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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적혀진 뉴턴 일화 몇개 더
게시물ID : science_195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박사장님
추천 : 3
조회수 : 155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5/14 01:10:30

뉴턴은 정말 이상한 인물이었다. 그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총명했지만,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아무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과민했으며, 매우 산만했고, 놀라울 정도로 이상한 행동들을 하기도 했다(아침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두발을 흔들면서 몇 시간이나 침대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케임브리지에 최초로 세워진 실험실이었던 자신의 실험실에서 정말 이상한 실험들을 했다. 한번은 가죽을 꿰맬 때 쓰는 긴 바늘을 눈에 넣고 돌리는 일에 재미를 붙이기도 했다. 그저 "안구와 뼈 사이에 가장 깊숙한 곳까지" 바늘을 넣어서 무슨 일이 생기는가를 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중략)  또한 자신의 시각에 어떤 영향이 생기는가를 알아내려고 태양을 참을 수 있는 한 최대한 오랫동안 똑바로 쳐다본 적도 있었다. 두 경우 모두, 어두운 방에서 며칠을 지낸 후에야 시력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다행히도 심각한 후유증은 피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수학의 한계에 불만을 느꼈던 학생 시절에 이미 전혀 새로운 형태의 수학이었던 미적분학을 만들었지만 27년동안 아무에게도 그런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는 빛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훗날 분광학이라는 새로운 과학 분야의 바탕이 되었던 광학에서도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30년동안 아무에게도 그 내용을 말해주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총명했던 그에게 진정한 과학은 흥미를 가지고 있던 다양한 문제들 중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적어도 반평생 이상을 연금술과 이상한 종교적인 관심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헌신을 했다.(중략) 그는 솔로몬 왕의 사라져버린 성전의 설계도를 연구하기도 했고, 원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스스로 히브리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그런 노력을 통해서 예수 부활의 날짜와 종말의 날짜를 알아낼 수학적 실마리를 찾을 수 잇을 것이라고 믿었다.(중략) 1936년의 경매에서 뉴턴의 서류 가방을 구입했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대부분의 서류가 광학이나 행성 운동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일편단심으로 비금속을 귀금속으로 변화시키려는 연구에 대한 것임을 발견하고 몹시 놀랐다. 1970년대에 뉴턴의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수은 함유량이 자연 수준의 40배를 넘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의 수은은 연금술사나 모자 또는 온도계 제조공 이외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금속이었다. 



1684년 핼리 박사가 케임브리지를 방문했고, 두 사람이 한참을 이야기한 후에 핼리 박사가 그에게, 만약 태양에 의한 힘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 한다면 행성의 궤도가 어떤 모양이 될 것 같으냐고 물어보았다.(이 질문은 핼리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일 것이라고 짐작했던 역제곱 법칙이라는 수학에 대한 것이었다.)

 아이작 경은 즉시 타원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감탄했던 핼리 박사는 그것을 어떻게 알아냈느냐고 물어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계산으로 얻은 것입니다"라는 대답을 들은 핼리 박사는 즉시 그 계산결과를 보여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이작 경은 서류 더미에서 그 계산결과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암을 고치는 방법을 발견했는데, 그 비법을 적은 서류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과 같았다. 핼리의 추궁을 받은 뉴턴은 다시 계산을 해서 보여주기로 약속을 했다. 그는 약속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일을 했다. 그는 2년 동안 칩거하면서 마침내 '프린피키아'로 더 잘 알려진 그의 걸작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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