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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분납
게시물ID : humorbest_5299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20
조회수 : 2140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9/18 23:33:04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9/18 17:04:24

 

사건은 2년 전 새벽, 장맛비가 쏟아지는 날에 일어났다.

그날은 유달리 어두웠었다. 가로등이 꺼질 시간이었지만 해는 뜨지 않아 사방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비가 그쳐서 다행이야.”

“장마래요, 운전 조심해요.”

 

나는 큰일이 닥칠 것을 예감하기라도 한 것처럼, 중학생이 된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의 출근길에 배웅을 나갔다. 어머니와 나의 인사를 받으며 아버지는 그렇게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비가 쏟아진 데다가 또 비가 올 예정이라는데 저렇게 안개가 끼다니...

어질러진 식탁을 치우기 위해 돌아서는 어머니를 대신해 내가 나가서 현관문을 닫았다. 그때 바람이 불어서 의도와 달리 문이 세게 닫히고 말았다.

 

쿵.

쿵...

쿵.....

 

쿵!!!!!

 

아버지의 차가 전복된 현장은 집에서 1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었다는데, 나는 내 방에서 분명히 충돌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서 얕은 선잠에 빠져 있었고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문이 계속해서 닫히는 소리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쿵, 쿵....조심 좀 하지 그랬니, 하는 어머니의 잔소리도 함께 끊임없이 반복되며 평범한 꿈이 악몽으로 변질되어 가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귀가 멍해질만큼의 커다란 충돌음이 잠을 번쩍 깨웠다.

꿈 속에서 깨어났는데도 귀가 멍할 지경이었다.

그 순간 밖에서는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귀가 멍해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절규하는 어머니의 표정으로 그녀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곧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녀가 놓친 수화기를 받아 귀를 가져가자, 갑자기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병원으로와...빨리...!! 위독하셔!!!”

 

나는 악몽이 이어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힘없이 늘어져선 온몸을 떨고 있는 어머니를 부축해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악몽을 꾸고 있는 거라고...

병원에 갔을 때, 아버지는 이미 수술실에 들어가 계셨다.

먼저 연락이 닿아 달려온 큰아버지가 나를 보자마자 끌어안았다. 뜨거운 눈물이 내 위로 콸콸 쏟아졌다.

 

“아들. 일어났니? 일어났으면 아버지 좀 잡아드려.”

 

어렸을 때부터 언제나 비밀스러운 공간이었던 안방은 그 사고가 일어난 다음부터 늘 활짝 열려 있었다.

방 앞을 스쳐 지나갈 때면 으레 동상처럼 미동않고 앉아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이곤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익숙하게 겨드랑이 밑에 팔을 두르고 의자로 옮겼다.

겨우 몇발자국 떨어진데 의자가 있었지만 몇분만에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몸. 아직 재활훈련이 필요한 팔다리...그나마 자유로운 손가락 한두개로 허공에 무언가를 써대는 것이 아버지의 일상이었다. 어머니는 별다른 말을 해주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보면 머릿속에도 문제가 있는게 분명해보였다. 

나는 믿어지지 않는 시선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변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아버지는 반년만에 집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제대로된 보험조차 없는 우리집이 감당할 수 없었던 병원비만 빼면...

중환자실에서부터 밀려나오기 시작한 어마어마한 병원비에 어머니는 아버질 퇴원시키고 차라리 다 함께 죽자고 하셨다. 아직 중학생인 나는 도울 수도 없이 눈물로 범벅된 병원비 고지서를 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병원측에서 방법을 제시했다.

새로 시행된 획기적인 분납방법을...

 

카드로 물건을 할부로 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아, 물론 아버님이 물건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어머님. 오해하지 마시구요.”

 

담당자는 능글맞게 웃으며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다면 돈을 빌려드리는 거나 마찬가지인데...담보가 필요하겠죠?”

“담...보요?”

 

이미 살던 아파트도 처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머니는 얼굴을 굳혔다.

담당자는 사람 좋게 웃으며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니라고 안심하라고 했다.

 

“그럼 도대체 뭘 담보로...?”

“단지.....천천히 돌려받으시면 됩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반년만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대부분의 것들을 병원에 남겨두고서...

 

아버지가 집에 온 다음부터 어머니는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원래는 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던 적금 통장이었다.

 

“적금 두 번만 더 부으면 하나 돌려받을 수 있겠어. 역시 눈이 제일 좋겠지?”

 

사고가 있던 날 내가 꾼 꿈은 악몽이 아니었다.

악몽을 예고하는 꿈이었다.

나를 잠에서 깨운 그 충돌음은 이 상황을 미리 알려주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악몽을 꾸고 있는 걸까....

그리고 상상한다.

아버지의, 아직 돌려받지 못한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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