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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김대중 노무현이 뿌린 싹이 났다.
게시물ID : sisa_5291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힘들다-
추천 : 17
조회수 : 2335회
댓글수 : 62개
등록시간 : 2014/06/09 22:50:46
 
출처: 82cook
http://www.82cook.com/entiz/read.php?num=1817511
 
 
나는 이번 지방선거를 그렇게 평가하고 싶다.
웬 생뚱맞은 말이냐?라고 하겠지만.
 
30년간 사라졌던 지방선거를 다시 부활시킨건
김대중대통령의 목숨을 건 단식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95년  다시 부활했고 1회동시지방선거로 선관위기록에 남아있다.
 
당시 첫선거권을 갖게된 나는 지방자치라는 것도 몰랐고
지방선거에서 뭐가 달라지는지도 의문이었다.
저게 목숨을 건 단식을 할 만한 일인지도 사실 납득하기 좀 어려웠다.
내가 태어난 후 단 한번도 지방선거란 없었고.
시장은 도지사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냥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신문과 방송은 지방자치를 할 만큼 시민의식이 성숙했냐 아니냐를 떠들었고
정치공학적인 썰들이 오고갔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자신의 맘에 드는 사람으로 임명하면 될텐데
왜 목숨까지 걸어가며 투표로 뽑아야 한다고 하는지 살짝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처럼 시장도 도지사도 내손으로 뽑아도 되는거구나.
그 정도 였던거 같다.
 
그러고 처음 치러진 95년 생애 처음 지방선거라는 걸 경험하게 된다.
선거공보물이 집으로 왔고,  쭉 늘어 놓고 보니
그 의문은 더했졌다.  이 사람이 왜 이당의 사람인지도 헷갈릴 정도였고
구청장하던 사람이 구청장후보이고, 시장하던 사람이 시장후보이고.
도대체 뭐하러 돈써가며 이런 선거를 하나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 선거공보물을 들여다 보며 툴툴대는 옆에서 엄마가 딱 한마디 하셨다.
일번빼고  누가 젤 젊노.  누가 나이가 젤 어리냐교.  나는 한살이라도 젊은기 났더라.
 
98년 두번째 선거.  역시나 그러했다.
내가 선거권을 가진 지역이 부산의 모구여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어쨌든 엄마말이 그나마 단순하고 고민안해도 되는거 같아 대충 그 룰을 적용하고
투표하고 말았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지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누린
지방단체장 임명권을 행사 할 수도 없었고.  오히려  더 많은 단체장은
그들의 후예였고. 결코 그의 목숨을 건 투쟁의 결과물은 그의 편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지방선거, 지역자치가 뭐가 그리 중요한지 몰랐다.
글자로는 상당히 다양한 지방자치에 대한 것들을 접하다보니
이제 이론상의 중요성은 알겠는데  실지 현실생활에서는
그 글자들이 설득력을 잃었고 형체가 없는것 같았다.
 
그리고  노무현은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취임식도 하기전 자신의 왼팔이라 불린 한 사람을
감옥으로 보내고 자신이 스스로 수사를 받으면서 선거자금법을 만들어 낸다.
당시 차떼기당 당명이 한나라당이었는지 다른 이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불법정치자금 문제로 세상은 시끌벅쩍해 졌다.
 
과연 저렇게까지 결벽증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맞긴 한데.  또 얼마나 욕을 먹을지. 
그넘이 그넘이란 소리만 강화시키는게 아닌지 슬쩍 겁이 나기도 했었다.
 
그를 계기로 선거비용보존법이 만들어 진다.
이제 돈이 없어도 선거에 나갈 수 있고,  선거에 나가서 떨어져도 일정 득표율을 달성하면
폐가망신하지 않아도 되는 최소한의 룰이 만들어 진 것이다.
그때도 난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가 왜 그 고통을 자처하고 살을주고 뼈를 취하는 정도가 아니라
한팔을 잘라내는 아픔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루어야 했는지를.
 
과거 선거에 나가고 정치를 한다는건  한국사회에서 집안 말아먹는 짓이었다.
야든 여든 정치지도자는 돈을 얼마나 만들어 낼 수 있느냐도 능력이었고
국회의원 비례대표는 돈 많이 낼 수 있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자리라고 인식되었던 시대였다.
선거는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니 고무신 한짝,  밥한끼, 술한잔이라도 먹여주는 사람에게
찍어주면 그만이고.  정치는 개인과는 상관이 없는 세계였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이론은 알겠지만 현실은... 이라는 생각을 조금은 했더랬다.
 
2010년  선거를 앞둔 어느날 동네 친구가 선거 공보물을 들고 찾아왔다.
이젠 투표를 좀 해야겠다.  내가 가만 생각해보니 나같이 평범한 사람일수록 투표가 중요한거 같더라.
그런데, 공보물을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 좀 도와 달라는 말있었다.
 
어?  보다보니 어느새 그래도 몇명은 꼭 당선이 되었으면 싶은 후보들이 생겼다.
부산에서 이런 사람이 과연 당선이 될까 의심스러웠지만.
그래도 출마해 준 것만으로도 어디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선택한 후보는 구의원 1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낙선했다.
그래도 득표율이 15%는 넘어가는걸 보고 슬그머니 안도가 되었다.
선거비용은 보존 될테니 패가 망신은 안해도 되겠구나.
 
이제 14년  6.4 선거가 끝나고  며칠 동안은 이러저러한 선거 평가에 대한 홍수다.  
여전히 내가 사는 경남은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진보교육감의 당선이 위안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전체를 놓고 보니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대한민국 대표도시 서울은  '시장은 이런 겁니다'라는 전형을 보여준
박원순 시장이 재선을 하고. 
성남 시장도  시행정의 롤모델을 만들어 내며 재선에 성공한다.
 
이제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시장(단체장)의 역할이 내 생활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되고.  다른 지역은  우리시장은?이라고 슬그머니 비교가 되고 부럽기 그지 없다.
나도 많이 부럽다. 
 
교육감은 단 세번의 시도만에 전국 17개 중 13곳에서 진보교육감을 당선시킨다.
진보교육감의 당선은  이미 지난 2회교육감 선거에서 그 싹을 보였다.
곽노현 서울교육감을 선거비리 혐의로 덫씌워 몰아냈지만
경기에서 강원에서  좋은 성과를 보였기에  지난번 2회에서 평균 20% 내외의
득표를 올렸던 민주진보 교육감들이 이번에는 훨씬더 많이 당선되리라는 예상은
했었다.  세월호 여파까지 더해지며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아무리 세월호 사건이 있었더라도  경기에서 강원에서 좋은 모델을 제시하고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서울은  시장,  교육감.  지방자치의 쌍두마차에
구청장들까지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도시가 아니라
다른 나라가 아닌가 살짝 의심도 드는 이질적인 모습이기까지하다.
 
이 자리를 빌어 두분 후보에게 지지를 보낸 서울시민께 감사드린다.
 
그러면서  오늘 드디어 두분의 선택을 이해하게 됐다.
왜 목숨을 걸고, 한팔을 잘라내고  그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누구도 그다지 이해해주지 않는 이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떠나셨는지를 알았다.
 
그분들은 단지 한번의 대통령, 한번의 선거 승리를 생각한게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뿌리를 내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뭐가 선행되어 있어야 하는지 먼저 고민하고 토대를 만들고 가셨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모든걸 걸고 만들고 가셨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서  경기에서 충남에서  멋지게 자라기를 기대한다.
이런게 바로 시장이 지사가 구청장이 해야 할 일이고
시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전형을 만들어 보여주면 좋겠다.
다른 지역에서 모두가 부러워서 샘을 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조희연 교육감님 잘 하실 것을 믿지만  정말정말 잘 하셨으면 합니다.
서울시민들은 조희연 교육감님 잘 지켜주십시오.
그에게 어떤 칼날들이 날아 들지 모릅니다.
 
나라 살림이 내꺼다.라는 현실을 느끼게 하는 것.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초등학교다라는   이재명 성남 시장의 말로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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