죽음을 앞에 둔 몰골이었다.

 

“여보 사랑해. 떠나지마...응?”

 

사신의 낫이 내 목에 드리워진다.

 

조금만....

하루만 더 지나면 죽게되리란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다. 벌써 몇주째 물 몇모금과 빵 몇 조각밖에 섭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연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에는 그나마 뭐라도 넘길 수 있었지만...

그녀는 내게 집착하는 것처럼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뱃가죽은 등에 달라붙은지 오래됐고,

먹지도 못하고 사다놓은 식료품은 날파리를 끌어들이며 썩어가고 있었다.

집안 곳곳에 썩은 내가 진동했다.

 

죽어가는 내게,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요의를 해결하는 일마저 힘겨운 노동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때였다.

나는 발작처럼, 그러나 조용히 베개를 들어 올렸다.

 

작은 베란다 창문에서 새벽 특유의 푸르스름한 빛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미연이는 밤새 내게 매달리며 흐느껴 울다가 깊게 잠들어 있었다.

 

푹신한 베개솜 아래로 살고자하는 발버둥이 전해진다.

미연이가 가늘고 긴 팔다리를 허공에 허우적댔다. 나는 그걸 멍하니 쳐다봤다. 마치 거미의 그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에 미연이의 갈고리같은 손가락들이 내 셔츠를 꽉 붙잡았다.

그리고 생명이 다했음을 알리는 신호처럼 이내 축 늘어져 차가운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투욱.

 

미연이의 사지가 힘없이 내려앉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눈꺼풀이 경련하듯이 움직인다.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깊은 심연이 나를 반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눈을 뜨니 햇살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파랗게 굳어있는 미연이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나는 몸을 웅크리고 흐느껴 울었다.

 

그때

눈물이 볼을 타고 입안에 흘러 들어갔다.

그 짭쪼름한 맛에 나도 모르게 혀를 날름거린다.

그리곤 손바닥으로 눈가를 훔쳐 입으로 가져가길 반복했다.

 

배가 고팠다.

 

허기가 느껴지지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쳐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썩어가는 음식물의 고약한 냄새가 뱃속에 웅크려있는 허기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놈은 곧 내 아가리를 뚫고, 찢고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앞을 보았다. 그곳엔 작은 베란다 창문이 있었다.

창문 유리에 비친 남자는 희미하지만, 분명 미소 짓고 있었고, 

그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감사합니다.

 

[링크는 어떻게 달아야할지 모르겠네요..ㅠㅠ

 만약에 다음에 연재하게되면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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