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망해 가던 19세기 말, 조선에 상비군이라고는 8000명이 안 됐다. 이웃 나라들은 수백만의 서구식 군대를 키우던 때다. 군사만 부족한 게 아니라 쓸 만한 기술자도 전문가도 없었다. 나라 꼴이 이러니 힘 한번 못 써보고 고꾸라진 게 놀랍지 않다.
그러면 조선 땅의 그 많은 인재는 다 무얼 하고 있었는가. 과거시험을 보고 있었다. 늙어서 노망이 나도록 되지도 않는 과거시험을 붙잡고 있었다.
일본과 굴욕적인 강화도조약을 맺은 지 3년 뒤인 1879년, 정시문과 응시자 수만 21만3500명이었다. 15명이 합격했으니 경쟁률은 1만4000 대 1. 합격자 평균 연령은 세종 때 20대 후반이었으나 고종 때에는 38세였다. 평균수명이 40세가 안 되던 시절이다.
인재는 시험이 아니라 양성돼야
시험만으로 전문가 뽑을 수 없어
법무부의 사시 폐지 4년 유예는
로스쿨도 망치는 최악 선택 될 것
인재는 시험이 아니라 양성돼야
시험만으로 전문가 뽑을 수 없어
법무부의 사시 폐지 4년 유예는
로스쿨도 망치는 최악 선택 될 것
정약용, 이익 등 선각자들은 과거제 폐지를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여론조사를 했더라도 과거제 찬성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을 것이다. 과거는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결국 1894년 갑오개혁에서 과거제가 폐지됐지만 조선이 근대화의 격랑에서 살아남기는 이미 늦었다. 개천에서 난 용들은 나라를 구하긴커녕 대개는 친일파가 되었고 더러는 향리에 숨었다.
우리 민족은 왜 그렇게 과거제에 집착했을까. 왜 지배 엘리트조차 그 폐해를 끊는 결단을 하지 못했을까. 오랫동안 가졌던 의문에 대해 답 아닌 답을 얻었다. 21세기의 법무부도 7년 전에 법률로 정한 약속을 홀랑 뒤집어 사법시험 폐지를 연기하겠다는 걸 보니, 깜깜하던 19세기에 어찌 다른 선택이 가능했으랴 싶다.
과거제는 누구나 능력이 있으면 출세할 수 있는 당시로선 선진적인 제도였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상대로 동일한 시험을 치러 성적으로 선별한다는 아이디어는 근대 문명의 다양한 전문가를 길러내는 데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진국의 주류적인 엘리트 충원 방식은 시험을 통한 ‘선발’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양성’이 됐다.
건국 초부터 대한민국은 고시로 법률가를 선발했다. 의대를 안 나와도 의사고시만 붙으면 의사가 되던 시절도 있었다. 교육시설과 역량이 부족하던 시기에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의학이나 법학 고등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자에게 시험 한 방으로 의사나 변호사 자격증을 주지 않는다. 한국이 사법시험을 통한 ‘선발’ 대신 법학전문대학원에서의 ‘양성’을 택한 것은 시대적 흐름에 맞는 결단이었다. 역사적 사명을 다한 사법시험 제도는 이미 7년 전 법으로 정해놓았듯이 예우를 갖춰 작별 인사를 하면 됐었다. 7년 차에 이른 로스쿨을 더 좋게 다듬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었다.
그런데 법무부는 느닷없이 사시 폐지를 4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여론이 사법시험 존치를 지지한다는 이유다. 여론이 그런 건 당연하다. 정확한 속사정을 모르는 국민들로서는 사시가 가지는 역사적 상징성과 형식적 공정성을 저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강화도조약 후에도 20만 명씩 과거를 봤던 시험지상주의가 우리 DNA에 새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19세기 말의 여론도 압도적으로 과거제 존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여론에 따라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법무부가 내놓은 여론조사만 봐도 사시 존치에 찬성한다는 답변과 폐지에 찬성한다는 답변을 합치면 109%나 된다. 존치할지 물어도 예, 폐지할지 물어도 예라고 답한 사람이 꽤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설문에는 사법시험에 대한 미사여구가 붙어 있어 공정성 시비도 있다. 이런 오락가락하는 여론대로 결정한다면 인민재판과 무엇이 다른가. 여론조사에만 따른다면 미국산 쇠고기는 매년 수입 금지와 허가를 반복해야 할 것이고, 학교급식은 무상인지 유상인지 학기마다 새로 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로스쿨의 문제점도 많고 개선할 것도 많다. 교육의 질도 손봐야 하고 교수들도 각성해야 한다. 그러나 사시 존치는 그 해결책이 전혀 되지 못하고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이제 와서 사시 신규 응시자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사시의 문제점을 확대재생산하면서 로스쿨 본연의 기능도 망치는 최악의 선택이다. 필자는 22년 전 합격했던 사시와 훌륭한 교육을 시켜준 사법연수원에 애틋한 고마움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직업적 양심에 따른 판단으론 이제 사시는 예정대로 역사 속으로 고이 보내고 로스쿨 개선에 힘을 모아야 한다.
주무부서인 법무부는 정녕 사시 존치가 필요하다고 믿었다면 공청회에서 당당하게 근거를 밝히고 토론해야 했다. 그러나 차일피일 입장을 유보하다가 신기남 의원 건으로 로스쿨 비난 여론이 비등한 시기에 기습 발표를 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대법원이나 교육부와도 전혀 의견 교환이 없었다. 발표문에서는 어떠한 비전도 찾기 어렵고 그저 허술한 전화 여론조사의 등 뒤에 숨었을 뿐이다. 반대 목소리에 놀라 하루 만에 최종 의견이 아니라고 물러섰지만 그 속내는 모른다. 대한민국 법무부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그 무책임과 비겁함이 슬프다.
천경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론] 사시존치론, 조선 말 과거제 집착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