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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지 2주
게시물ID : lovestory_530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외로운손님
추천 : 2
조회수 : 165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3/25 23:06:24


내가 글을 쓸 수 있는걸 보니

오유에 가입한지 10일이 지났나보다.

처음에 울면서 글을 쓰려던 나는 어느새 차분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감정의 고비는 분명히 넘겼다는 것이겠지.

나와 비슷하게 헤어진, 그러나 300일도 만나지 않은 친구 녀석은

헤어진지 20일이 넘은 지금에서야 얼굴에 그림자가 더욱 짙어져 금방 죽을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도 다시 저럴까봐 무섭다.

도대체 여자들은 왜 갑작스레 이별을 통보하는 걸까.


우리 역시 오래 만나지 않았지. 

갓 700일을 넘길 동안 주위 사람들은 오래 만나니, 행복해 보인다니, 잉꼬라니, 닮고 싶다니 어쩐다니 라는 말을 해줬지.

나 역시 우리가 참 잘 만나는 줄 알았어. 그래서 누군가 내게 사랑 얘기를 할때는 되도않는 내 경험을 지껄였지.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부끄럽네. 나는 너에게 이별통보를 받기 하루 전에도 우리는 잘 사귀고 있다며 자랑했는데 말이야.

그런 너는 느닷없이, 정말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야말로 평소와 똑같이 하루를 보내다가 이별통보를 문자메세지로 보냈다.

바람이 난것도, 내가 싫어진 것도 아니랜다.

그저 연애가 질리니 자기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을 남긴채.


그 뒤 일주일간은 정말 반 시체처럼 지냈지.

집에 돌아오면 너와 함께 산 옷, 피부 안좋아진다며 사준 화장품, 고시생 건강 챙기라고 넣어둔 곶감 등.

모든 것이 너와 함께 있던 것이 있어 견딜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장 집앞 마트에 가서 비싸고 좋은 상자를 하나 사왔다.

그곳에 너와 함께 산 옷, 이 집에 처음 들어왔을때 내게 사준 그릇과 컵,

내게 사준 향수, 네가 놓고간 너의 증명사진, 커플티 등등

하나하나 담으며 마음속 상처 위에 너를 하나하나 새겼다.

그래, 이 이별의 순간 마저 내게는 너와의 연애의 한 과정이었다.

너와의 추억 하나하나 모두가 정말 소중해서 함부로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도저히 정리할 수 없는 세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네가 벗어놓고 간 옷.

아직도 그 옷엔 너를 안았을때 맡았던 너의 냄새가 있었다.

그 옷을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

남자인 내가 소리를 크게 내면서 울었다.

버릴 수 없었던 다른 한가지는

네가 내게 주었던 편지와 파일들.

한글자 한글자 손으로 쓰며

나를 사랑한단 말과, 내가 어디 갈까 무섭다는 말을 써놓은 말들.

다시 한글자 한글자 읽으며,

'너가 먼저 떠난단 말이야!'라고 소리쳐 울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청소 할때 나온 네 머리카락을 파일에 붙여두었다.

먼훗날 유전공학이 발달해 복제가 가능하면, 그땐 날 좋아해주는 널 만들수 있지 않을까 해서.


물론 내 성격에 너를 안잡았겠어.

너를 몇번이나 잡아봤지만, 나중에 너는 나를 만나주지도 않았어.

그렇게 시체처럼 누워있었지.

자존심도 분노도 집어치우고 너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하에

나는 나 자신을 버려두었어.

세번째 잡은 네가 나에게

내가 없이 사는게 훨씬 행복하다는 말을 했을때

나는 상처가 더욱 커져 더이상의 용기가 나질 않았다.


며칠후 아침에 거울을 보니 그곳엔 나 자신도 사랑해주지 못한 불쌍한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날 사랑해주겠어.

깔끔히 씻고 면도도 하고 나니 내가 제모습을 되찾았다. 

아침부터 감색 수트에 새로 산 갈색 벨트와 수제 구두로 멋을 내고

새로 산 셔츠 안에는 사선의 붉은 넥타이로 나를 장식했다.

그리고 이런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오랜 친구들이 모였다.

차를 끌고 돌아다니다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흘러나왔고

한녀석이 여수밤바다를 외치는 통에 느닷없이 여수로 향했다.

마치 무슨일이 생길것 같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소중한 설렘을 안고서 말이야.

그렇게 그곳에서 일주일만에 밥다운 밥을 먹고 일출을 보고 다시 올라왔다.


다시 학교를 나갔다.

나는 그래도 고시생.

너는 새내기와 놀며 나를 금새 잊을 나이지만

나는 그럴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 고시생이니까.

책상에 앉아만 있으니 자꾸 너와의 추억이 떠올라 눈물만 나왔었는데

사람이 간사하게 겨우 일주일 지났다고 학교생활을, 공부를 시작한다.

그래도 아직 너를 잊지 못해서

도서관에서 나오면 밤마다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거나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다.


일주일만에 저울이 알려준 내 사랑의 무게는 5kg이었어.

너의 나를 향한 사랑은 얼마나 무거웠니

나와 헤어진 사람들은 내가 잘해줬던걸 잊지 못해 한번씩은 연락하고 돌아오던데

너도 그럴까하는 못된 기대와 희망으로 버티다가

내가 없이 사는게 더 행복하다는 말에 다시 상처가 아려온다.

그래도 참 다행이야.

넌 이만큼 아프지 않아서.

만약 이별의 아픔을 분담할 수 있다면, 나는 내가 다 가져왔을꺼야. 지금처럼.

나중에는 꼭 나처럼 널 좋아하는 사람 만나지 말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나처럼 이별마저 소중한 사랑을 해보길 바란다.

헤어진 이후에 남겨진 냄새와 머리카락 하나에도

세상이 떠나갈듯 울수 있는 그런 사람 만나길 바랄게

이런 나도 언젠간 너를 잊고 내게 손내밀어 줄 사람을 찾겠지.

하지만 당분간은 안될것 같아.


시간을 되돌려 처음 네게 고백할 때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반드시 너에게 고백할꺼야.

내게 준 시간과 추억에 감사해.


우리는 행복한 동화속 주인공들이 아니었어.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아닌

"그들은 각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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