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국산 라면 판매금지 2년…일본 기무치라면이 장악
[이코노믹리뷰] 2005-09-12 09:04
세계에서 한국산 라면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국민은 누구일까. 아마 스위스 국민일 것이다. 한국산 라면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스위스 최대 유통업체인 Migros 사는 수년 전부터 한국산 라면을 수입, 592개에 달하는 자사 유통망을 통해 스위스전역에 라면을 판매해왔다. 2003년 6월초 한국산 라면 판매금지 조치가 취해지기 전 Migros사의 라면 연 매출액은 250만 스위스 프랑 (약 22억원)에 달했다.
한국산 라면이 판매금지를 당한 이유는 라면스프 살균시 방사선을 조사(照射)했다는 것 때문이다. 스위스 식품관리법 제 14조에 의하면 방사선이 조사된 식품류의 경우 스위스보건성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인체에 해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여야 하고 식품관리법 제22조에 따라 겉포장에 ‘방사선 조사’되었다는 사실을 표시하여야 한다.
한국산 라면 파동 이후 Migros 사는 즉시 판매를 중단하였으며, 라면 진열대에 이른 시일 내 새로운 라면을 공급하겠다는 팻말을 붙어 놓았다.
그 후 2년이 지난 지금 한국산 라면 대신 일본산 라면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산 라면 판매금지 이전까지 Migros 사는 한국산 라면을 주로 취급하였으며, 경쟁사인 Coop사는 일본산 라면을 취급하여 왔는데 이제는 스위스 전역에서 일본산 라면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황당한 것은 일본산 라면의 이름이 김치라면(KIMCHI RAMEN)이며,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한국 기무치’를 사용했다고 명기하고 있다. 완제품은 아니더라도 한국산 김치를 사용했으니 부자재를 우회 수출한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 것인가. 유럽에서 간장에 이어 라면도 일본산이 완전 장악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음식문화의 수출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동차, 컴퓨터 등 공산품 수출은 품질 좋고 가격이 경쟁력 있으면 가능하나, 음식의 수출은 오랜 세월에 걸쳐 공을 들여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 입맛에 맞는 과즙이 많은 배가 유럽인에게 즉시 선호되지 않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라면은 스위스에서 현지 최대 유통업체를 통해 손쉽게 우리 음식을 전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최근 국내 라면생산업체가 미국에 현지생산 공장을 설립했다는 소식도 전해 듣지지만, 스위스 같은 작은 시장을 위해 현지생산 공장을 설립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통해 라면스프의 장기보전 방식을 개발하여 유럽 전체에 대한 보다 본격적인 마케팅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산 자동차를 타고, 한국산 LCD TV를 보며, 한국산 휴대폰으로 통화하면서, 한국산 라면을 먹는 유럽인들이 보고 싶다.
홍순용
KOTRA 스위스 취리히무역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