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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승만이 하와이를 가지 않았더라면.
게시물ID : humorbest_5318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d.irect
추천 : 21
조회수 : 3242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9/22 02:38:24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9/19 22:00:50

최근 역사스페셜에서 임시정부 외무총장 박용만에 관해 방송을 했습니다.


흔히 인식하기로,

교육으로서 독립을 쟁취하려고 한 대표적인 인물이 안창호 선생.

외교로서 독립을 쟁취하려고 한진 잘 모르겠지만 암튼 외교를 중시한 이승만.

정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장투쟁은? 

한 평생 무장투쟁에 의한 자주독립을 꿈꾼 인물이 박용만 초대 외무총장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연결고리가 이상하게 맞지 않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박용만 또한 그러한 인물인데요. 이번에 역사스페셜에서 꼼꼼히 그의 삶을 이야기 했습니다.


짧게 설명드리자면,

미국, 네브라스카에서 군사학교를 설립. 이후 하와이에서 군사학교를 이어갑니다.

일본에서 미국정부에 강력하게 제재를 가할 것을 요청할 정도로 체계적이며 근대적인 군사학교입니다.

또한 미주내 한인들을 규합하여, 독립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군사학교를 더욱 더 다잡아 갑니다.


그러던 도중, 의형제인 이승만이 하와이에 왔고.

두 거물이 대립. 그로인해 미주내 한인 또한 분열합니다.

끝내 이승만이 하와이를 장악. 박용만은 베이징에서 새로히 무장투쟁을 준비합니다.

미주한인들이 다달이 모은 자금은 독립운동 자금 중 가장 큰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하지만 이승만이 하와이를 장악한 이후 자금은 끊깁니다.


박용만은 하와이에 임시정부 총본부를 꾸릴 것을 꿈꿨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하지만 더 이상 하와이의 실권을 유지할 수 없었고, 후에 이승만 또한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에 추대됩니다.


박용만은 그 이후도 중국 내 군벌들과 세력을 규합하는 등, 무장투쟁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놓지 않습니다.

그 후 블라디보스톡에 가는 길을 베이징 - 만주 -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지 않고,

상해, 일본과 한반도를 거쳐 블라디보스톡으로 갑니다. 이때 조선총독을 만나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설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반역자로 낙인이 찍힙니다.


이후 베이징 그의 자택에서 의열단원 이해명의 총에 의해 피살됩니다.

물론 기록에는 피살이 아닌, 처형으로 남아있습니다. 반역자를 처형했다는 것이겠죠.


역사스페셜의 어감은 박용만에 대한 아쉬움입니다.

박용만은 이해명에 의해 피살되기 직전까지도 중국 내 군벌들과 힘을 합치려고 하는 등,

반역행위가 아닌 애국행위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이해명은 왜 박용만을 처형한걸까요.

정작 우리는 기억해야할 사람 대신, 기억하지 말아야할 사람을 기억하는게 아닐까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안창호 선생이든, 이승만이든 그들의 노선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나마 교육을 통해 실력을 키워 자주독립을 꿈꿨던 안창호 선생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식으로 민족을 유지하고, 엄청난 돈의 힘으로 나라를 다시 세운 민족이 유대인이잖아요.

교육을 통해 민족관, 국가관을 확고히 유지하고. 또한 교육을 통해 개개인의 실력이 향상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또한 안창호 선생은 진정으로 독립을 꿈꾸고, 민족을 사랑하는 분이셨기에 그의 가치관을 존중합니다. 아니 존경합니다.


이승만의 경우는 어떤가요.

일단 나라가 없는데 외교라는 행위 자체가 가능하지가 않잖아요?

나라도 없고 힘도 없고, 그렇다고 군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수로 외교를 할 수 있나요.

게다가 2차대전 이전까지 일본은 열강의 한 축이고, 1차대전의 승전국인데. 도데체 어떻게 해야 외교를 통해 독립을 꿈꿀까요.

이승만이라고 한들 외교로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냥 허울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그의 행적을 일일히 거론할 필요조차 없지만,

우리는 그렇게 이승만을 초대대통령으로 만들어줬습니다.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에 극렬한 반공주의자를 말이죠.

역사는 되풀이 되듯이, 그 후 친일파가 일제에 지배당했던 나라의 대통령이 됐고.

그리고 이제는 그 친일파의 딸이 대통령이 되겠답니다.

생각하는 것 자체로도 기분이 나쁘지만, 이러다가 정말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죠.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것 또한 역사의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이승만이 하와이를 가지 않았더라면.

박용만이 무장투쟁의 힘을 키워 결국 국내진공에 성공을 했더라면.

자주국이 될 수 있는 정도의 힘을 열강들에 보여줄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이승만이 대통령에 추대되지 않았더라면.

그럼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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