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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키가 자랑
게시물ID : freeboard_5298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가넬
추천 : 5
조회수 : 614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1/08/21 01:46:31
 나는 키가 작다. 군대 갈 때 잰 바로는 162cm, 물론 남자키다. 
난 어렸을 적부터 작았다. 
늘 1번에서 3번 사이였고 나중에 이름 순으로 번호를 줄 때가 되서야 30번대 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별거아닌 가나다 순에 유난히 고마운 마음이 든다. 

어릴 적엔 똥자루, 난쟁이, 드워프, 호빗,장꼬 등 갖가지 별명들이 나를 따라다녔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키는 축구 실력과 함께 인기를 결정짓는 절대요소였다. 
사실 태어나서 여태까지 나는 인기가 많았던 적이 거의 없었다. 
아, 물론 중1때인가 140cm이 채 안되는 유달리 작은 키에, 영어를 곧잘 하는 모범생 이미지로 '밤톨'이란 별명을 얻으며 동갑내기 여자아이들에게 귀여움을 받은 적은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나중 탁구부>에 나오는 '다나카'란 캐릭터에 적극 공감이 갔었다. 하지만...
그래, 암만 생각해봐도 겨우 그 정도였다. 



 어쨋거나, 키가 작다는 게 컴플렉스로 작용했고 그걸 극복하고자 어릴 적 나는 독하게 공부를 했다. 
키가 작고 공부까지 못하면 너무나 무시 당했기 때문이다. 
나름 돌머리는 아니었는지 쭉 공부 잘하는 아이로 인정받았고, 
다른 데 눈돌리지 않고 쭈욱 모범생 코스를 밟았다. 
덕분에 작고 왜소한 체격에도 왕따를 당해본 적이 없다. 
근성만 있다면 체격이 작다는 이유로 다른 이에게 무시당하지는 않는다. 

깡패? 물론 숱하게 만났다. 작은 키가 이유였고 겁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그렇지만 돈을 뜯긴 적은 몇 번 없었다. 
맞다가 꼼짝도 못할만큼 만신창이가 되지 않는 한 내 것을 뺏기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 얼굴은 비대칭인데다 코가 휘고, 여기저기 흉터도 남아있다. 
어쩌면 약간 귀여울 수도 있었던 얼굴은 지켜내지 못했지만, 한 가닥의 자존심만은 지킬 수 있었다. 



 대한민국 2%안에 드는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생활을 하며 몇 차례 연애는 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일이다. 이성간에 '작은 키'가 절대적인 약점처럼 작용하는 한국 사회에서 나의 페널티를 감수하고 나와 교제해준 여자친구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내 여자친구들은 한 번도 하이힐을 신은 적이 없었다. 
물론 난 깔창 한 번 낀 적이 없었고...아, 다시 한 번 눈물나게 고맙다. 

 몇 차례 내가 좋아하게 된 사람이 너는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다,라며 내게 마음을 접으라고 말한 것 외에 나는 내 키에 대해 그닥 불만을 가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서른이 가까워지는 요즘에도 어머니께서 나에게 우유를 많이 먹으라는 둥, 기지개를 켜면 지금도 클 수 있다는 둥, 검은 색 옷을 입으면 작아보이니까 밝게 입고 다니라는 둥의 얘기를 하실 때마다 턱없이 슬픈 기분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작다는 건 그냥 특징일 뿐이라고, 
내가 작다는 걸 그냥 인정해달라고, 
그게 뭐가 나쁜 거냐고

한 번은 어머니께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나를 외면하며 그저

미안하다, 미안하다 고 중얼거리셨다.

어머니가 내게 미안해할 이유는 절대 없다. 왜냐면 작은 키는 잘못이 아니고, 열등한 게 아니니까.
하지만 누군가에 대해 혐오와 증오가 반씩 섞인 악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대상은 바로 당신들이다. 
180이 넘지 않는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을 했던 루저녀와, 
남자는 키라는 둥의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는 철없는 것들과,
넌 다른 건 다 괜찮은데 키가 작아서 아쉽다는 말을 했던 친구 비스무리한 것들과,
"내 아이만은 180으로"란 배너를 떡하니 내밀고 있는 성장클리닉 의사나부랭이 들과,

그리고 그러한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듣고 넘기는 당신들이다. 
단지 '다르다'는 사실이 왜 비난이나 폄하의 대상이 되는지,
희귀동물은 보호하면서 왜 희귀한 사람은 비정상으로 모는지,
외모지상주의 따위의 부조리가 옳지 않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신만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지,
부디 한 번만 더 생각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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